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정 원불교 상사의 ‘남북 긴장 해법’
“북은 불신 받으려고 작정, 그게 무슨 득 있나
남도 다루는 솜씨 원숙 못해 북 거칠게 나와”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태 이후 남북간의 극한 대치로 전쟁위기까지 고조되면서 국내 6대 종단 지도자들과 시민사회 원로들까지 ‘한반도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6·26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한 남북 대치 갈등에서 원불교 최고의 수행자로서 남북문제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여온 좌산 이광정 상사(75)를 찾았다.
김정일 위원장에 거침 없는 일갈
전북 익산 금마면. 백제 무왕이 미륵산과 용화산 아래 만든 동양 최대의 사찰 미륵사지가 있는 곳이다. 미륵은 미래에 세상을 구해줄 구세불이며, 용화세계는 이상향을 말한다. 이상세계는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미륵산이 병풍처럼 외호하고 앞에 미륵사지가 펼쳐진 상사원에서 4일 새벽 좌선으로 아침을 함께 연 좌산 상사와 눈 쌓인 미륵산을 오른다. 흰 눈썹을 휘날리며 430미터의 미륵산 정상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가뿐히 오른 모습이 20대 이후 간경화 때문에 적혈구 백혈구 등 모든 수치가 정상인의 절반에 불과한 75살 노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미륵산 정상에서 그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아래편 강줄기의 모습이 영락없이 한반도기를 펼쳐 놓은 것 같다.
그는 “국민의 뜻과는 달리 강대국들의 세에 밀려 분단된 나라들이 모두 통일됐는데,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60년 넘게 대치하며 이렇게 용렬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하느냐”면서 “올림픽 때 남북한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입장하니 전 세계에서 온 관객들이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면 그들의 눈에도 동족이 싸우는 것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고, 동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았으면 그랬겠느냐”고 말했다.
좌산상사는 작년 5월 방북신청을 했다. 북쪽 지도부에서는 허가했지만, 정작 남쪽 정부가 불허했다. ‘그때 만약 갈 수 있었더라면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일조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담긴 눈길이 한반도 모양의 강물에 머문다. “이제 목숨을 아까워할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라며 그는 “북에 가서 갇혀 죽더라도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며 방북이 실현돼 김정일 위원장을 목전에 둔 것마냥 일갈했다.
“무서운 인내력으로 보복전 감행 안 한 것은 잘한 것”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금지라인을 넘어갔다면 벌금을 준다든지 구류를 살리면 될 것을 총으로 쏘아 죽이니 사람이 파리 목숨인가. 그러니 잘해줘봐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연평도를 포격해 민간인까지 죽게 하니 북을 동정했던 사람들까지 돌아서게 하고 적대감정을 키운 게 아니냐. ”
그는 “김신조 일당을 보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을 비롯해 푸에블로호, 판문점 도끼살해, 아웅산, 칼기폭파, 천안함사건을 누가 저질렀느냐”면서 “그런 짓을 반복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불러일으킨 게 누구의 책임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보기엔 불신을 받으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면서 “남북 관계를 화해로 이끌어보려고 노력하고 밤낮 고심하는 이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반복해서 북에 무슨 득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할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햇볕정책을 펼친 민주당이 남북화해를 얘기하면 보수 쪽에서 반대해 국론이 분열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면 민주당도 반대할 수 없어 국론이 통일되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실용’을 표방해 큰 기대를 했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당시 혼찌검을 내줘야 한다는 국민적 분노에 부응하려면 북의 한 지역을 초토화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무고한 북한 주민들도 죽고 다칠 수밖에 없고 북한 인민들까지 남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칠 텐데 무서운 인내력을 발휘해 보복전을 감행하지 않은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 잘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평화통일과 흡수통일, 전쟁통일 가운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평화통일밖에 없다고 믿는 그는 “설사 무력통일을 하더라도 상대방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는커녕 경계심리를 부추겨 모두 적으로 만드는 것은 병법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북 코너로 몰아 중국 속국 되면 중국과 싸울 건가”
“남북문제는 늘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있다. 지혜롭고 원숙한 사람은 긍정적 요인을 신장시켜서 부정적 요인도 긍정적 요인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이미 있는 긍정적 요인까지 부정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북이 이렇게 거칠게 나오는 것은 북을 다루는 솜씨가 원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북 화해와 통일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분란을 야기하는 드라마 <아이리스>의 내용을 예로 들면서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남북관계를 전방위로 올스톱시키면 우리는 늘 긴장과 전쟁 분위기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서 “현안은 현안대로 밀고 나가되 전체 관계까지 완전히 차단시키는 것은 자충수”라고 꼬집었다.
