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가 군함을 닮아 일명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섬. 일본 근대의 폐허다. 나가사키현의 남단인 노모반도에서 4km 거리의 섬. 남북으로 약 480m, 동서로 약 160m, 둘레 약 1200m, 면적 약 6만3천㎡. 1810년 석탄이 발견되었다. 1890년 미쓰비시가 매수한 뒤 본격적인 석탄 채굴 작업이 이루어졌던 섬 하시마. 일본의 에너지 정책이 전환되기 전까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뒷받침했던 석탄산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 정부가 이 섬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려 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하시마에는 1916년 일본 최초로 철근콘크리트의 고층 아파트가 세워졌다. 전성기에는 5300명이 거주해 일본 최고의 인구밀도를 기록했다. 하시마는 탄광시설과 주택은 물론 학교, 상점, 병원, 사찰, 영화관 등 완벽한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시기 근대 유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 섬은 가혹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하시마 탄광의 광부 수는 1944년 최대 2151명. 이 가운데 조선인 광부 수는 500~800명으로 추산된다. 고층 아파트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조선인 노동자들의 숙소는 해변가 지하에 있었다. 높은 파도가 일거나 태풍이 불면 어김없이 숙소까지 바닷물이 들이닥쳤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강제동원된 조선 노동자들에게 이 섬은 도망갈 수 없는 ‘감옥섬’이었다. 일본의 근대 산업 유산 속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가혹한 강제동원의 역사가 숨어 있다.
나가사키(일본)=안해룡 아시아프레스 서울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