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이근복 목사
한국의 교회를 그림으로 묘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높게 솟은 십자가와 화려한 대형 교회 건물들과 예배당 신자들의 열광적인 기도 모습이 담기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한국 교회의 본모습이 아니라며 소박하고 정감 넘치는, 오래된 교회를 화폭에 담은 목사가 있다. 마치 한국 기독교가 잃어버린 본모습을 찾듯이, 지난 3년간 전국 구석구석 72개 교회를 찾아 역사를 되새기고 마음에 담아 표현해낸 <그림;교회, 우리가 사랑한>(태학사 펴냄)을 출간한 이근복(68) 목사를 지난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국 72개 오래된 교회 72곳 답사
‘그림;교회, 우리가 사랑한’ 펴내
“지역사회 거울·나침반 구실 확인”
신일고 미술반 활동 ‘화가의 꿈’
80년대 7년간 ‘영등포 산선’ 총무
“좌파 낙인에 그림으로 마음 수행”
이 목사가 작품마다 꼬박 30시간 넘게 집중해 그렸다는 교회 그림은 마치 담백한 수도자의 기도처들인 것만 같다. 벽돌 하나에 담긴 옛 신자들의 정성을 잊을 수 없어 벽돌 하나도 남김없이 숫자를 세어 그려 넣었다는 그 교회 그림들은 건물이 아닌 ‘기도의 마음’에 접속하게 한다. 좀 더 크고 웅장한 건물보다는 아담하고, 시골살이처럼 정감 넘치고, 예스러운 교회 그림들은 100년의 시간을 넘어 이 땅의 초대 교회로 안내한다. 경북 봉화군 법전면에 있는 척곡교회나, 경북 영천시 화복면의 자천교회,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매교회, 충북 진천군 진천읍 진천성당,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교회,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성결교회,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서교회 같은 소박한 교회들의 그림들은 거친 호흡을 저절로 잦아들게 한다. 그러나 그 소박한 교회들의 자취는 결코 작지 않았다.
“연동교회는 100여년 전 한글 보급 운동을 펼쳤고, 승동교회는 백정들을 교인으로 받아들였다. 진주교회도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을 벌였다. 아현교회에서는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가 가난한 민중들의 질병 치료를 위해 병원을 세우고. 상동교회는 전덕기 목사의 주도 아래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민중들 역시 선교 초기만 해도 양교(서양종교)로 부르며 멸시했으나 3·1독립만세운동에 교회가 앞장서는 것을 보고,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큰 피해를 감내하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있었기에 한 세기가 안되어 교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 목사는 “그 교회들이 지역 사회에서 공동체와 역사적 가치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면서 “그 교회들은 사회의 거울과 나침반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그린 것은 지금의 화려한 한국 교회가 아니라 초심을 잇는 한국 교회의 ‘오래된 미래’다.
오래된 교회들이 재개발되지 않고 옛 모습을 유지해온 것은 초심을 유지해온 목사가 언젠가 찾아와줄 것을 믿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평생 ‘돈 안 되고 고생스러운 일’만 사서 해온 그런 목회자를 말이다.
성균관대 행정학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 목사는 1983년 전두환 독재의 그늘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을 거의 유일하게 품어주었던 영등포산업선교회(산선) 간사로 일하다 조지송·인명진 목사의 뒤를 이은 3대 총무로 1984년부터 90년까지 ‘산선’을 이끌었다. ‘책상에 앉아 있지 말고 거리에 나서라’거나 ‘머리로 일하지 말고 몸으로 일하라’는 조 목사의 훈련 지침에 따라 공장에 직접 들어가 현장 훈련으로 ‘산선’을 시작한 그는 91년에도 홀로 김포의 가구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 예수’처럼 일하면서 총무 활동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뒤 그를 맞은 것은 그런 희생의 보상보다는 ‘좌파’라는 낙인이었다. 그 어떤 교회에서도 그를 목사로 초청해 주지 않았다. 그나마 학생운동에 동참했다가 새문안교회에서 쫓겨난 대학생회, 청년부 동료들과 작은교회를 세우고, 이듬해 새민족교회와 통합해, 그곳에서 17년간 목회 활동을 했다. 30~40대를 약자들과 함께 최전선에 섰다가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뒤늦게 새민족교회 인근 서대문도서관 서양화반에 등록해 심우채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것이 그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신일고 재학 때 미술 특활반에서 이철수·최민화 화백 등과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 접었던 화가의 꿈이 수도자 같은 성정 그대로, 담백한 붓펜 담채화로 부활했다.
2008년부터 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훈련원장으로 목회자를 교육시킨 데 이어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을 거친 그는 2년 전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를 만들어 서울, 인천, 대전, 부산에서 목회자 인문학 모임을 활성화시켰다. 날로 사회에서 고립된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지식과 성찰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통합교단의 대표적인 초대형 교회인 명성교회 담임직이 김삼환 목사에서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로 세습되자 그는 반대 운동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꼭두각시 어용 언론을 앞세워 세습을 반대한 목사들을 죽이려는 공격에도 전혀 굴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소박한 교회 그림과는 달리 강고하다.
“요즘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국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게 ‘아빠찬스’다. 세습이야말로 전형적인 ‘아빠찬스’다. 기업도 세습이 줄어드는데, 교회가 세습이라니. 양극화 시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끌어 안고 공감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할 대표적인 교회들이 세습을 하고, 목사들의 진정 어린 헌의도,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며, 어용 인터넷 매체를 동원해 ‘가짜뉴스’로 세습반대 목사들을 음해하고, 돈으로 매수한 사람들을 통해 세습반대 운동 목사들의 목을 조이니, 자기를 버리고 헌신한 한국 초대 교회와 목회자와 크리스천들이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교회 그림들은 서울 마포 대흥동 염산교회 갤러리에서 20일까지 전시중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자신의 첫 그림책 ‘우리가 사랑한 교회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이근복 목사. 조현 기자

책에는 이근복 목사가 직접 답사해 붓펜으로 그린 전국 72곳의 교회가 담겨 있다. 태학사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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