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사무라이가 하쿠인 에카쿠 白隱선사(1685~1768)를 찾아와 물었다.
"지옥이니 극락이니 하는데 그런 것이 절말 있습니까?"
하쿠인은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사무라이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그 사무라이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뻐기며 대답했다.
"나는 천황 폐하를 곁에서 시봉하고 있는 사무라이요."
이 말을 듣고 하쿠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사무라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꼭 골목대장 같소."
이 말에 사무라이는 격노했다. 사무라이게 있어 모욕은 그
무엇보다도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벌떡 일으나며 칼을 뽑아 하쿠인의 목에다 댔다.
곧 하쿠인의 목이 떨어질 참이었다.
하쿠인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금 지옥의 문이 열렸소이다."
사무라이는 지옥이 무엇인지 퍼뜩 알아차렸다. 그리고 하쿠인 선사의
도가 얼마나 높은지도 보았다. 날카로운 칼이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은 생사에 초연한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사무라이는 잠시 망연자실하여 서 있더니 이윽고 칼을 던지고
그 자리에서 하쿠인 선사에게 큰 절을 올렸다.
이 모습을 보고 하쿠인 선사가 말했다.
"방금 극락의 문이 열렸소이다."
일본 선승들의 일화집 <다섯 줌의 쌀>(최성현 엮음, 나무심는사람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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