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의 길 묻다④ 김종철 선생 즉문즉설
경제발전으로 근본 잃어, 진보 아닌 벼랑끝 향해
대안학교 다녀 농촌 살게 하고 대학 보내지 마라
지난 20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강당에서 생명평화결사가 탁발순례를 마치면서 마련한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란 주제의 네번째 즉문즉설이 펼쳐졌다. 법륜 스님과 김경재 목사, 장회익 교수에 이은 네번째 타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다. 김 발행인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남대 교수를 지내던 중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해 생태 환경문제를 대중적으로 일깨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선구자다.
기성 교단은 영리단체…자기 한계 인식하는 종교적 시선 꼭 필요
-우리나라에선 종교인들이 생명운동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 선생은 종교인이 아닌가?
=교회나 절에 나가서 기도드리고, 목사나 신부의 설교나 강론을 듣고, 성경이나 불경을 읽는 사람이 종교인이지 일요에도 늦게까지 잠자고 충동적으로 불경이나 성경을 보고, 몹시 괴로울 때만 하느님이 입에서 나오는 나같은 사람이 종교인이겠는가. 영국의 작가 로렌스는 소설 <무지개>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고 느낀다고 썼다. 그는 교회에 욕을 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종교적이었다. 이런 의미에선 나도 종교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갖고 있는 편이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해나가는데 있어서 종교가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역할을 한다. 종교라는 게 우주 속에서 자기라는 존재를 의식하자는 깨침이잖은가. 이런 깨침 없이 우리가 부닥친 생명의 위기, 이 사태를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기성 교단이 꼭 필요하느냐는 점은 별개 문제다. 기성 교단은 종교라는 이름의 영리사업을 하는 단체니 오히려 우리가 극복을 해나가야될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서 각자가 겸손, 자기 한계를 인식하는 종교적인 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녹색운동 성공 기약 못 하지만, 그 길 걸어간 발자취 자체가 중요
-김 선생과 도법 스님이 주장하는 바, 추구하신 바가 다르지 않을 것인데 같이 운동을 할 생각은 없는가?
=지금 여기, 같이 하고 있지 않느냐. 뭘 원하는가. 생명평화순례단과 한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스님, 목사, 신부들이 직접 거리에 나와 생명운동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있느냐? 없지 싶다. 그 분들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니 세속인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한참 할 때 맨날 잔소리했다. 빨리 쓰러지라고. 단식이 그렇게 50일, 60일 넘어가면 앞으로는 한국에선 단식할 사람이 없다고 그랬다. 농담이지만 순 농담만이 아니었다. 도법 스님의 걷는 방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편한 방법이어서 좋다. 쉬어야 좋다. 권정생 선생(동화작가)은 내 글이 어렵다고 했다. 권 선생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은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그런데 나는 안 된다. 권 선생은 국민학교 나왔는데 나는 대학원 나오지 않았느냐. 더구나 30년 동안을 대학에서 가르치고, 영어를 우리말처럼 썼다. 내 삶이 대중들하고 같이 있어봤느냐. 아무리 의식이 날카로워도 대학 선생일 뿐 대중들 속에 뿌리가 없다. 나름대로 이런 한계를 고쳐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늙어죽을 때까지 못 고칠 것이다.
-힘을 합쳐 좀 더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게 주위의 논리에 말려들어가는 것 아닌가. 효과적일 것이냐,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냐, 그걸 생각하면 일을 시작 못한다. 성공 여부를 처음부터 생각하면 아무 것도 시작하지 못할 것이고, 백전백패할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리에서 이걸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녹색평론> 안하면 미칠 것 같아서 하는 것일 뿐이다. 사회에 뜻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걸 안하면 이 신경질을 풀 길이 없다. 억압을 풀 길이 없다. 도법 스님도 걷는 게 좋아서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다. ‘생태운동 해서 2015년에 이 나라 접수하자.’ 이런 것은 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우리는 국가 권력을 뺏을려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자신의 권력을 뺄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으로 성공 여부를 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관되게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다. 녹색 운동, 생태주의 운동, 생명 살리자는 운동은 솔직히 꼭 성공을 기약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성공하지 못할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 길을 걸어간 발자취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내 아들의 아들에게도 아버지 뜻대로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생동안 잡념 없이 길을 갔다는 게 정신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효과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가는 게 좋다.
농민들 돈이 안 된다며 보리밭 불태우는 것 보고 기가 막혀
-2000년대 들어와 ‘생명평화’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왜 우리사회에서 그런 말이 많이 쓰이는가?
