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리 나와 봐요! 다리가 사라졌어요!” 1994년 10월 21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아내, 화장실에서 뛰어나온 나는 티브이화면에 나오는 속보에 눈과 귀를 던진다. 성수대교가 끊어졌다. 그 위를 달리던 버스와 승용차들이 한강에 처박히고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더 이상 꾸물거릴 때가 아니다.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회사로 전화를 건다. 전날 야근자에게 내 카메라도 함께 챙겨서 현장으로 달려오라 전한다. 그리고 승용차를 운전해 강변북로를 내달린다. 성수대교 인근은 벌써 아수라장이다. 차를 사고 현장 도로 갓길에 내던지듯 세우고 현장으로 뛰어든다. 강바닥으로 떨어진 시내버스 안에는 학교로 향하던 10여 명의 여중고생들과 출근하던 직장인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뒤엉켜 있다. 추락의 충격 때문인 듯 도저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할 만큼 훼손된 시신들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에 고개를 돌리게 만다. 구조대가 있는 시민 공원으로 나오니 취재헬기가 뜬다. 가장 먼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창가에 앉아 성수대교 사고 현장을 숨 가쁘게 촬영한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연신 터져 나오는 외마디, “어떻게 다리가 저렇게 끊어질 수 있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고야, 공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사고가 발생한단 말인가?” 취재 도중 알게 된 사실인데, 사고 전날 밤부터 당일 새벽까지 성수대교를 지나간 많은 운전자들이 언론사와 관계기관에 제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침 7시48분 성수대교의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48미터 트러스트가 붕괴돼,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인재가 발생했다. 부실공사와 유지보수부실 등 총체적인 문제가 드러났던 성수대교 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4년 10월 20일, 사고공화국 대한민국은 아직도 인재에 시달리는 나라의 모습을 바꿔내지 못한 채 세월호 침몰사고, 판교 환풍구 붕괴 등 대참사의 아픔을 겪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