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가 땅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분명히 봤어! 여기야 여기!”
아이와 함께 등교하던 길,
아이들 서너명이 고구마밭 주변에서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 한 명은 동물을 꽤 좋아하는, 우리 아이의 친구 영훈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애들아, 무슨 일이니?”
“제가 길을 가는데, 저기 저쪽 땅이 갑자기 들썩들썩 움직였어요!”
“에이~ 거짓말 마! 땅이 어떻게 움직여?”
흥분한 영훈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영훈이가 가리킨 땅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곳엔 영훈이의 말대로 땅이 부풀어 오른 흔적이 있었다.
“잘 봐, 애들아. 고구마잎 사이 흙들이 불룩불룩 솟아 있구나. 영훈이가 무슨 동물을 본 것 같아.”
“무슨 동물이요? 땅속을 다니는 동물이 있다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내게 물었다.
“그래, 저건 두더지 굴 흔적이야. 두더지들은 지렁이 먹이를 찾으러 이렇게 땅속에 굴을 파며 다닌단다. 이렇게 비옥한 고구마밭에는 지렁이가 참 많겠어. 이 땅속 어딘가에 두더지가 있는 게 분명해!”
그런데 그때였다. 고구마밭 주인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뭐라고? 골치덩이 두더지가 나타났다고? 허허! 이걸 어쩌지? 고구마밭을 다 망치게 생겼네, 얼른 놈을 잡아야겠는걸!”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시자 영훈이가 흥분했다.
“그 두더지 잡으시면 저에게 주세요! 제가 키울래요. 잡으면 꼭 저를 주셔야 해요. 꼭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영훈이의 말에 별다른 반응이 없이 삽으로 부플어오른 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두더지가 있던 고구마밭에 이상한 모양으로 잘린 페트병이 여기저기 심어 있었고 주인 할아버지가 주변을 연신 서성댔다. 그러다가 혀를 끌끌 찼다.
“이놈의 페트병이 울리는 진동 소리에 두더지가 도망간다더니 아무소용이 없네, 그려.”
“두더지는 지렁이를 먹지 고구마를 먹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도 밭에 많이 안 좋은가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고구마야 안 먹지. 하지만 지렁이 먹겠다고 땅을 헤집고 다니니 어린 고구마들이 뿌리며 줄기며 죄 다쳐서 못쓰게 되었잖아.”
주인 할아버지는 툭툭 끊어진 고구마 줄기를 뽑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고된 농사를 망쳤다는 말씀에 할 말이 없어 그저 돌아서고 말았다. 주인할아버지의 화난 목소리가 등뒤로 들려왔다. “이놈의 두더지! 내가 꼭 잡아 죽여야지!”
어둠 속에서 흙을 파며 움직이는 두더지는 대사가 활발해 끊임없이 먹이 활동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시 며칠 후, 주인 할아버지가 결국 사고뭉치 두더지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행히 잡아 죽이지는 않고 아이들에게 준다고 아이들을 부르셨다. 나도 소식을 듣고 궁금해 달려갔다.
“그래. 요즘 아이들에겐 신기할 것이야. 두더지를 만화나 게임에서나 봤지. 언제 진짜를 봤을라고? 내가 니들 공부시켜 주려고 여기 살려놨다!”
할아버지가 선심 쓰듯 고무 대야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 두더지가 흙 몇 줌과 함께 담겨져 있었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들여다봤다. 몇몇은 손을 뻗어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했다.
“털이 엄청 보드라워요. 꼭 벨벳 치마 같아요.”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래. 두더지 털은 워낙 부드럽고 기름져서 흙이 잘 묻지 않아. 잠깐만 몸을 흔들어 털어도 흙이 다 떨어져 버리지.”
“눈을 찾을 수가 없어요. 눈이 없는 건가요?”
“분홍 주둥이 뒤, 털 사이에 참깨 만한 검은 것이 있지? 이게 바로 눈이란다. 캄캄한 땅속에서 생활하니까 눈이 발달되지 않아서 시력이 좋지 않아. 겨우 빛과 어둠을 알 수 있을 뿐이야.”
“앞발이 몸에 비해 엄청 커요. 발톱도 길고요. 이 발톱 덕분에 땅을 잘 파는 건가요?” 눈썰미가 좋은 영훈이가 말했다.
“그래 맞아. 발가락은 짧지만 발톱은 상당히 길고 세단다. 이것으로 단단한 땅도 순식간에 잘 파지.”
아이들이 놀라며 두더지가 땅 파는 걸 보고 싶다고 할아버지를 보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담아두었던 붉은 대야에 흙을 더 담아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더지가 흙을 파지 않았다. 잠시 앞발을 휘젓다가 이내 곧 멈추어버렸다.
“에이, 시시해. 얘, 왜 이러는 거예요? 바보 두더지인가 봐요.”
아차, 싶었다. 할아버지에게 얼른 물었다. “이 두더지 언제 잡으셨나요?”
“오늘 새벽에 잡았지. 한나절이 다 되어가네, 그려.”
“큰일이네요. 두더지는 대사활동이 빨라서 반나절만 먹이를 못 먹어도 죽을 수 있어요. 지금 이 두더지 굶어서 죽어가고 있어요.”
그러자 영훈이가 말했다. “제가 얼른 가서 지렁이를 잡아올게요. 그리고 이 두더지는 제가 키울래요. 할아버지가 그래도 된다고 하셨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두더지는 사람이 키우면 살기기 힘들단다. 웬만큼 실력있는 동물원에서도 여간해서는 잘 살리질 못해.”
예전에 모 동물원에서 이 신비한 동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키우려다 실패하고 결국 사육이 비교적 쉬운 외국산 벌거숭이두더지를 데려온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럼 자연에 놔주어야 이 아이가 사나요?” 영훈이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래. 여기 고구마밭 말고 저기 산속에 지렁이가 많은 곳에 놓아주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영훈이와 아이들이 두더지를 데리고 서둘러 산 쪽으로 뛰어갔다.
두더지를 아시나요?
‘돼지 먹깨비’ 두더지 두더지는 대사활동이 빨라 하루에 몸무게 절반 이상의 지렁이를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 만약 반나절 이상 굶으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죽을 수 있습니다 . 덕분에 두더지는 계속해서 땅을 파고 다니며 쉬지 않고 먹이활동을 합니다 . 땅 속 생활에 적응한 두더지는 시력이 좋지 않은 대신 코가 무척 발달되어 땅속에서도 땅위 높이 5~6cm 에 있는 먹이도 잘 찾아냅니다 . 특히 주둥이 양옆에 달린 수염은 굴속에서 움직이는 지렁이를 감지해내서 알아채게 해주지요 .
농사를 망치는 두더지? 비옥한 밭에 지렁이가 많이 살고 그 지렁이를 찾아 두더지가 따라 옵니다 . 두더지로 인해 농작물 피해를 받는 농부들은 두더지를 잡아 죽이는 약을 놓거나 싫어하는 진동 장치를 놓아서 습니다. 때로 두더지를 찔러 죽이는 덫을 설치하기도 합니다 . 두더지는 자연에서 점점 살 곳을 잃고 있습니다. 결국 옛 이야기나 가상의 게임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기한 동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 동물의 터전인 우리 산과 들을 지키고 더 나아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공간을 많이 조성하여 그 옛날처럼 두더지가 흔한 동물이 되지 않을까요?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