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30년 막장, 나는 살았지만…” 아직 목숨 건 광산노동의 대가

등록 2018-05-02 05:02수정 2018-05-02 10:33

한덕철광 붕괴사고 생존자의 한숨

“눈 감으면 그날 악몽 떠올라
‘쾅’ 터지는 찰나에도 죽음 예감
벌이 많다 해도 생명수당·위험수당
다시 갱도로 들어갈 자신 없습니다”

“상부 작업자가 주의만 했어도…”
광부들, 가족 부양에 험지 자처
동료들 잃어도 결국 다시 ‘막장행’
생존자도 폐광지도 후유증만 남아
1일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에 있는 한덕철광은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됐다. 정문엔 직원 1명만 남아 바리케이드를 친 채 차량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
1일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에 있는 한덕철광은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됐다. 정문엔 직원 1명만 남아 바리케이드를 친 채 차량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쾅’하는 소리에 갱도가 우르르 무너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부릅뜬다.”

1일 충북 제천의 한 병원에서 만난 김아무개(55)씨는 지난달 26일 강원도 정선 한덕철광 붕괴 사고 때 매몰됐다. 구조된 뒤 이곳으로 실려왔다.

폭약을 장착하는 장약반장인 김씨는 26일 낮 동료 광부 13명과 삽차(굴착기), 천공기 등을 나눠 타고 갱도 하부인 5㎞ 지점으로 들어갔다. 김 반장이 암석에 난 구멍에 화약을 채우고 발파하면 다른 동료들이 돌을 캐고 밖으로 나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발파를 시작하기 직전 갑자기 갱 안에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머리 위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졌다. ‘상부 갱도가 터졌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광부들은 모두 알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돌무더기에 깔려 정신을 잃었던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왼쪽 허벅지에서 깊은 통증이 느껴졌다. 피가 흥건히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사고 당시 갱도 안 어디에 있었는가가 삶과 죽음을 갈랐다. 삽차 근처에 있던 그와 다른 광부 2명은 앞에서 작업하던 다른 팀의 도움을 받아 돌무더기 속에서 탈출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갱도 끝 쪽의 동료 3명은 하나씩 싸늘한 주검이 돼 지상으로 올라왔다.

김씨는 “매일 같이 함께 일한 동료들이 한 자리에서 생사를 달리했다. 깜깜한 갱도에서도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던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상부 갱도 작업자들이 조금만 주의를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며 비통해했다.

그는 동원탄좌 등 광산에서만 3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그도 처음엔 다른 광부들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이곳에 왔다. 하지만 곧 이 돈은 ‘목숨값’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고나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광산을 떠나지 못했다. 광부들은 늘 갱도를 떠날 궁리를 하지만 결국 ‘막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월급이 세다곤 하지만 위험수당, 생명수당이라 생각하면 많은 것도 아니다. 해마다 광산 사고 소식을 들었지만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갱도로 들어갈 자신이 없다.”

강원도 정선 신동읍 주민들이 한덕철광 인근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위로하는 펼침막을 걸었다.
강원도 정선 신동읍 주민들이 한덕철광 인근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위로하는 펼침막을 걸었다.

주민들이 한덕철광 인근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위로하는 펼침막을 걸었다. 사진은 펼침막 모습.
주민들이 한덕철광 인근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위로하는 펼침막을 걸었다. 사진은 펼침막 모습.

소방청 등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당시 김 반장 일행이 있던 곳은 깊이 550m 지점이었다. 그들의 25m 상부 갱도에서 발파 작업을 하면서 아랫쪽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사고를 당한 시각은 오후 3시35분인데, 구조대에 신고한 시각은 21분 뒤인 오후 3시56분이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는 사고 원인과 신고가 늦어진 이유를 조사 중이다.

광부 3명이 돌아오지 못한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의 한덕철광은 적막했다. 평소엔 직원 100여명이 바삐 움직이고 중장비가 드나드는 소리가 쩌렁쩌렁 골짜기를 울렸던 곳이다. 26일 사고 뒤엔 사람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게 됐다. 철광석을 싣고 수시로 드나들던 덤프트럭도 자취를 감췄다. ‘발파 사고로 인해 가신 님들을 추모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합니다’ 등 검은 글씨가 적힌 검정색 펼침막을 지나면 정문엔 직원 1명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 출입을 막고 서 있었다. 경비원은 “지난달 사고 이후 광산 가동을 중단했다. 경비 인원을 제외하고는 출근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동부광산안전사무소 관계자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무기한 광산 가동을 중단한다. 언제 광산을 가동할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덕철광은 신동읍에서 가장 큰 광산이었다. 사고 뒤 읍내는 한순간에 폐광촌처럼 변해버렸다. 읍내에서 식당을 하는 최윤옥(50)씨는 “사고 이후 손님이 확 줄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동네가 초상집 같고, 상인들은 모두 울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명호 신동읍번영회 부회장도 “폐광지역은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처 이전과 30여년이 지난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폐광지역만 시간이 멈췄다. 사고 소식 때문에 더는 광부를 가족으로 둔 폐광지 주민들이 가슴 졸이는 일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