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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농가 “약병에 쓰인대로 꾸준히 접종했는데…”

등록 2017-02-07 18:04수정 2017-02-08 09:12

│르포│ ‘긴급 방제’ 보은·정읍 가보니

충북대회 1등 40년 경력 축산인
구제역으로 소 195마리 살처분
“접종 제대로 안한 것처럼 매도”
“우리가 죄인입니까? 정말 우리가 잘못한 것인가요?”

7일 오후 충북 보은군 마로면 곳곳엔 ‘구제역 긴급방제’란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다. 읍내는 물론 들녘에도 인적이 없다. 따스한 햇볕이 외려 을쓰년스럽다. 지난 6일 구제역이 확진돼 195마리를 매몰 처분한 농가로 통하는 사방으로 노란 비닐에 붉게 쓴 ‘출입금지’선이 쳐졌다. 뿌연 소독약을 연신 내뿜는 방역차만 요란하다.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햇다. 7일 오후 구제역이 발생한 젓소농장 인근의 축사. 보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햇다. 7일 오후 구제역이 발생한 젓소농장 인근의 축사. 보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마을 장태원 이장은 “축산농뿐 아니라 35가구 주민 60여명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발생농가엔 출입은 물론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있다”고 전했다. 발생농가 주변은 마로면의 대표적인 축산 밀집 지역으로 121 농가가 젖소·한우·돼지 등 6131마리를 기르고 있다.

외딴 섬처럼 고립된 발생농가와 어렵사리 전화 통화가 됐다. “할 말 없습니다. 제발 좀 놔두세요. 모두 다 잃었으니 괴롭히지 마세요.” 끊었다.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소를 키운 그는 꽤 유명한 축산인이다. 지난해 충북도 젖소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축산물안전관리인증·무항생제축산물 인증 등 꼼꼼하게 축사를 관리하며 대형업체에 우유를 납품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농장을 운영해온 아들(40)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한 뒤 석사학위까지 받고 아버지와 축산을 하고 있다. 그는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구제역이 났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와 정부·지차체 등의 대응을 의식한 듯 접종 과정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15일 축협에서 백신을 받아와 냉장 보관을 한 뒤 흔들어서 모든 소에게 2㎖씩 접종을 했다. 일러준 대로, 약병에 씌운 대로 했다. 이제 와서 항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해 어이없다. 특히 우리가 접종을 제대로 안 해 구제역이 난 것처럼 매도해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또 “그동안 누구도 접종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거나, 또 접종 뒤 확인을 하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농가 탓을 하고 있다. 말대로 접종을 한 우리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전관진 마로낙우회장은 “나나 그이나 모두 성실하게 소를 키운 죄밖에 없다. 원인 규명 없이 정부나 자치단체 등이 너무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웃 보은 탄부면에서 소 400여 마리를 기르는 송인헌씨는 “제가 알기론 이 농장처럼 철저하게 축사를 관리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축산인으로서 존경할 정도인데 구제역이 났다고 해 너무 놀랐다. 가뜩이나 어려운 축산 환경인데 소비 축소 등으로 더욱 어려워 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7일 전북 정읍시 한 한우축산단지 들머리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들이 통제시설을 설치하며 소독약을 점검하고 있다.
7일 전북 정읍시 한 한우축산단지 들머리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들이 통제시설을 설치하며 소독약을 점검하고 있다.
“정말 자식처럼 키운 소를 죽여야 하는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백신 등 관리를 잘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안타깝네요.”

보은에 이어 구제역이 확진된 전북 정읍시 산내면 한우 축산단지도 어수선하다. 7일 낮 12시30분께 전북 정읍시 산내면의 한우 축산단지 들머리에서 마을 이장 강아무개(60)씨가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반원들과 얘기를 하고 있다. 그의 아내와 마을 주민 등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지난 6일 한우 40여마리를 키우는 이곳 농가에서 구제역 양성반응이 확인됐다. 이 축산단지에선 6농가가 한우 360여마리를 기르고 있다.

소독을 위해 생석회가 뿌려진 들머리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나온 직원들이 차량 통제시설을 설치하고 있었다. 한우 76마리를 키우는 강씨는 “1981년부터 30년 넘게 소를 길러왔는데 이렇게 살처분을 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전북에서는 지난해 1월 김제와 고창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돼지 1만여마리를 살처분한 것 말고는 구제역 청정지역이었다. 전북도는 이 축산단지 한우 360여마리 가운데 174마리를 매몰 처분하기로 했다.

강씨는 “1년에 두 번 직접 백신을 놓으며 관리를 잘해 왔다. 모두 살처분을 할 게 아니라 발생농가만 살처분하고, 하더라도 항체검사를 해서 선택적으로 살처분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보상해 준다고 하지만 몇 년 동안 사육을 못 하니까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지인과 휴대전화 통화에서 “차라리 일거리가 없어져 편해졌다. 우리처럼 힘없는 농민들이 정부에서 주는 대로 보상을 받아야지…”라며 반어적으로 빗대기도 했다.

강씨는 “소가 사납기 때분에 백신을 투입할 때 흘러서 주입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짜증이 나고 해당 소를 그냥 백신을 안 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2명이 백신을 놓는데 소가 발버둥 쳐서 수년 전에는 이빨 4개가 나간 적도 있고 다리도 다쳤다. 50마리 이상을 사육하면 농가가 직접 백신을 놓는데 방역본부가 직접 와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한우 축산단지도 어수선하다. 7일 오후 마을 들머리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들이 차량 통제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한우 축산단지도 어수선하다. 7일 오후 마을 들머리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들이 차량 통제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축산단지 옆 소들을 묻을 밭에는 포크레인이 서 있었다. 축산을 하지 않고 곶감·고구마를 재배하는 주민 배아무개(61)씨는 “분위기가 안 좋아 축산을 하는 주민에게 말을 건네지도 못한다. 돼지는 안 키우는 이곳은 공기가 좋고 청정지역으로 지하수를 식수로 먹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일을 하는 오아무개(52)씨는 “언론이 정읍시만 보도하면 되는데 산내면까지 보도해 인접한 산외면 한우단지 판매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방송사가 드론으로 매몰현장 주변을 촬영하기도 했다.

전북도는 7일 오전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송하진 지사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었다. 구제역 발생농가의 소를 포함해 174마리를 신속히 매몰 처리하고, 해당 농가로부터 반경 20㎞ 내에 있는 우제류(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 대해서는 백신을 긴급 접종하기로 했다.

김창섭 충북도 축산과장은 “충북의 경우 항체형성률이 19~20%정도다 백신 접종·관리의 문제로 추정하고 있다. 대규모 농장 등에 방역 처리 비용 등을 부담하게 하는 도축세를 도입해 공공 수의사를 통한 백신 접종을 늘리는 등 접종 시스템 개선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읍·보은/글·사진 박임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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