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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 명의 스님들이 던지는 화두, 수행하듯 담아낸 ‘돈오의 풍경’

등록 2019-05-30 09:02수정 2019-05-31 15:47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⑨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감독 배용균(1989년)
혜곡 스님(이판용)의 다비를 끝낸 기봉 스님(신원섭)은 동자승 해진(황해진)에게 혜곡 스님의 유품을 건네고 산사를 떠난다. 기봉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해진.
혜곡 스님(이판용)의 다비를 끝낸 기봉 스님(신원섭)은 동자승 해진(황해진)에게 혜곡 스님의 유품을 건네고 산사를 떠난다. 기봉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해진.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나타났다.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1989년에 그렇게 한국영화사의 사건이 되었다. 배용균은 충무로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으며,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기술을 책으로 배웠으며(그는 미술을 공부했다), 시나리오를 혼자 쓴 다음, 소수의 스태프와 아마추어 배우들을 이끌고 몇해를 대구 근처의 절과 산속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으며,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거의 프레임 단위의 편집을 한 다음, 영화를 완성해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를 받았다.

기봉 스님(신원섭)이 찾아간 깊은 산속 절엔 혜곡 스님(이판용)이 머물고 있었다.
기봉 스님(신원섭)이 찾아간 깊은 산속 절엔 혜곡 스님(이판용)이 머물고 있었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과도할 정도로 장황해 보였다. 단 세명의 등장인물, 속세의 번뇌를 끊지 못하는 젊은 스님 기봉과, 그가 찾아간 산사를 지키는 노스님 혜곡, 그리고 거기 함께 머무는 어린 동자 해진이 등장인물의 모두다. 사건이라고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혜곡 스님이 세상을 떠나 입적하는 것뿐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끝날 것 같지 않은 화두와, 화두와, 그리고 화두와, 그에 대응하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게 전부다. 화두 스스로 하나의 의식을 가진 것처럼 삼라만상 속에서 자기 형상을 찾아갈 때 풍경은 색(色)이 되고 그것을 채우는 안개와 바람 소리, 구름, 나무의 검은 그림자와 길 잃은 풀숲이 마치 화두에 대답하는 것만 같은 시간은 공(空)이 되었다. 배용균은 종종 사바세계를 등 뒤로 하고 우주를 찍고 있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했다. 별처럼 펼쳐진 불가의 기호들. 그 안에서 무언가를 각성하기 위해 기후 조건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만 같은 용맹 정진의 미장센들. 배용균은 화두를 찍을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다. 거의 영웅적이라고밖에 달리 말하기 힘든 수행처럼 만들어진 영화.

배용균을 만났을 때 질문했다. “당신은 형이상학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가요?”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에요, 나는 일요일의 리얼리즘을 찍고 싶었어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날.” 한국영화의 일요일. 의문형으로 이루어진 제목의 이 영화는 세상이 휴식을 취하는 날, 항상 그 자리에 돈오(頓悟)처럼 나타날 것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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