[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
1.버림: 탐욕의 전차에 맞선 자발적 가난
2.공동체: 함께 먹고 기도하고 일한다
3. 순교: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믿음
4. 기적: 신앙의 불꽃을 피우는 신비
5.순명: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바티칸에서 순례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교황 베네딕트 16세
이탈리아 로마의 성베드로 광장. 교황이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면 수십만의 군중들이 환호하던 모습으로 백악관만큼이나 지구인들에게 익숙한 곳이다. 광장을 내려다보는 ‘가톨릭 1번지’ 성베드로 대성당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가톨릭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총길이 230m, 천장까지 높이 38m다. 내부에 무려 6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이 거대 성전 안에는 세계에서 몰려온 순례객들로 늘 붐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비탄>이 순례객의 내면을 숙연하게 한다.
‘1대 교황’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베드로 성당엔 역사적으로 위대한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가이드는 “가톨릭 역사에 오점을 남긴 교황의 무덤은 성당 안에서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가톨릭의 명성을 지킨 교황의 무덤이 새로 들어선다”고 전했다. 그렇게 ‘권위’는 더욱 보강된다는 것이다. 최근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의 무덤이 이 안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요한 바오로 2세 무덤 앞에선 적지않은 순례객들이 묵상을 하거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베드로광장에서 성베드로대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줄선 순례객들
유리관 안에 잠든 채 순례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는 일부 교황들의 주검들을 지나면 제대 앞 베드로의 무덤 위에 거대한 청동 기둥이 서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왕조도 보여주지 못한 ‘2천년 역사’의 단단함을 자랑하듯이.
265대 현 베네딕트 16세 교황에 이르기까지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교회의 최고 사제,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 바티칸시국의 원수, 세계 주교단 단장, 수위권(首位權) 등으로 불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베드로대성당
교황이 이끄는 바티칸시국은 불과 0.44㎢에 1천명 안팎의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다. 하지만, 전세계에 가장 많은 국가와 수교하고, 독자적인 화폐와 우표, 신문, 방송국까지 경영하는 독립 국가다. 교황청엔 국무원과 9개의 성(省), 법원, 평의회, 학술원, 사무처들이 있다. 하지만 교황청의 힘이 바티칸시국 국경 선 안에만 갇혀 있다고 보면 오산이다. 교황청이 설립한 올비노대와 라테란대 등 종합대학과 수많은 단과대, 신학대, 성당, 수도원 등이 바티칸 시국 바깥에 산재해 있다. 이런 대학들에 한국에서 유학 온 사제와 수녀 등 150여명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온 성직자·신자 수만명이 상주하고 있다.
교황권이 미치는 영역은 로마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이다. 교황은 세계 5천여명의 주교 임명권을 갖고 있다. 사제들은 주교에게, 주교는 교황에게 ‘순명’하는 게 가톨릭의 철칙이다. 교황권은 세계 사제 40만9천여명(모두 2008년 기준), 수사 5만4천여명, 수녀74만여명한테 미친다. 그리고 11억6500여만명의 가톨릭 신자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거대한 ‘가톨릭 파워’가 된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성베드로대성당의 조각 <비탄>상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의 뿌리인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충실할 때 인류에겐 희망이 비쳤다. 하지만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본래 정신을 상실할 때는 인류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을 맞은 지난 2000년 사순절 ‘참회 미사’에서 고백한 십자군 원정과 종교 재판, 마녀 사냥, 유대인 대학살 방조 등이 그런 경우였다.
그처럼 단일 절대 권력 체제는 경직화해 폭력적 우익과 결합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도외시할 수 있다. 가톨릭 조직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파헤친 퓰리처상 수상자 게리 웰스의 <교황의 죄>라든가,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 등은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의 부정을 파헤치고 환경 생명 살림을 외쳤던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 전종훈 신부가 이례적으로 서울대교구 정진석 교구장에 의해 3년여간 ‘안식년 발령’이 나 사실상 징계를 받았던 상황 등도 이런 우려를 낳았다. 전 신부는 지난 8월 우이동성당 주임으로 발령났다.
성베드로대성당 안에 새로 들어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의장인 클라우디오 마리아 챌리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소명으로 순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라고 불러주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자녀를 구속으로 여겨 버리는 것보다 자녀와 함께 하며 내 삶을 나눌 때,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다. 사랑 안에서 가족에게 순명할 때 더 큰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사제들도 사랑을 위해 순명한다”고 덧붙였다. 순명이나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순명도 사랑을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끝>
로마(이탈리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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