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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가톨릭 역사를 바꾼 두 교황

등록 2012-11-01 10:02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두 주역

요한23세 교황과 50년전 당시 추기경들.  사진 한국가톨릭주교회의 제공

 “모두들 내가 임시적인 혹은 과도기적인 교황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앞으로 해야 할 큰일을 앞두고 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거부하지도 않는다고 했던 성 마르티노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1962년 81살의 교황 요한 23세(1881~1963, 재위 1958~63)는 이 일성으로 가톨릭 교회의 변혁을 시작했다. 이렇게 1962년 10월11일 소집돼 1965년 12월8일 폐회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을 가톨릭 신자에서 전 인류로 확대했고, ‘교회의 사명은 선교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 증진과 공동선 실현’이라는 이상주의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가톨릭교회는 현대사에서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택함으로써 교회가 세상에 기여하면서 교회도 기사회생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문건에 서명하는 요한23세 교황  사진 한국가톨릭주교회의 제공

 그래서 지금도 요한 23세는 역대 교황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요한바오로 2세(1920~2005, 재위 1978~2005) 교황은 지난 2000년 요한 23세를 ‘복자’(죽은 사람의 덕행과 신앙이 공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교황청에서 공식 지정한 사람)로 추존하면서 유해를 가톨릭의 상징인 성베드로대성당 한가운데 유리관으로 안치해 방문자들이 경배하도록 했다.

 요하 23세가 급작스럽게 서거하자, 그의 뒤를 이은 262대 교황 바오로 6세(1897~1978, 재위 1963~78)가 요한 23세의 서거로 자동 폐회된 공의회를 재개해 완결시킨다. 바오로 6세는 동방정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등 다른 기독교 종파 지도자들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협정을 맺어 대화의 물꼬를 텄다.

바오로 6세 교황  사진 한국가톨릭주교회의 제공

 대한민국의 순교자 24위를 추가로 시복하고 김수환 대주교를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에 서임한 교황도 바오로 6세다. 그는 교황청 관료 수의 감축, 기존 교황청 기구의 간소화를 이루어냈고, 교황청 안 여러 직책에 비이탈리아인을 대거 앉히며 지속적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1965년 교황으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당시 점차 확대되어 가던 베트남전쟁을 염두에 두고 유엔에서 “전쟁은 더는 안 된다.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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