“북을 너무 코너로 몰면 갈 데 없는 북한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벌써 중국을 끌어들여 압록강과 천진을 개발하고 위화도를 100년간 임차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표면적으로는 독립국가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의 속국이 되어버리고 나면 우리가 중국과 싸울 것인가.”
그래서 그는 남한이 북에 다양한 도움을 줘 남에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도 편하고 통일도 앞당기는 길이라고 믿는다. 또 그는 북한에 대해서도 “남한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만큼 발전한 사실이 북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동반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는 것”이라며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미륵산에서 맑고 밝은 구룡마을에 내려오니 정결한 모습이 극락정토가 따로 없다. 4년여 전 좌산 상사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이 일대는 등산객과 마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지천이었다. 그런데 매일 좌산 상사가 손수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치우자 어느날 마을 이장이 스피커를 통해 “우리 마을 사람들도 이제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쓰레기를 줍자”고 호응하고 나서며 마을 전체의 인상이 일신됐다. 좌산 상사의 미소가 묻고 있었다. 예토(穢土·정토의 반대인 고통의 세계)와 정토는 누가 만드는가.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좌산 이광정 상사는 누구?
원불교 최고 어른으로 ‘미륵산 할아버지’
좌산 이광정 상사는 현존하는 원불교 ‘최고 어른’이다. 그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정산 송규(1900~1961)-대산 김대거(1914~1998)에 이은 네번째 지도자였다. 1994년 58살로 최고지도자인 종법사에 올라 12년 동안 원불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2006년 스스로 물러났다. 상사는 종법사에서 물러난 이에게 붙인 칭호다. 이미 종법사 재임시절 <분단역사 극복의 길>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그는 ‘자연 속에서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를 떠났다.
그는 종법사 퇴임 뒤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남북화해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 왔다. 지금은 익산 외곽 미륵산 아래 상사원에 머물고 있다. 애초 충남 논산 삼동원에 거처를 마련했으나 퇴임 뒤 장협착증 수술을 받으며 원광대병원과 가까운 이곳에 한 지인이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곳이 (전남 영광군) 대마(大馬)면인데 이곳은 금마(金馬)면이고, 그가 12년간 종법사로 머문 중앙총부가 신룡(新龍)동인데, 이곳 역시 한자까지 같은 신룡리여서 기연지로 여겨지고 있다.
