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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새 눈’ 뜨게 한 9할은 죽음과 고통, 공포

등록 2008-03-05 17:59

[조현이 읽은 책] ① 죽음 넘어서는 다섯 권의 책 읽기 전에

‘그 이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삶이 바뀌어

경허 선사도 ‘덜덜’, 한계 깨닫고 초심으로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아이고, 빨리 죽어야 할 텐데, 빨리 죽어야 할 텐데…”라고 하소연하듯 말하는 할머니에게 “그러게요. 빨리 돌아가셔야 할 텐데요”라고 말하는 사오정은 없을 것이다. ‘못살겠다’는 원성이나 하소연은 ‘살고 싶다’는 강렬한 외침임을 우리는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으니깐.

 그러나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라도.

막상 닥치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한탄만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 돈 벼락을 좀 맞아볼까, 어떻게 저 멋진 사람과 데이트를 한 번 해볼까, 어떻게 해야 저 미운 놈 골탕을 좀 먹일 수 있을까에 대해선 끝없이 머리를 굴리면서도, 죽음을 준비하는 데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놓고도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라며 황당해 하고, 신을 원망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오늘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때늦은 탄성을 토해낸다. “이렇게 죽는다고 제발 알려주기라도 할 일이지”라면서.

 그러나 왜 알려주지 않았겠는가. ‘산자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다 간 모든 사람이 몸으로 말해주었고, 부처님도 알려주고, 예수님도 알려주고, 세상의 많은 책들이 알려주었건만 죽기 싫은 마음에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을.

 죽음에 대해서 알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는 순간’과 ‘죽음 이후’의 평화를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이를 잘 준비하면 할수록 삶이 변화되고, 집착과 갈증과 고통은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 행복과 평화와 기쁨은 늘어난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평생 간과한 불안과 공포 몇 배로 되갚음 당해

 그것이 ‘조현이 읽은 책’에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첫 번째 테마로 정한 이유다. 만약 죽음에 대한 책 몇 권을 가슴 깊이 새긴다면 누군가가 대학까지 다니고, 박사학위를 몇 개 따고, 수많은 고뇌를 한 것보다 영적으로 진보할 것이다.

 내게도 영적으로 이나마 눈을 뜨게 한 것은 9할이 고통과 죽음이었고, 불안이었고, 공포였다. 불안과 공포가 없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앞에 뜨거운 주전자가 놓여 있어도, 벼랑이 있어도, 물가에서도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가라데로 세상의 주먹을 제패하면서 최강자를 자처했던 최배달도 대결을 할 때마다 한 번도 공포를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세인이 ‘절대강자’인 죽음 앞에서 어찌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인가. 근대의 대선사 경허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마을에 들어갔다가 죽음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죽음 앞에서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던 자신의 한계를 처절히 깨닫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러니 보통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그런 불안과 공포가 그런 위험한 상황을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롭게 통과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죽음에 대해 불안과 공포조차 갖지 않은 이들은 마지막 순간 평생 간과한 불안과 공포를 몇 배로 되갚음 당하며 까무러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섯 권 책 다루며 차원 높은 세계로 안내  

 

 여성수도자의 ‘강가강’편에서 3번에 걸쳐 죽음을 얘기했다. 이를 이어 이번엔 다섯 권의 책을 차례로 다뤄보려 한다. 파드마 삼바바의 <티벳 사자의 서>와 퇸둡의 <평화로운 죽음 기쁜 환생>, 스베덴보리의 <영의 세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생>, 능행 스님의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다.

 최근엔 <인생수업>을 비롯해 죽음에 대한 책들이 대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유의 책에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읽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 부터여서 여기서 다루는 책들은 최근 베스트셀러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런 책들을 접함으로써 나는 죽는 순간과 죽음 이후만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전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삶을 차원 높은 세계로 안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사용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믿는다’는 단어로 강조하는 데서 죽음을 넘어서는 책들을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 전환 포인트가 될 것인지 눈치 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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