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한담] 가톨릭의 ‘기인’ 정호경 신부
▲ 정호경 신부와 그의 애견 반달이
“피땀 밴 밥이 성체”…뼈와 정신에 묵상 각인
불교와 노자·장자에도 해박해 종교 벽 훌쩍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톨릭의 정호경(67)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가톨릭에서 찾아보기 쉽지않은 은수자(은둔수도자)입니다. 가톨릭에서 수도자들은 통상 수도원에서 수도하지요. 그러나 그는 수도원에도 머물지 않고 홀로 산골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교의 반야심경과 장자, 인도의 우파니샤드 등을 해석하기도 해 가톨릭의 ‘기인’으로 불리는 인물이지요.
낙동강 줄기인 청량산 기슭에 15년째 살면서 가톨릭계 언론사의 기자들조차 발걸음조차 못하게 했던 그로부터 방문을 허락받고 그를 향해 가는 길은 설레임 자체였습니다.
신부님은 오래전부터 만나보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70~80년대 독재시절엔 소외받고 핍박받는 농민들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엔 홀로 산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삶을 꼭 만나보고 싶었지요. 또한 그는 가톨릭 신부님이지만, 불교와 노자·장자에도 해박해 종교의 벽을 넘어선 큰 그릇으로 보였지요.
낙동강 줄기 옆 청량산 아래, 마을 이름도 맞춤한 듯 ‘비나리’
신부님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필요한게 없느냐”고 여쭤보았지요. 그러자 신부님은 “두부나 한 모 사오라”고 했습니다. 거침 없이 두부 한 모 사오라는 말씀이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서울을 출발하는 아침 공덕 시장에 들러 두부 한 모를 샀습니다. 또 신부님이 혼자 사시기에 2~3일에 드실 수 있을만큼만 조금씩 사과와 배, 감귤을 샀습니다.
경북 봉화로 향하는 길을 하늘도 축복하듯 눈발이 휘날렸습니다. 서울에서 원주로,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다가 풍기나들목을 나가 영주시내를 지나 봉화에 이르러서도 다시 봉성가는 길을 한참이나 따라내려가니 산골의 낙동강 줄기와 만났습니다. 신부님이 사는 곳은 낙동강 줄기 옆 청량산 아래 비나리 마을이었습니다. 비나리란 ‘행복을 비는 기도’란 뜻입니다. 은수자가 머물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비나리에서 정 신부님과 만남은 아래 기사에 적었습니다.
민주화 앞장 두차례 징역…교구 급여도 안 받아
그 마을 안 통나무집에 들어가니 개가 먼저 달려나와 반긴다. 지난 5월 별세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쓴 <비나리 달이네 집>에 등장하는 주인공 개 ‘달’에 이어 이 집을 지키는 다섯살박이 ‘반달’이다. 그도 ‘달’과 마찬가지로 세발이다. 마을 사람들이 놓은 덫에 다리를 잃고도 어느새 자신의 ‘장애’를 잃은 채 온몸의 환희로 객을 반기는 반달이의 환영을 받고 있는 사이 통나무 안에서 나머지 반달 정호경(67) 신부가 나온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1970~80년대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 등으로 민주화에 앞장서 두차례 징역살이를 하며 이름께나 알려졌던 그에게서 ‘사제’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는 한국 가톨릭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예외적인 신분’이다. 여전히 신분이 사제이긴 하지만 15년째 안동교구로부터 일체의 급여도 거부한 채 손수 지은 집에서 그저 농사짓고 밥짓고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무위 자연 그대로 “밥부터 먹자”며 부엌으로 손 끌어
수도원에도 살지않고 홀로 세속에 나와 살아가는 이 ‘은수자’(은둔 수도자)의 삶을 최초로 외부에 드러내는 객을 맞아서도 그는 평소 즐겨있는 노자와 장자의 ‘무위 자연’ 그대로 “밥부터 먹자”며 스스럼없이 부엌으로 손을 끈다. 농민의 피땀으로 거둔 밥이야말로 진정한 ‘성체’(하느님의 몸)로 여기는 그이니 식사야말로 진짜 미사다. 객이 사간 두부를 넣은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는 사이 그는 2천평의 땅에 직접 심고 가꾼 하얀 쌀밥과 묵은 김치 등을 차린다. 그리고 소주를 꺼내 반주 한 잔을 권한다. 농사철 들판에서 지나는 이들을 불러 막걸리 한 잔을 권하는 시골 인심이다. 식사를 하는 사이 반달이는 정 신부의 발에 얼굴을 부벼댄다. 정 신부는 자신의 입에 밥한술을 넣은 뒤엔 꼭 반달이 먹을 것도 한입 챙겨준다. 평소 왕성한 식성을 자랑하는 반달이는 정 신부가 외출하면 몇날 며칠이 지나도 밥을 먹지않은 채 마을 입구쪽만 하릴 없이 바라보고 서 있다. 그래서 정 신부는 농한기가 되어도 그런 반달이가 안타까워 외출도 마음놓고 할 수 없다.