독신수도자로서 평생 살아온 그는 이곳 상사원에서 교무(원불교 교직자)들을 비롯한 6명의 상사원 식구들과 함께 새벽 5시 좌선으로 아침을 연다. 20대에 얻은 간경화로 간의 절반이 고사된 상태에서 40대에 당뇨병까지 얻어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그는 잘 먹고 푹 쉬어야 하는 간경화와 조금 먹고 많이 운동해야 하는 당뇨병의 ‘상극’ 사이에서도 철저한 좌선과 등산, 사상의학에서 터득한 섭생법으로 40~50대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미륵산 아래 구룡마을에서 한 용이 더 와 ‘십룡’마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는 미륵산 아래 ‘용’(도인)으로 존경받으면서도, 형이상학적 도담(道談)에 머물기보다는 수행을 통해 얻은 지혜와 신생종단 원불교를 오늘의 대교단으로 이끈 경험과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일과 삶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해준다. 따라서 그는 지금도 원불교 교무와 신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에게 건강의 비법부터 정치와 경영과 삶의 길까지 자상하게 안내해주는 ‘미륵산 할아버지’로 통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
-2006년 종법사직 퇴임식 때 ‘자연 속에서 남북의 평화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는데, 요즘 남북간 갈등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안타깝다. 북쪽도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금지라인을 넘어갔으면 벌금을 준다든지 구류를 살게 한다든지 하면 될 텐데, 사람이 파리 목숨이냐, 그런 짓을 하니 남에서는 북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말이 곱게 갈 수가 없다. 고운 소리가 안가니, 자기들도 이런 행동을 한다. 북이 연평도 포탄 몇 개 던졌다고 큰소리 칠 것 없다. 손해는 북이 더 크게 봤다. 왜 그런가하면 북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도 북에 대해 곱게 보지 않는다. 북을 위해주려는 사람들도 북은 저런 사람들이라고 돌아서고, 북의 이미지가 땅에 추락했다. 동정심도 사라지고, 적대감정을 더 부추겼다. 친근감을 불러일으켜야 지혜로운 것인데,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니 될 것인가. 이쪽에서 군사훈련하면 그에 맞서 해상에서 군사훈련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지만 포격해 민간인까지 죽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포탄 쏴도 남한 경제가 흔들릴 처지가 아니다. 북이 어떻게 군비경쟁을 하느냐. 아무리 자기들이 큰소리 쳐도 못한다. 먹고 살 일만 궁해진다. 남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 남에서는 연합군들이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이기겠느냐. 남한 파괴하면 할수록 코너에 몰린다. 사지에 몰린다. 지금은 전쟁 나면 전과는 다르다. 그런 일을 유도해내려고 하느냐. <아이리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당사자들 본의가 아니고, 불순 세력이 있어서 남북간에 갈등상황을 몰고갈 수 있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 세력에 편승하면 자살 행위다. 국력, 경제력으로 북이 남한과 대결할 수 없다. 북을 깨우쳐줘야 한다. 이번 연평도 사건이 불행한 사건이긴 해도 남북지도자에게 전쟁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 같다. 북쪽에서 나온 말, 이명박 대통령 말 들어도 그렇다. 이 불행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드는 게 위대한 지도자다.”
-대북정책에서 이명박 정부에 할 말은 없는가.
“남한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북이 거칠게 나오는 것은 남이 북 다루는 솜씨가 원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숙하면 긍정적 변화를 유도해내고, 남한이 다루는 솜씨가 용렬하면 부정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 그것은 지혜가 아니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지혜다. 남한이 무엇이 부족해서 일대일로 상대하느냐. 우리가 큰 사람이 되어서 싸안아야 한다. 북과 남은 경제력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어른과 아이만큼 차이가 난다. 아이가 때쓰면 싸안아버려야지 콩이야 팥이야 일일이 네가 잘했냐, 내가 잘했냐 할 일이 아니다. 금강산에 사람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사안 하나로 그것은 그것대로 해결해나가고, 나머지는 전방위적으로 남북관계는 그대로 끌고가야 한다. <아이리스>에서 본 것처럼 뭐든지 터질 수가 있다. 사건 터질 때마다 전방위로 올스톱하면 남북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것은 문제를 삼더라도 나머지는 닫으면 안된다. 그러면 특수상황의 문제가 나중엔 풀릴 수가 있다. ”
-북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남한의 대응을 어떻게 보는가.