=사회가 생명 평화 분위기가 아니니 이 말이 쓰일 것이다. <녹색평론>을 주의깊게 보면 생명평화라는 말은 안 쓴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말에 대해 엄격한데, ‘평화’로 족하다. 요즘 덮어놓고 생명, 생명한다. 생명산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돈을 벌려는 산업과 생명이란 말이 함께 붙어서는 안된다. 말의 타락이 극한에 이르고 있다. 황우석 사태가 태표적이다. 생명을 살린다고만 하면 앞뒤 따지지 않고 지고의 선으로 여기는데, 무조건 생명을 연장하며, 인간의 한계를 무너뜨리는게 생명 존중인가? 불교 스님과 신자들이 왜 그렇게 황우석을 옹호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생명이란 말을 좀 아껴야한다. 좋은 말도 너무 많이 쓰면 본래 맛이 없어져 버린다. 그 말을 아끼자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녹색평론>을 시작하게 됐나?
=40대에 들어서며 몸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예민해지니 주위의 살아있는 것, 목숨도 예민하게 다가왔다. 단식을 두어번 했는데 단식 도중 들길이나 야산길을 산보하면서 풀을 밟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밟아야 하긴 했지만, ‘이것도 내 생명인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건강을 잃었는지 생각해보니, 바깥이든 안이든 결국 환경과 조화를 잃어버린 때문이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이미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이게 길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력의 발전을 지향하는 것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매한가지인데 발전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가는 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구체적인 계기는 91년 봄에 농민들이 보리 타작을 해봐야 돈이 안된다면서 보리밭을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때 굉장히 놀랐다. 나는 경제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경제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다 지어놓은 농사도 뒤집고 불태우는 것은 엄청난 불경 아닌가. 물론 농민들의 잘못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어난 구조적 문제다. 그러나 보리고개를 경험해본 분들에게 보리밭을 태운다는 것은 절망적이고, 세상이 끝장났다는 충격적인 경험이고, 환경 파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기가 막히고 인간성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이래가지고는 인간다운 삶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때 그런 애기를 <해인지>에 썼다. 그랬더니 이화여대 이남덕 교수가 편지를 써왔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나라도 지식인 사회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100만원을 부쳐왔다. 그 일을 당장 시작하라고 했다. 결국 이남덕 선생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저 보다 더 마음이 절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이 자기가 꼭 해야할 일을 당신이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보다 윗세대에 계신분들이 그 사건을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게 생각했다.
제일 질긴 게 자본주의지만 그대로 두고는 아무 것도 안 돼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한국 자본주의가 따로 있는게 아니고 글로벌경제의 일부이니, 우리만 끝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한참 갈 것이다. ‘금융 쓰나미’를 보면서 ‘자본주의의 종언’ 예측도 없지 않지만. 제일 질긴게 자본주의인 것 같다. 그러나 시초가 있으니 끝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두고는 아무 것도 안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많이 어려워질 것이다. 근본적인 딜레마가 지금과 같은 경기후퇴다. 나는 몇년전부터 이런 사태가 올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태가 올 때마다 없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니, 그런 점에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일단 다른 문제는 접어놓고 일차원 적으로 생각하면 자원 파괴, 환경 파괴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현상을 잘 활용해 많은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협동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제 조금이라도 체계적으로 이런 시기에 비자본주의적으로 사는 방법을 개척해야 한다.
-생태적으로 살면서도 행복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따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을 어디가서 찾을 수 있는가?
=권정생 선생은 평생 혼자 살며 앉아서 한시간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병을 안고 살았다. 그런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보기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난 뒤 (안동) 동네에서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행복하게 보냈더라. 끝까지 글을 쓴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동네에서, 마을에서 이웃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우스게 농담하고 그렇게 지낸 삶이 있었기에 인간에 대한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 사람이란 혼자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은거의 삶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속에서 사심 없이 돕고 어울려 재미있게 사는 것이 이상적인 것 아닌가. 옛 우리 시골 마을이 그랬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만 집단을 이뤄 모여 사는 것 말고, 마을에서 살다보면 때론 싸울 수도 미워할 수도 있지만 조화롭게 살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돈이 없어도 앞다퉈 돕는 ‘마을의 힘’ 잃어
사춘기에는 아버지를 굉장히 싫어했다. 빨리 돌아가셨으면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보면 인간적으로 앞세대가 건강했다.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뒤주에 1주일 분 이상의 쌀이 있었던 적이 없다. 어른들은 늘 쌀겨나 깻묵을 먹었지만 우리 형제들은 잘 굶지는 않았다. 또 우리보다 못사는 친척들이 오면 그런 속에서도 쌀을 나눠주고, 자식들을 건강하게 키웠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 세대가 자식들을 잘못 키우고 있다. 우리 부모들은 근본적으로 강인하기도 하고, 어떤 선은 지켜야 한다고 했고, 자신은 돈이 없어도 당장 굶어죽는 사람은 도와야 한다고 했고,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도왔다. 그것이 마을의 힘이다. 모든 문제가 마을을 잃어버린 데서 왔다.
