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다왕이 물었다.
“존자 나가세나여,다음 세상에 환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이름과 형태가 다른 세상에 환생합니다.”
“현재의 이름과 형태가 다음 세상에 환생합니까?”
“대왕이여, 현재의 이름과 형태가 다음 세상에 환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이여, 현재의 이름과 형태에 의해 선 혹은 악한 행위(업)를 짓고 그 행위에 의해 다른 새로운 이름과 형태가 다음 세상에 환생합니다.”
“존자여, 만일 현재의 이름과 형태가 다음 세상에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까?”
존자가 답했다.
“만일 다음 세상에 또 태어날 일이 없다면 사람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러나 실제로는 다음 세상에 또 태어나기 때문에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망고나무 열매를 훔쳤다고 합시다. 망고나무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 끌고 나와 ‘왕이시여, 이 남자가 저의 망고 열매를 훔쳤습니다’라고 했을 경우 그 남자가 ‘왕이시여, 저는 이 사람의 망고 열매를 훔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의 열매와 제가 훔친 망고의 열매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처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대왕이여, 그 남자는 처벌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존자여,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 의해서입니까?”
“존자여, 그가 가령 그와 같이 말하여 최초의 망고 열매를 현재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후의 망고 열매에 관하여 그 남자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현재의 이름과 형태에 의해 선 혹은 악한 행위를 짓고 그 행위에 의해 다른 새로운 이름과 형태가 다름 세상에 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쌀을 훔쳤다고 합시다. 쌀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 끌고 나와 ‘왕이시여, 이 남자가 저의 쌀을 훔쳤습니다’라고 했을 경우 그 남자가 ‘왕이시여,저는 이 사람의 쌀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쌀과 제가 훔친 쌀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처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대왕이여, 그 남자는 처벌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존자여,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 의해서입니까?”
“존자여, 그가 가령 그와 같이 말하여 최초의 쌀을 현재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후의 쌀에 관하여 그 남자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현재의 이름과 형태에 의해 선 혹은 악한 행위를 짓고 그 행위에 의해 다른 새로운 이름과 형태가 다음 세상에 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왕이 물었다.
“그렇다면 존자 나가세나여, 당신은 다음 세상에 생을 맺습니까?”
“대왕이여, 그만 두십시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나는 이미 앞에서 ‘대왕이여, 만일 내가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다면 다음 세상에 생을 맺을 것입니다. 또 만일 집착을 갖고 있지않다면 다음 세상에 생을 맺지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왕의 정무를 처리한다고 합시다. 왕은 그에게 만족하고 정무를 일임할 것입니다. 그는 왕의 정무에 종사하는 일에 의해 다섯가지 욕망의 대상을 부여받아 그에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만일 사람들에게 ‘우리 왕은 어떤 정무도 처리하지않으신다’라고 했을 경우 대왕이여, 실로 그 사람은 올바르게 행하는 자라고 하시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이 질문을 다시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이미 앞에서 ‘대왕이여, 말일 내가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다면 다음 세상에 생을 맺을 것입니다. 또 만일 집착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다음 생에 생을 맺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잘 알았습니다. 존자 나가세나여.”
<밀란다왕문경>(불전간행회편 동봉 역, 민족사 펴냄)에서 발췌.
밀란다왕문경은 인도에서 그리스인인 밀란다왕과 인도의 불교 고승 나가세나 존자 간의 대화록이다. ‘누구도 자신의 의문을 해소시켜 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한탄하던 밀란다왕은 나가세나 존자를 만나 끈질지게 질문을 퍼붇는다. 이를 엮은 것이 밀란다왕문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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