“연평도 이후 정부 대처를 보고 처음엔 온국민이 분노를 느꼈다. 남한을 향한 북한의 포는 1000문이라고 하는데, 남한은 6문을 설치해놓고 그 중에 세개는 고장났다고 하니 큰일났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은 당할 때 혼찌검을 내주지 않느냐고 분노했다. 만약 보복을 하려면 북에 포를 왕창 퍼부어 한쪽을 초토화를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무고한 북의 국민들까지 많이 죽고 파괴하고, 남한 국민들에게 대한 적대심리만 부추겨놓게 될 것이다. 그러면 좋을 게 뭐 있겠느냐. 그런데도 무서운 인내력을 발휘해 확전을 안 시킨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 잘한 것이다. 우리가 당하면서 보복을 안했기에 우리는 큰소리를 칠 수 있다. 북한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든 도발을 하면 큰코 다친다는 경각심을 줘야 한다. 그런 방향에 대해선 포기하고, 궤도를 수 하게 해줘야 한다. ”
-지난해 5월 방북을 추진하지 않았는가.
“북에 가려 했는데, 남에서 허락을 안했다. 이제 남에도 북에도 못할 소리가 없다. 목숨을 아까워할 나이가 아니다. 남북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영광일 것이다. 북의 비위를 거슬러 가두면 갇히고, 내 목숨 바치라면 바치면 된다.”
-방북하면 무슨 얘기를 하려했나.
“북한 지도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의지에 의해 분단된 게 아니라 순전히 강대국의 세에 밀려 분단되어서, 그동안 형언할 수 없는 동족상잔의 6·25를 거쳐 반백 년 넘게 대치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다른 분단국가들은 모두 하나가 됐는데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 용렬할 모습을 세계 민족 앞에 보여주고 있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상황을 훑어보면 우리나라가 남쪽에서 전쟁 준비 없이 자체 정치적 현실을 수습하기에도 쩔쩔매고 있을 때 북은 전쟁 준비를 해 전쟁을 일으켰다. 북의 명분은 통일 시킨다는 것이지만, 동족 간의 참혹한 전쟁을 야기했다. 그동안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북은 남한에 대해 김신조 일당을 보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사건이나 푸에블로호· 판문점 도끼 살해·아웅산·칼기·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을 누가 저질렀느냐. 북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수없이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남한은 북이 한 것처럼 보복하지 않았다. 말만 비난했지 한 번도 보복한 적이 없다. 비행기를 납치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북이 남을 믿어야 할 것 아니냐. 왜 그런 짓을 반복해서 함으로써 적의를 품게 만드느냐. 남한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게 누구의 책임이냐. 남한 당국의 책임이냐. 그러면 남한 당국에 대해서도 믿고, 그에 상응하게 해줘야 한다. 10년 동안은 남북관계가 잘 풀려 이산가족도 만나고, 금강산 관광길도 열리고, 개성공단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금지라인 갔다고 쏘아서 죽여버리느냐. 벌금을 물리거나 구류를 살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쏴서 죽여버릴 수 있느냐. 사람이 파리 목숨이냐. 그렇게 당하고도 말 한 마디 못해야 하는 것이냐. 그러니 북한이 불신 받는 것 아니냐. 우리가 보기엔 불신을 받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다. 남한 국민들은 동정적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뜻있는 사람들이 밤낮 고심하고 하는데, 찬물을 끼얹기를 반복하는데, 꼭 그렇게 할 일인가. 북한이 핵폭탄 몇 개 가지고 있다고 안보가 보장되는가. 핵을 가지고 있어서 불신이 쌓이고, 다들 경계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무슨 짓인가. 아무리 남쪽 정부를 설득해서 북쪽과 하나 되자고 해도 북쪽이 그런 기류에 찬물을 끼얹으니,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그렇게 해서 국가의 미래가 좋을 게 무엇이냐.“
-남북관계에 대해 북에 훈수를 한다면.
“북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해당되는 훈수다. 우리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라는 말이 있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이다. 남북 문제를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로 진행할 것이냐, 되로 주고 말로 받는 형식으로 진행할 것이냐’를 숙고해보자. 방망이로 공격하고 홍두깨로 당하고, 칼로 공격하고 총으로 당하고, 포탄으로 공격하고 대포로 당하고, 드디어는 핵폭탄을 주고받아 너 죽고 나 죽게 하는 남북관계로 진행시키는 정책은 가장 어리석인 것이다.
