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북극곰이 바위를 던져 바다코끼리 사냥한다?…“가능한 일”

등록 2021-08-17 15:20수정 2021-08-28 02:34

[애니멀피플]
이누이트 사냥꾼 240년째 일관된 목격담…도구 사용 능력 비춰 ‘가능’ 결론
탐험가 찰스 홀이 1865년 낸 책에 실린 삽화에서 북극곰이 누워있는 바다코끼리의 머리를 겨냥해 바윗덩이를 던지고 있다.
탐험가 찰스 홀이 1865년 낸 책에 실린 삽화에서 북극곰이 누워있는 바다코끼리의 머리를 겨냥해 바윗덩이를 던지고 있다.

북극곰이 교묘하게 바다코끼리를 사냥한다는 이야기는 이누이트 사냥꾼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자기보다 3배나 크고 위협적인 거대한 엄니를 지닌 바다코끼리에 무작정 덤벼드는 건 자살행위다. 대신 북극곰은 바다코끼리가 누워 쉴 때 부근의 높은 곳에 올라 큰 바위나 얼음덩이를 머리에 겨냥해 던져 죽인다는 얘기다.

18세기 탐험가나 박물학자가 이누이트 안내원에게 전해 들은 이후 1990년대까지 200년 넘게 이어진 북극곰의 사냥술에 관한 이 목격담은 신화 취급을 받았다. 북극곰이 변신술을 쓴다는 이야기 정도의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안 스털링 캐나다 앨버타대 생물학자 등 캐나다·미국·그린란드 연구자들은 최근까지 이어지는 목격담에 근거가 있을 것으로 보고 과거의 직·간접 목격과 최근의 문헌과 자료를 뒤졌다. 이들은 과학저널 ‘북극’ 6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북극곰이 바다코끼리를 사냥할 때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드물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_______
엄청난 힘에 맞선 교활함

태평양 바다코끼리 수컷은 체중이 2000㎏까지 나가는 거대한 몸집과 큰 엄니로 북극곰이 쉽사리 공격할 대상이 아니다. 조엘 갈리치-밀러,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제공.
태평양 바다코끼리 수컷은 체중이 2000㎏까지 나가는 거대한 몸집과 큰 엄니로 북극곰이 쉽사리 공격할 대상이 아니다. 조엘 갈리치-밀러,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제공.

첫 목격담은 그린란드에서 성직자이자 박물학자 생활을 한 파브리시우스가 1780년 쓴 ‘그린란드의 동물’에 나온다. 그는 “북극곰은 특히 물범과 바다코끼리를 공격하는데 바다코끼리의 힘과 엄청난 엄니에는 교활함으로 맞선다. 얼음덩이를 쥐고 바다코끼리의 머리에 내던진 뒤 비틀거릴 때 죽인다.”고 적었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런 이야기의 사례는 이후에도 이어진다. 그러나 동행한 이누이트 사냥꾼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도 적지 않다. 대개 누워있는 바다코끼리 무리 곁으로 북극곰이 살금살금 다가가 얼음언덕 위에 오른 뒤 큰 얼음덩이를 두 손에 들고 뒷발로 서 바다코끼리의 머리에 가격한 뒤 뛰어 내려와 사냥을 마친다는 이야기다.

이런 보고는 199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44년 경력의 노련한 이누이트 사냥꾼 콰나크는 그린란드 북서부에서 북극곰이 방금 죽인 바다코끼리를 발견했는데, 발자국과 흔적 등에 비춰 볼 때 숨구멍 근처에서 잠복하던 북극곰이 암컷 바다코끼리의 머리를 얼음덩이로 내리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옆에는 잘 다듬은 피 묻은 얼음덩이가 놓여있었고 바다코끼리의 두개골은 부서진 상태였다.

시베리아 축치 해 원주민이 바다코끼리 엄니에 새긴 북극곰의 바다코끼리 사냥 모습. 축치 해에서는 북극곰의 도구 사용 기록이 없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시베리아 축치 해 원주민이 바다코끼리 엄니에 새긴 북극곰의 바다코끼리 사냥 모습. 축치 해에서는 북극곰의 도구 사용 기록이 없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북극곰의 이런 사냥 행동에 대해 240년 이상 이누이트 사냥꾼의 매우 비슷하지만 독립적인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며 “수십 년 동안 이누이트 사냥꾼과 함께 현장에서 연구한 과학자로서 이들의 야생동물에 관한 관찰은 매우 신뢰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논문에 적었다.

_______
두 손으로 농구공 던지듯

연구자들은 북극곰과 이들의 가까운 친척인 불곰이 매우 지적인 동물로 종종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이런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일본 오사카시 덴노지 동물원의 5살짜리 북극곰 수컷 ‘고고’의 행동은 단적인 예이다.

일본 오사카시 덴노지 동물원의 북극곰은 손이 닿지 않는 먹이를 얻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썼다. 가장 선호한 방식은 단단한 물체를 두 손으로 표적에 정확히 맞추는 것이었다(D). 이안 스털링 외 (2021) ‘북극’ 제공.
일본 오사카시 덴노지 동물원의 북극곰은 손이 닿지 않는 먹이를 얻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썼다. 가장 선호한 방식은 단단한 물체를 두 손으로 표적에 정확히 맞추는 것이었다(D). 이안 스털링 외 (2021) ‘북극’ 제공.

애초 단조로운 동물원 생활을 풍부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북극곰 풀장에서 3m 위에 고깃덩이를 매달고 다양한 도구로 이를 떼어먹도록 했다. 2010년부터 10년째 이어진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에서 고고는 긴 나뭇가지 등 여러 가지 도구로 먹이를 구했지만 최종적으로 가장 선호한 방식은 단단하고 둥근 물체를 마치 농구공을 던지듯 두 팔로 표적에 정확하게 맞히는 것이었다. 바다코끼리를 향해 얼음덩이를 던지는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연구자들은 생태적 조건도 북극곰이 도구를 쓰도록 이끈 요인으로 설명했다. 바다코끼리는 수컷이 2000㎏까지 나가는 데다 피부 두께도 2∼4㎝나 되고 두개골도 두껍다. 물범처럼 쉽게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커다란 엄니에 찔려 죽는 북극곰도 있다. 연구자들은 “바다코끼리는 크지만 위험한 먹이”라며 “일부 북극곰이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도구 사용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런 도구 사용법이 세대를 통해 전달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냥한 물범을 먹는 북극곰. 기후변화로 물범 사냥이 점점 어려워지더라도 벅찬 상대인 바다코끼리가 대체 먹이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냥한 물범을 먹는 북극곰. 기후변화로 물범 사냥이 점점 어려워지더라도 벅찬 상대인 바다코끼리가 대체 먹이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후변화로 북극곰은 주식인 물범 사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흰 북극곰의 ‘샛노란 앞발’…굶주림에 오리알 깨먹고 연명). 그러나 바다코끼리는 대안이 되기 힘들어 보인다. 연구자들은 “도구를 이용한 바다코끼리 사냥은 캐나다 북극 동부와 그린란드 남서부 등 일부 지역에서만 보고되고 있고 대상도 주로 새끼나 어린 개체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Arctic, DOI: 10.14430/arctic7253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