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동철(김명곤)과 육덕(이희성)은 한눈에 반한 혜영(이보희)을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이장호의 <바보선언> 첫 장면은 영화감독 이장호가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감독이 죽어버리면 그다음 영화는 어떻게 되나요? 난장판이 될 것이다. <바보선언>은 난장판의 영화다. 난장판이 왜 필요해진 것인가요? 두가지 대답. 첫번째. 1980년 5월 ‘이후’ 남도에서 흉흉한 소문이 풍문처럼 전해져왔다. 누군가는 비디오로 보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유언비어라고 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평화롭게 주말이면 프로야구를 응원하러 몰려갔다. 그리고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을 한다고 모두들 기뻐했다. 세상은 난장판이었다. <바보선언>은 실험적인 영화가 아니라 (마술적인) 리얼리즘의 영화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던 동철(김명곤)은 우연히 ‘가짜 여대생’ 혜영(이보희)을 보고 그 미모에 홀딱 빠진다.
두번째 대답. 한국영화는 형식적으로 두가지 선험적 이상을 가졌는데 하나는 사회 안에서 영화가 마땅히 져야 할 예술적 책임으로서 리얼리즘의 성취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판소리와의 (거의 불가능한) 조화의 모색이었다. 판소리는 각자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이장호는 판소리를 마당극으로 이해했다. <바보선언>은 영화 문법을 따라가는 대신 마치 마당극처럼 자유자재로 영화가 있는 곳이 마당이 되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상상력으로 해방되었다. 한쪽 다리를 저는 동철과 자동차 정비공인 육덕은 마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처럼 서울 시내를 누비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공주 혜영을 만나지만 그녀는 그들이 꿈꾸는 여대생이 아니라 몸을 파는 ‘매춘부’였다. 이장호는 그들을 따라 신촌 이화여대 앞길, 비 내리는 서울역 광장, 청량리 588 골목의 빨간 입구, 활기찬 잠실야구장, 철 지난 해변, 게임기 소리로 소란스러운 전자오락실, 부르주아들의 난잡한 파티 이곳저곳을 모험활극처럼 떠돈다.
마지막 장면. 혜영의 장례를 치른 동철과 육덕은 여의도로 향한다.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몸짓인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릿광대의 춤, 하지만 아무도 웃지 못할 것이다. 저 멀리 망원렌즈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국회의사당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보선언>은 구조신호처럼 필사적으로 집어 던진 화염병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