반면에 되로 주고 말로 받고, 가마니로 주고 섬으로 받고, 톤으로 주고 더 큰 톤으로 주고받다가, 드디어는 통째로 주고받아 결국 하나 되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남북관계로 진행시키는 정책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지금까지도 보자. 남한이 북에 쌀을 주니 이산가족 만나게 해주고, 좀 더 주니 금강산 길 터주고, 북이 금강산에서 입장료 수입을 얻으니 개성공단까지 열어줬다. 개성공단을 여니 북한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일하게 되고, 우리 기업들도 그곳에서 돈을 벌고, 그러니 철도를 연결해주자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렇게 가면 너도 살고 나도 살게 되지 않은가.
남한은 인건비가 비싸 공장들이 중국에 베트남에 방글라데시까지 가는데, 남북 경제 협력이 활발해져 남한 공장들이 북한으로 가게 되면 남도 북도 큰 이익 아닌가. 그래서 남북이 하나 되면 기차로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중동과 유럽까지 가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할 것이냐.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 왜 이런 것이 정치인에게만 안 보이는 것인가. 목전의 이익 때문에 백년대계에 눈을 감는 것인가. 이제야말로 구원을 씻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세워서 세계 민족 앞에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올림픽 때 남북한 선수가 손잡고 입장하니 세계에서 모인 관객들이 모두 기립박수를 치지 않느냐. 세계인들이 보기에도 싸우는 게 얼마나 한심하게 보고, 사이 좋은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게 여기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현실화시키려면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서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해 믿음을 줘야한다.”
-북은 개방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개방에 따른 체제 위기를 함께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남한 경제가 밑바닥 수준이라면 북도 희망이 없다. 그런데 남한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쪽도 이것은 큰 희망이다. 이것이 북으로 넘쳐 흘러서 북도 발달할 수 있다. 만약 전쟁을 일으켜서 몇 푼 안되는 돈을 전쟁 물자를 사고, 파괴하는데 쓴다면 어떻게 되는가. 전쟁을 겪고, 내전을 치른 나라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된 나라가 있는가.”
-남북 관계에 돌발 변수가 생겨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곤 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북쪽에서는 남한 정부가 못됐다고 하지만 남한을 다루는 솜씨가 원숙하면 전부 은혜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남한을 다루는 솜씨가 용렬하면 남한 국민 전체가 북을 원수로 생각할 것이다. 남한도 북한을 원숙하게 다루고 관리하면 긍정적 변화를 이끌겠지만 서투르면 북한 국민 전체를 남한에 대해 원수로 만들 것이다. 북한 국민이 남한에 대해 희망을 갖도록 해주는게 나은가. 원수로 생각하게 하는 게 나은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출범하면서 ‘중도 실용’을 말하기에 기대했는데, 시간만 보내더니 이렇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 화해국면을 이끌고 가면 국론이 통일된다. 햇볕정책을 하던 민주당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민주당이 하면 보수의 반대로 국론 통일이 안된다.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권이 더 잘할 수 있다. 무슨 대안이 있느냐. 전쟁을 할 것이냐. 사실 무력통일을 하더라도 북한 국민들의 경계심리를 부추기는 것이 병법이 아니다. 그것은 용렬한 장군의 전술이다. 적의 국민들까지 적을 만드는 것은 병법이 아니다. 무력으로 싸우는 사람들도 상대편 국민의 환심을 사면서 싸우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부쩍 자주 ‘통일’을 애기하고 있다. 이것이 중국으로부터 불필요한 경계심을 자극해 오히려 중국이 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통일은 세 가지 방식이 있다. 평화적 통일과 북한이 자멸할 경우 흡수통일, 그리고 전쟁을 통한 통일이다. 세 가지 모두에 대해 대비는 해야 한다. 대비는 하지만 우리가 자꾸 입에 올려 상대방을 자극하는 것은 원숙한 자세가 아니다. 통일이라는 말 한번 안 써도 된다. 안 쓰고 원숙하게 관리하고 다뤄서 북한 국민이 통일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해주기만 하면 성공이다. 북한 국민과 김정일 위원장 모두 ‘통일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면 성공이다. 통일은 의외로 쉽게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너무 코너로 몰고가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게 된다. 경제나 정치적으로 중국에 빨려들고 나면 영영 통일을 놓쳐버리는 역사적 우를 범할 수 있다. 북한이 표면적으로 독립국가라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중국 속국이 되어버리면 우리가 중국과 싸울 것이냐.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만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지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중국보다 남한 사람들이 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북을 코너로 몰아버리면 북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벌써 압록강과 청진을 중국에서 개발하고, 위화도를 100년 동안 임차한다고 하지 않은가. 중국의존도가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지난번엔 우리가 북쪽 광산을 개발한다고 했지않느냐. 철로도 내주고, 함께 하다보면 나중에는 북한은 도저히 남한을 저버릴 수 없는 때가 온다.”
