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다 끝나간다. “연말엔 뭐니뭐니 해도 롤링페이퍼”라는 새 집사의 권유에 따라, 네 동거인·동거묘가 롤링페이퍼를 써보기로 했다. 순서는 헌 집사가 맘대로 정했다.
라미가 헌 집사에게
이런 걸 또 왜 하는 거냐. 같이 산 지도 이제 2년이 넘었는데, 이런 거 없이도 알아서 잘할 때가 되지 않았냐.
요즘 들어 “라미 넌 왜 바뀌지가 않냐”는 식의 잔소리가 늘어난 것 같다. 고양이와 산다는 건 평생 한 살짜리 아이랑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잊은 거냐. 초심으로 돌아가라.
늘, 언제나, 나와 보들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지, 놀아주는 시간이 줄어들진 않았는지를 잊지말고, 한 살짜리 아이 키우듯 해주길 바란다. 구체적으로 하나 말하자면, 저번에 사주려다 품절로 못 산 동결건조 사료, 이제 들어왔을 테니 얼른 주문해 주길 바란다.
헌 집사가 보들이에게
아직도 여전히 헌 집사와 내외하는 보들아,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 것이냐. 아침에 일어나면 반갑다고 뒤집고 엉덩이 부비부비하면서 퇴근 뒤에 만나면 왜 아는 척도 안 하는 것이냐. 난 아직도 니 속을 모르겠다. 지난 겨울엔 무릎 위로 올라와 잠도 자고 하더니 왜 올 겨울엔 올라올 생각을 안 하는지도 궁금하다.
성질 급한 라미에게 밀려서 밥도 간식도 늘 라미가 다 먹고 나서야 먹는 보들아, 그럼에도 한 해 동안 어디 한 곳 아픈 데 없이 잘 살아줘서 고맙다. 환절기에 털 좀 뿜고, 입맛 좀 까다로워져도 괜찮으니 아프지 말고. 바라건데,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조금만 더 내색해주길 바란다.
새 집사가 널 만지는 것도 다 좋아서 그러는 것이니 너무 화들짝 놀라거나 몹쓸 게 묻은 것처럼 침 묻혀서 닦아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보들이가 새 집사에게
만지지 말라옹. 정말 좀 만지지 말라옹. 왜 그렇게 날 못 만져서 안달이냐옹. 다른 거 할 말 없다옹. 제발 만지지 말라옹. 좋아서 그러는 거 다 아니까, 만지지 말라옹. 진짜 부탁한다옹.
새 집사가 라미에게
사랑하는 라미에게. 사실 이만큼이나 네가 좋아질 줄은 몰랐어. 막연히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가족이 되니 너에 대해 훨씬 많은 종류의 감정이 생기더라고.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 걱정이 되고, 내가 아무렇게나 놔둔 비닐을 씹어 먹고 토라도 하면 어찌나 미안한지 몰라.
슬그머니 다가와 앉아서 “야옹~” 하고 바라 볼 때나, 극세사 잠옷에 파고 들 때, 새로운 간식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할 때, 보들이한테 냥펀치 맞고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볼 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워.
양치질이며 물주고 밥주기, 화장실 청소 등 모든 면에서 여전히 서툰 나를 배려해주는 것도 나는 다 알고 있어. 헌 집사가 양치해줄 때보다 얌전히 있어준다거나,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싱거운 캔통조림도 잘 먹어주는 것 같은 배려 말이야. 네가 있어 매일이 행복해. 나의 가족이 되어줘서 고마워, 라미야. 그러니 건강만 하렴, 보들이도!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