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시민단체 대표들은 말한다. 동물원의 미래는 야생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고. 또 현실적으로 동물원법이 개정돼 동물사육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 ‘동물원의 살아남기’ 기획에 자문을 한 동물보호시민단체 대표들이 동물원의 미래를 조언했다. 인간을 위한 유희 공간이 아닌 동물과 야생 그 자체가 동물원의 목적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현실적으로는 기부문화 정착과 동물원법 개정, 수준 낮은 동물원 퇴출 등을 촉구했다.(가나다순)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
“죄 없는 동물들의 감옥”. 저는 동물원을 이렇게 부릅니다. 동물원 운영의 제1 목적인 종 보전은 구차한 변명일 뿐, 누구도 그 안의 동물들이 보존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야생의 생명력과 감동은 전혀 느낄 수 없고 죽어가는 동물들의 슬프고 무기력한 표정을 봐야 하는 동물원은 돌아서는 관람객 마음을 불편하게만 합니다. 과학기술 발전과 인식 전환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 같은 기술로 실제 동물들을 보는 것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진짜 동물은 야생에서 보겠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동물원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한국 동물원은 최대한 자연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는 전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동물원의 세계적 추세에 뒤처져 있다. 쇼윈도 물건처럼 몸 숨길 곳 하나 없는 사육장에 동물을 내모는 구시대적인 전시 방법은 동물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동물원이 지향해야 할 생태교육과도 거리가 멀다. 동물에게는 몸을 숨길 권리를 주고, 관람객은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불어 한국 동물원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동물원법을 국제적 동물복지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맹수 사육장에 야외 방사장도 없는 시설부터 체험·이동 동물원 등 기형적인 형태의 ‘가짜 동물원’이 난무하고 있다. 동물이 생태 습성에 따른 정상적인 행동을 표출할 수 없는 동물원에 종 보전과 연구, 교육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물원법 개정으로 적절한 종별 사육·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부합할 수 있는 ‘동물원다운’ 시설만 국가 관리와 지원을 받아 운영돼야 한다.
전진경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이사
그간 한국 동물원들은 동물쇼나 비생태적 환경에 감금된 동물을 보여주는 등 폭력적 야생동물 소비에 일조하며 서비스해왔다.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동물 소모는 지속가능한 공존을 저해하여 자연 파괴와 생명 다양성 손실로 귀결된다. 앞으로 동물원은 과학적 전시기획으로 시민들이 야생동물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기관 구실을 다해야 하고 종 보전 및 연구 기관으로서 장기 플랜을 수립해 야생동물 보호에 기여하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표면적인 전시기획 변경으로는 어림없다.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도구로 수익을 추구하는 상업적 유희 장소가 아닌 야생동물 그 자체가 ‘목적’인 곳으로 변모시키는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한국 동물원은 수준 차이가 크고 목적도 다 제각각이다. 동물원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법률 강화를 통해 동물 보유 기준을 정해 동물복지에 기반한 수준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동물원은 퇴출 수순을 밟도록 해야 한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권위를 갖춰야 한다. 인증제 도입도 하나의 방법이다. 종 보전과 교육은 연결돼 있어서다. 건강하지 못한 동물을 보유하게 되면 올바른 시민교육도 이루어질 수 없다. 동물원은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운영해야 하며 전문 사육사, 수의사의 발굴과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우리 사회는 제돌이 등 남방큰돌고래 일곱 마리를 야생으로 보내면서 전시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를 맞았다. 동물원을 생태적이고 윤리적인 토대 위에 바로 세워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까지 온 것이다. 오락 방편과 보여주기식 동물원에서 자연과 호흡하고 생태를 느낄 수 있는 동물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민들이 정서적 혼란의 부담을 떠안게 되는 동물원은 더 이상 안 된다. 운영 기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획기적인 운영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시민에 의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동물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