-통상 어느 나라나 진보 좌익은 인간해방을 중시하고, 보수 우익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은데, 우리나라에선 반대현상을 보인다. 진보가 오히려 민족화해를 얘기하고, 보수 우익은 민족 화해를 거부한다. 어떻게 봐야하나.
=일본에선 우익이 민족주의인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대주의적 성향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다 보수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무엇이 합리적이냐가 중요하다. 의복을 보자. 우리나라 의복 문화도 없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복문화가 존재함에도 전부 서구화됐다. 서구 양복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우리나라 의복 문화를 제치고 정착했다. 궁극적으로 합리는 살아남고, 불합리는 도태된다. 합리성을 결여하면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진보의 의견이 합리적이면 진보를 좇고, 보수의 의견이 합리적이면 보수를 좇는 것이 맞다. 편을 갈라 자기 쪽에서 의견을 내면 무엇이든 옳다고 하고, 다른 쪽 의견은 무엇이건 그르다고 해선 안된다. 그런 행태 때문에 임진왜란 때 곤욕을 치른 것 아니냐. 김성일과 황윤길이 일본에 가서 일본이 조선을 침범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다른 의견을 내놓았을 때 합리성은 팽개치고 자기 쪽 의견만 수렴해 결국 임진왜란을 당하지 않았는가. 또 보자. 구한말 김옥균 선생이 우리나라를 개혁하자고 했다. 그때는 그런 진보적 시각이 옳았다. 그때 그렇게 안해서 결국 나라까지 잃고 36년 동안 설움을 겪지 않았느냐. 6.25 직후엔 진보의 시각으로 어영부영 했으면 공산화됐을 것이다. 중국까지 공산화됐는데 남한이 무슨 수로 버텼을 것이냐. 그때는 결과적으로 보수 시각이 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 시각 둘 다 있는 것이 우리로선 다행이다. 상황에 따라 보수적으로 대처할 때는 보수적으로, 진보적으로 대처할 때는 진보적으로 해야지 상대방 의견은 무조건 싫고, 내 쪽 의견은 무조건 옳다고 하면 안된다. 그런 면에서 언론이 중요하다. 중화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다. 보수 쪽에도 그런 얘기를 해왔다. 보수가 법도 있게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심이 좌로 돌아간다. 금방 돌아서버린다. 그러게 되면 먼저 보수 기득권이 당한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 균형적 발전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제퍼슨이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이냐.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냐고 했을 때 후자를 택한다고 한 것은 언론의 중요성을 얼마나 크게 생각해서 그랬겠느냐. 언론이 깨어있어야지, 옹졸하게 편만 가르고 부추기기만 하면 이 나라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기심과 탐욕이 극대화하면서도 지난해엔 정의와 도덕 책을 읽는 열풍이 불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지금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옳다고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르다고 한다. 이번에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서도 보았듯이 물질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요즘 세태다. 그렇기에 도덕성에 대한 갈구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태양광선을 한번 생각해보자. 태양광선이 내려쪼이면 수분 공급을 해줘야 한다. 수분공급이 잘못 되면 한나절도 못돼 농작물은 죽는다. 그러나 수분공급만 잘해주면 태양광선은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경사스러운 것이다. 물질문명이 태양광선이라면 도덕문명은 수분과 같다. 물질문명이 높으면 높을수록 도덕문명의 갈구는 심화된다.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교조)님은 지금은 정치인이 정치막을 벌이지만 앞으로는 정치막이 내리고 도덕막이 오를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자기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 신문과 방송도 마찬가지 아니냐. 