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정글의 최상위 포식자인 왕뱀(보아뱀)은 큰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 장기이다. 조여 삼키는 사냥 전략은 뱀이 진화적으로 성공한 혁신 가운데 하나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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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열대림에 사는 왕뱀(보아뱀)은 매복사냥꾼이다. 나무 위나 숲에 숨어 기다리다 먹이가 접근하면 이로 물어 잡은 뒤 보통 3m, 길면 4m가 넘는 굵은 몸통으로 감아 조여 죽인 뒤 통째로 삼킨다.
쥐 같은 작은 동물부터 멧돼지나 원숭이처럼 자기보다 큰 동물도 사냥한다. 왕뱀의 강력한 근육에 감기면 숨이 막혀 질식하기 전에 뇌로 가는 혈관이 막혀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 실신한다.
뱀에 붙잡힌 동물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흉곽이 좁아들 때마다 조금씩 더 조여들 뿐이다. 조이기는 보통 8∼16분 길게는 45분 동안 계속되는데 힘이 많이 들어 이때 평소보다 6.8배나 많은 산소를 쓴다. 이 때문에 왕뱀은 사냥감의 심장박동 변화를 감지해 조이는 강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보아뱀은 쥐의 마지막 심장박동까지 센다).
제 몸보다 큰 사슴을 삼키는 비단뱀. 호흡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대형 먹이를 조여 사냥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초기 뱀부터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왕뱀이나 비단뱀, 아나콘다 등 독이 없는 대형 뱀의 조이기는 매우 유력한 사냥 전략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제 몸을 올가미로 쓰기 때문에 사냥감을 꽉 조이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도 계속 조일 수밖에 없다. 조이는 동안 호흡을 할 수 없게 된다.
포유류는 가슴과 배를 가로지르는 횡격막의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하면서 가슴 안쪽의 압력을 조절해 허파의 호흡을 돕는다. 그러나 뱀에는 횡격막이 없어 오로지 갈비뼈를 움직여 호흡할 수밖에 없다.
대형 먹이를 사냥할 때 호흡이 곤란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뱀은 일찍부터 조이기에 쓰지 않는 갈비뼈의 일부가 돌아가며 움직여 호흡을 돕는 ‘모듈식 호흡법’을 진화시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존 카파노 미국 브라운대 박사후연구원 등은 ‘실험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먹이를 조이는 왕뱀의 골격 움직임을 엑스선 비디오 촬영을 통해 분석한 결과 “200개의 갈비뼈가 등뼈와 연결된 부위에 달린 보조 근육을 개별 단위로 활성화 또는 활동 중지함으로써 호흡을 유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뱀의 허파는 한쪽이 몸길이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길고 다른 쪽은 매우 작은 짝짝이 형태이다.
왕뱀의 척추와 갈비뼈. 붉은 부위가 모듈형 호흡 때 쓰는 보조 근육이다. 존 카파노 외 (2022) ‘실험생물학 저널’ 제공.
연구자들은 “먹이를 조일 때 쓰지 않는 갈비뼈만 호흡에 동원하는 기능을 하는 보조 근육은 모든 뱀에서 볼 수 있는 고대 형질”이라며 “이것 없이는 자기보다 큰 먹이를 조이고 삼켜서 소화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뱀은 조이기뿐 아니라 소화에도 산소소비가 많은데 자기보다 25% 큰 먹이를 소화할 때 평소보다 3∼17배 많은 산소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큰 먹이를 삼킨 뒤 장시간 소화할 때도 보조 근육을 이용한 호흡이 꼭 필요하다.
뱀은 몸인 긴 파충류 가운데 종이 다양하고 거의 모든 생태계에서 살 정도로 성공했다. 그 비결의 하나가 자기 몸보다 큰 먹이를 사냥할 수 있도록 해 준 모듈식 호흡법이다. 픽사베이 제공.
뱀은 남극을 뺀 모든 대륙의 다양한 서식지에 3700종 이상이 분포하는 성공적인 분류군이다. 조이기와 자기보다 큰 먹이를 삼킬 수 있는 유연한 턱 골격은 이런 성공의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용 논문: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DOI: 10.1242/jeb.2431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