긴긴밤 홀로 앉아 성경 구절 목판에 한 자 한 자 새겨 ‘비나리’
식사를 마치고 옮겨간 그의 방은 그가 겨울 긴긴밤을 홀로 보내는 수도실이자 공부방이고 작업실이다. 그는 두해동안 그가 골라 뽑은 성경 구절과 나무에 새겼다.
▲ 정호경 신부의 ‘전각성경 마음을 새긴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께 있어야 해요. 80살인 옆집 할아버지는 겨울에 밤이 긴게 제일 괴롭데요. 그런데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할머니가 불도 못켜게 하니, 죽을 노릇이라네요. 그런데 저는 마누라가 없으니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얼마나 좋아요.”
그가 긴긴밤 홀로 앉아 한 자 한 자를 목판에 새기는 과정이야말로 그에겐 ‘비나리’였다. ‘주님 면전에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를 새기면서 그는 속마음을 아낌 없이 털어놓았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새기는 동안엔 그는 공기로, 밥으로, 이웃으로, 반달이로 오신 하느님의 사랑이 가슴에서 깨어났다.
그가 새긴 전각과 단상을 모아 이번에 출간된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햇빛출판사 펴냄)는 이처럼 그의 뼈와 정신에 각인된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학자인 정양모 신부는 “전각성경이라,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이 기인(奇人)이 저질렀다”면서 “그의 ‘단상’에선 청량산 도인이 묵상한 신의(神意)를 엿보고 전각에선 그의 필치 신운(神韻)을 즐기기 바란다”고 추천했고, 이해인 수녀는 “현실에 접목시킨 예리한 통찰에 우리 마음의 눈이 뜨이고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다.
한 달 10만원, 단감 스물여섯 개만으로도 부족 몰라
그를 아는 이들이 이렇게 그의 전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말씀이 목판에만 아니라 그의 삶 속에 새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인지 모른다. 돈과 출세를 위해 젊은이들이 대탈출하고 텅 빈 시골 오지마을에 들어가서 그는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과 짐승이 함께 하는 행복한 비나리했다. 농사철엔 부지런히 벼농사를 짓고 매실나무를 가꿔 결실을 이웃과 나누고, 밤이 긴 겨울철 농한기가 되면 농사철에 못다한 뭔가를 했다. 그가 농한기 3~4개월만에 매년 해낸 일들은 성과와 결과에 목매다는 도시인들도 납득치 못할 놀랄만한 것들이다. 어느해엔 한철 농한기만에 일본어를 익혀 일본 동화책을 번역해내고, 다른 해엔 중국의 고전 <채근담>을, 그 다음해엔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그 다음해엔 일본어 명작 <설국>을 번역해냈다. 이런 그의 저작들은 출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작품이 좋아 번역해 본 것일 뿐이다.
그의 이런 무욕과 무위의 삶을 보아왔기에 권정생 선생이 사망 전 자신의 저작물 관리 등을 부탁한 3인 중 한명으로 그를 선택한 것일게다.
다시 방을 나와 텃밭으로 나간 그는 감나무를 가리키며 “단감 스물여섯개가 열려 잘 나눠먹었다”고 했다. 한달 생활비 10만원, 단감 스물여섯개…. 그 것으로 부족함이 없다면서 기쁘게 보듬은 정 신부와 반달이, 두 은수자 사이로 전각에 새겨진 ‘말씀’이 바람처럼 비나리의 기도로 달려온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신약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11절)
봉화/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은지희 피디 eu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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