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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늘 근심걱정 없이 소망을 잃지않은 사람

등록 2011-07-13 15:54

 이웃에 비친 김교신의 모습에 대하여, 장기려 박사의 친구였던 김석목 전서울대 교수가 정릉에 들렀다가 김교신의 동네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김교신을 말한다>에서 인용한다. 농사를 짓는 왕씨는 자기가 가장 숭배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김교신을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거의 하루같이 세력을 따라 바쁘고 남을 헐뜯고 속이기에 재빠르고 먹을 것을 찾아 분주하고, 영달을 노리어 혈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학식과 명망이 높아지면 사람과 멀어지고 부자가 되면 사람을 몰라보게 되고 보암직해지면 사람을 얕잡아 보려는 것이 일쑤가 아닙니까? 그러나 내가 아는 양반 가운데는 분명히 그렇지 아니한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이가 곧 김교신 선생이십니다. 그는 언제 보나 한결같이 평범하십니다. 모든 사람들과 느닷없이 가까우십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십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그에게서는 설레임과 흥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항상 조용하나 낙심하는 빛이 없고 무엇에나 큰 소망을 걸고 대쪽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어디 다 그렇습니까? 종교인들이 어디 그렇습디까? 교회인들이 어디 그렇습디까? 그들이 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나을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김 선생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면서도 자택에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무엇에나 깨끗하게 하시고 집도 정결하게 거두시고 동네 일도 다 잘되게 하십니다. 그는 정말로 모범이 될만한 인물이시지요. 그런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나도 정말로 신앙인이 어떤 사람인 줄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교신을 만난 사람들    ◇오늘에 와서 그를 생각함이 더 간절하다. 그날에는 단순히 기쁜 생각에 그랬지만 오늘에 그를 그리는 생각은 그 의미가 다르다. 오늘에는 사람이 그리워서다. 이 나라를 위해 산 사람이 그리워서다. 기쁨의 날이 지난 이후 2년에 이 소위 해방이 됐다는 나라의 미치는 꼴을 보고, 썩는 꼴을 보고, 생명의 말씀을 가진 참 산 인물이 그리워서다. 그로 하여금 오늘날 이 나라에 있게 하라. 있어서 말씀하게 하라.   함석헌(전 <성서조선> 동인, 전 <씨알의 소리> 주필)    ◇이 때 김교신이란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선교사 주도의 경건한 피안적 신앙의 보수주의적 본거지인 황평, 영남의 교권자들을 공격하면서 소위 반 구미적 기독교의 조선화에 힘썼고 아울러 철저한 애국적 신앙으로 시종 반일의 반골로 남아, 알알이 민족기독교의 찬란한 이미지를 굳히고 그 수확을 보면서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다들 전향하던 날에도, 영구한 민족의 운명과 거기 주어진 하나님의 섭리 그 소재에 불멸의 희망을 빛나도록 밝히고 떠난 김교신은 민족교회사의 정상에 서 마땅한 신실한 성도였다.   민경배(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어쩌면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인생의 지도자가 될 사명을 띠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니 선생님이 계시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도 무엇이 저절로 배워지는 것 같은 분이 바로 선생님이셨다.   손기정(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김교신의 제자)    ◇1945년 8·15의 날에, 미칠 듯이 기뻤던 그 날에 누구보다도 우리들은 선생님을 생각하고 울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든 분들은 다 그러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시기 한 달 전까지 나는 함흥에서 선생님을 한방에 모시고 지냈었다. 그 무렵에 나는 잠시 개성에 갔다가 거기서 갑자기 병이 나서 복부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선생님 벼렛의 전보를 받게 되었다. 세상이 깜깜하였다.   류달영(전 서울대 교수, 김교신의 제자)    ◇김교신 씨는 참 조선인이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 민족을 사랑하고, 조선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에는 고루한 배타적인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온유, 근면 등 조선인으로서의 생래의 도덕이 그에게는 믿음에 의해 한층 순화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애국을 삼았다. 조선인의 영혼을 새롭게 살리고 이를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백성되게 하기 위해 그는 그 귀한 일생을 바친 것이었다.   야나이하라 다다오(전 동경대 총장)    ◇김교신은 초비상적인 생활을 했다. 아니 그야말로 그가 그렇게 눈부실 정도의 비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언가 그에게 비결이라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 김교신은 남이 모르는 또 소위 동인이라는 다른 5인이 가지지 못한 지혜와 비상한 용기와 우수한 능력을 갖고 생활한 데는 분명히 어떤 놀라운 힘이 그에게 작용한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송두용(전 <성서조선> 동인)    ◇무교회주의자의 제1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교신 선생은 제가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다. 역시 큰 영향을 받고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는 함석헌 선생도 김 선생님 댁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장기려(전 부산복음병원장)     조선산 기독교를 온몸으로 살다<김교신 거대한 뿌리>(박찬규 엮음, IXEYE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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