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교수지만 친구로 경청해주는 공감 달인
마음치유콘서트 열고 아픈 청춘들에게 손 내밀어
숨가뿐 경쟁 가도에 지쳐 쓰려져 자포자기하고 싶은 절망감만이 엄습할 때가 있다. 이럴 때 건강한 몸으로, 뛰어난 머리로 더 빨리, 더 멀리 뛸 수 있는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돌아와 손을 잡아주며 함께 쉬어주는 것만큼 더 큰 위안이 있을까.
“힘들면 한숨 쉬었다가 가요.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눈물 날 때, 그토록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랑하던 이가 떠나갈 때, 우리 그냥 쉬었다 가요.”
혜민(39) 스님이 최근 펴낸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우창헌 그림, 쌤앤파커스 펴냄)에 적은 첫글이다. 혜민 스님은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와 하버드 대학을 나온 뒤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그 뒤 한국인 승려 최초로 미국 대학(햄프셔대)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요즘 청춘들의 새로운 멘토로 떠오른 것은 ‘성공한 모델’이어서 아니라 이렇게 추운날 군고구마 같은 글선물을 띄워주는 ‘트친’(트위터 친구)으로서다. 그는 팔로워 10만명을 앞둔 종교계 최강 트위테리안으로 떠올랐다.
이미 ‘트친’으로 익숙한 그를 지난 20일 만났다. 1년간 서울대 규장각 연구원으로 한국에 머물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이다.
처음 만나도 오래 만난 벗처럼 마음을 연 그는 ‘한국에서의 1년’을 스스럼 없이 털어놓는다. 지난 1년 간 전국의 대학 등에서 젊은이들을 만나며 ‘청춘의 아픔’을 경청한 그는 세계적인 명문대를 나온 기득권자가 아니라 ‘아픈 청춘들’의 대변자다.
“한국 사람은 왜 하버드대라면 난리죠. 그가 비리를 저지르는지 훌륭한 일을 하는지 현재 하는 일과는 상관 없이 왜 명문대라면 무조건 환호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고, 능력과 상관 없이 지방대를 나오면 인턴쉽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도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미국에선 스님이라면 참선을 하느냐, 무슨 수행을 하느냐 등 뭘 하느냐를 묻는데, 한국에선 어디 출신이냐며 ‘소속’을 먼저 묻는다”며 “아마 리드대학을 한학기 다니고 중퇴한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뜻을 펼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을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아픈 청춘들’이 그에게 마음을 열고 트친이 되는 것은 그의 이런 공감능력 때문이다.
“들어주기만 하고, 손만 잡아줘도 되는데…”
그는 ‘아픈 청춘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어떤 ‘위대한 깨달음’이나 ‘지혜’보다 경청과 위로를 더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연게 마음치유콘서트였다. 청중들을 모아놓고 일방통행식 강의를 하는 승려들의 법회와는 전혀 다른 ‘자발적 참여형 모임’이었다. 300명 가량이 모이는 마음치유콘서트에서 그는 옆사람과 짝을 지어준 뒤, ‘앞 사람을 가장 친한 친구나 최고의 정신과 의사라고 여기고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하라’고 했고, 상대는 ‘답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잘 들어주기만 하라’고 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날 무렵엔 ‘그대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서로 간구하게 했다. 그러면 이미 자신의 속내까지 털어놓아 절친한 친구처럼 가까워진 이들은 오랜 고름이 터지듯 눈물을 쏟곤 했다.
그가 젊은이들의 아픔에 절절히 공감하는 것은 자신도 고뇌와 아픔의 청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열광했던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전공했지만, 풀리지 않는 삶의 의문을 풀고자 영화에 대한 꿈을 접고 대학원에서 종교를 공부했다. 결국 머리를 깎기까지 오랜 방황, 고국의 외환 위기 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해야할 위기에 몰렸던 일 등. 그도 보통의 젊은이들과 다름없이 고뇌하고 사랑하고 좌절하고 방황하고 아파하던 청춘이었다.
그도 그런 고뇌를 벗겨줄 신비한 깨달음을 찾아 ‘정신 세계’의 책 속에 침잠하거나 한국의 산사로, 인도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뭔가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출가한 한국 불교도 거의 스님이 법상에 앉아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펴는 법회가 주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마음치유콘서트를 생각해 낸 것도 그런 실패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햄프셔대 교수로 임용돼 지난 2007년부터 과목을 개설하면서 나름대로 철저히 수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치않았다. 그래서 여러 실험을 해본 결과 학생들은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참여하고 함께 하는 걸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년 전 낸 첫 책 제목을 <젊은 날의 깨달음>(클리어마인드 펴냄)이라고 한 것도 뭔가 ‘신비하고 거창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깨달음이 아픈 이들에게로 내려와 함께 하는 보살행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을 담은 것이었다.
혜민 스님은 고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한 해외파다운 발랄함을 지녔으면서도, 방황하던 자신을 지켜봐주던 은사(미국 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를 비롯한 선배 스님들에 대한 은혜도 잊지않는 전통 승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승복을 입은 채 <기독교방송>에 가 조정민 목사와 함께 청취자들들의 연애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지난달 크리스마스 때는 서울 을지로1가 향린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우려와 달리 불자들도 크리스천들도 그렇게 서로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을 함께 좋아했다.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그는 “예전엔 미국에서 사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고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과 좀 더 가까이하는 삶도 꿈꿔보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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