지난주 볼일 있어서 시내 왔다가 혼자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비어있는 홀 한쪽 구석에 앉아 생태탕을 시켰는데 1인분은 안판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예전엔 거지가 와도 밥을 줘 보냈다. 그러나 요즘은 경제가 발전하고 사람답게 산다고 하지만 근본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녹색평론> 본다고 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사무실에서 오만 가지 얘기 다 듣고 산다. 이 종이 쓴다고 야단치거나, 그럴려면 책 내지말라, 살지를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구에 있던 <녹색평론> 사무실을 서울로 옮긴 지 며칠 된다. 그 날부터 돈 좀 벌어볼라고 왔느냐는 이메일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신경질이 가득 찼다. 남에게든 자기에게든 화가 잔뜩 나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너무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도 안된다.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속으로는 행복해도.
나는 10년 전에 비해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기본적으로 행복하다. 세상이 내일 망한다고 해도 나는 행복하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죽을 지경이다. 한가롭게 지내야 진정한 자유인인데. 너무 바쁘다. <녹색평론>만 걷어치우면 굉장히 한가롭게 살 수 있다.
교육에 볼모 잡혀 물질적·정신적으로 자유롭지 못해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고 있는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들은 자식들을 대안학교 보내는 분들과 자기 자식 대학 안 보내는 사람들이다. <녹색평론>은 내년부터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농민들이 자식을 도시학교 보내고, 대학 보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노예가 된다. 시골의 비즈니스맨들이 빚이 많지, 영세농이나 소농들은 큰 빚 없다. 대신 수입도 거의 없다. 2천~3천평 농사 지으면 먹을 정도 건지고 가을 수확해봐야 5백만원 정도 떨어진다. 논에서 일한 것으로 보면 말도 안된다. 적자 살림이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 생각하면 겸업 해서 뼈가 빠지게 작물 심어야 한다. 그래서 1년 내내 고달프기 짝이 없다. 그러나 자식들을 도시 학교 안 보낸다면 편하다. 농민들이 자식 대학 안 보내고, 도시 학교 안 보낸다는 각오를 하고 살면 농촌이 좀 더 윤택해질 것이다.
철없는 소리가 아니고 농민들과 얘기해보고 하는 얘기다. 문제는 그만한 용기가 있느냐, 사람답게 살 것이냐다. 이제 도시에서 대학 나오고 박사 받고도 무능력자가 많다. 한국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볼모 잡혀 있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중 얘기에 흥분하는 이유가 뭐냐. 내가 초연하면 미친 놈들이 국제중을 하든 말든 상관할 필요 없다. 저 사람들 설득해서 같이 갈 수는 없다.
우리끼리 행복하게 사는 것, 그중의 하나가 대안학교 보내는 것이다. 대안학교가 모자라면 만들면 된다. 홍성풀무학교가 15~16년 전부터 알려져 예전엔 학생 수가 적었는데, 이젠 홍순명 선생 손자들도 입학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런 공정성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손자들이 두번이나 떨어지고, 세번째 손자가 겨우 됐다고 한다. 그러니 대안학교가 더 필요하다. 그들을 받아들일 장이 있어야 하거나. 꼭 건물이 있을 필요도 없다. 천지가 운동장이다.
동아시아에선 소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진보다
-지금까지 노동운동하면서 비정규직이 많은 현실에서 생태운동은 배부른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운동은 갈수록 벽에 부닥칠 것이다. 농촌이라는 근거지가 어느 정도 살아있을 때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에 겁을 낸다. 노동자들이 돌아갈 데가 없다면 막 대한다. 영국 노동운동을 공부해보니, 산업혁명 초기에 제일 활발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나온 1세대들, 물론 농촌이 살만하지 않으니 나왔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었다. 4~5대는 끈이 끊어졌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절대 해결 안 된다. 서비스직에서 그만큼 직장이 나온다면 지구로선 더 비극이다.