옳은 말을 크게 취급하고, 아름다운 소식을 많이 들려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대학 다닐 때 원광대 원불교학과생들은 원불교중앙총부에서 함께 살면서 농사도 지었다. 타작을 하다가 중간에 쉬는데, 참을 먹고 심심하니, 여학생을 가운데 놓고 울리자고 했다. 그래서 ‘운다’, ‘운다’ 하니, 가운데 여학생이 ‘내가 울긴 왜 울어’ 하더니 결국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울었다. 그렇게 울고 있을 때 이번엔 웃겨보자고 했다. 그래서 둘러앉은 남학생들이 ‘웃는다’, ‘웃는다’고 계속 하니, 한참 울던 여학생이 ‘킥킥’하다가 웃으며 도망을 갔다. 그게 말의 위력이다.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좋을 일이 많이 생긴다. 자녀 교육할 때도 꾸중은 조금 하고, 칭찬은 많이 해줘야 한다. 방송만 듣고 있다보면 우리나라는 천하 못된 놈의 나라다. 남북 문제도 부정적 요인과 긍정적 요인이 함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긍정 요인을 키워서 나머지 부정 요인도 금정 요인으로 바꾼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사람은 긍정적 요인이 많음에도 이를 신장 시키기는커녕 더 부정적인 요인으로 돌려버린다. 남북관계가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 갖고 있는 상황보다는 낫다. 우리가 북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대등한 입장도 아니다. 자꾸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최근 신문들이 새해 ‘행복’을 화두로 한 신년기획들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가 교육열도 높고, 경제 성장 속도도 빠른데,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열등감이 높아 불행해 한다는 분석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민족성이 자기 만족도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사회 구조 자체가 모든 것이 공명정대해져 편법이 통하지 않고, 원리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면 불만스러운 것이 적어질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것이 여유로움에도 내가 사는 것은 원리원칙에 의해 정직하게 살았음에도 편법을 동원해 사는 사람들이 더 성공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려면 결과적으로 나는 인생의 낙오자이고, 편법자는 인생의 승리자처럼 비춰져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원리원칙에 의한 사회 관행이 정착되면 좀 못 살더도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는 원칙에 의해 정직하게 사는데, 뒤쳐진다면 화가 나는 것이다.”
-성격적 문제는 얘기할 게 없다는 것인가.
“물론 이웃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감정적 사고방식은 고쳐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큰 인물일수록 수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순신 장군은 그 곤욕을 치르고, 백범 선생을 죽이지 않았는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했다면 지금까지 분단의 고통을 겪지않아도 될 텐데, ‘내가 미국으로 붙으면 출세할까, 소련으로 붙으면 출세할까’ 이기심으로 사대주의를 꾀해 이렇게 된 게 아니냐. 오스트리아는 통일을 했는데, 우리는 못한 것은 우리 지도자들이 그만큼 용렬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 뭘 해보기도 전에 탄핵을 시도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을 잘못했다고 하지만 잘못한 것만 가지고 말하지 않고, ‘엠비 아웃’이라고 했다. 뭐든 정도에 지나치다. 위대한 국민은 위대한 지도자를 더 위대하게 만들고, 용렬한 국민은 위대한 지도자를 용렬하게 만들어버린다. 또 위대한 지도자는 위대한 국민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 용렬한 지도자는 위대한 국민까지 용렬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지도자가 되고, 어떤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인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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