동아시아에선 소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진보다. 서구와 다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해야지. 농촌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농촌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문제다. 수출로 농촌 살리는 그런 길로 가서는 안된다. 대안학교 졸업시켜서 농촌으로 가서 살라고 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 때문에 농촌에 못 간다고 한다. 의료문제같은 것도 솔직히 얘기해보자. 잘 안 프지않은가. 너무 겁을 낸다. 의료 문제도 학교와 꼭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왜나하면 아직도 옛 전통 의료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가지씩 비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의료 생협이 전국적으로 있다. 광주에서도 계획하고 있다. 꼭 의사가 참여 안해도 된다. 부황, 침, 뜸으로 치료된다. 그런 걸로 치료 안 되면 죽으면 되잖은가. 억지로 살려고 하는 데서 모든 게 뒤틀어진다. 장기이식이 그렇다. 내 친척 중에 미국에 가서 장기이식을 해서 생명을 5년간 연장하는 대가로 들어간 돈이 15억원이다. 그건 의술이라고 할 수 없다. 특수한 귀족의 사치품이다. 그것까지 우리가 나눌 수가 없지 않은가. 뜸, 부황 해보자고 하니 돈 많고 학벌 높은 사람들은 민간 의료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한다. 민간의료에 의존해야 삶의 질이 달라진다. 현대 의학이 모든 병을 다 고쳐주는가. 어차피 못 고친다. 사람들이 속임을 많이 당하고 있다. 우리 집안에도 의사들 많지만 못 고치는 게 많다.
이발사 하더라도 신망 받고 민주시민으로 살면 엘리트
농촌생활을 하면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끊임 없이 배워가지 않을 수 없다. 우주에서 한계를 가진 게 인간이라는 것을 일년 사시사철 깨우쳐준다. 그런데도 근본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요즘은 대안학교도 ‘특목화’되는 곳이 적지 않다.
=대안학교가 엘리트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엘리트도 나올 것이다. 일제 때 일본에서 정규학교가 군국주의 교육만 시키니, 사회주의자들이 동경에 대안학교 세웠다. 그 학교는 정규학교도 아니고, 전교생이 100명도 안됐지만 역사를 보면 엘리트들이 많이 나왔다. 주류사회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 검·판사 되고 고위 공무원 되어야만 엘리트인가. 이발사 하고 국수 장사하더라도 동네에서 신망 받고 좋은 인간관계 유지하면서 민주시민으로 살면 엘리트다. 이런 식으로 엘리트들이 넓혀질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대안학교 엘리트 교육이 가능하다.
요즘은 엘리트들이 더 자기밖에 모른다. 부모 형제끼리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별 유산이 없어서 우리 형제들은 안 그럴 줄 알았다. 아버지는 조그만 아파트 전세금밖에 안 남겼는데 그것 가지고도 마음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라.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쥐뿔도 한 게 없으면서도 그렇게 되더라.
-<녹색평론>에 이슬람의 신비주의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슬람 패권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들의 신비주의 전통에서 가난에 대한 영성은 대단하다. 이란 전 교육부장관 마지드 자흐네마는 공생공락의 가난을 주창했다. 가난하지 않은데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겠는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재산은 타자다. 우리 부모는 딴 사람에게 절대 가혹하게 하지 마라, 원망 살 일은 하지 마라고 했다. 타자를 왜 만나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만난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니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부모님 세대가 천국에 가깝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라는 추상적 논리는 의미 없다. 그렇다고 자살폭탄을 긍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 3자가 겪어보지도 않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근대 일본의 양심적 지성 중 스루미 순스케가 있다. 그가 전후에 한 것이 2차대전 말기 전향자들의 기록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고나서 그는 전향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한다고 했다. 절체절명에 직면해 보지 않고 전향을 무조건 욕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용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절벽을 맞닥뜨리지 않고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는가.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게 미전향의 사상이다.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은 대부분 10대인 고교 때부터 마르크스의 책을 읽으며 물들었다. 그들은 한번도 밑바닥 현실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향의 분위기에서 책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대부분 전향을 생각했다.
좌익 지식인들의 병폐는 얄굿은 미전향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문기자도 잘 모른다. 모르고 쓰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나. 타자들의 극한적 상황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불합리하다. 자살폭탄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규정 지을 자신이 없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살 생각은 없는가?
=1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밥을 먹고, 생각을 나누고, 이자 없는 금융운동 통해 서로 도우며, 몸은 한곳에 상주하며 살지 못하지만, 정신적인 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 시골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 야코를 죽이지 말고, 도시에서 가난한 삶을 조금이라도 해가는 게 중요하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다음 즉문즉답은 △다석학회 회장이자 성서 신학자인 정양모 신부(27일) △생명평화탁발순례 단장이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인 도법 스님(12월4일)으로 이어진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10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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