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부인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속아 4억5천만원을 공천 대가로 송금한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10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장현(69) 전 광주시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아무개(49·구속 기소)씨한테서 문자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받았다. 문자 중에는 “이용섭을 주저 앉혔다”는 내용도 두 차례나 포함돼 있었다. 당시는 출마 여부가 큰 관심사였던 이용섭 현 광주시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던 때다. “시장님 재임(재선의 의미)하셔야지요”, “당 대표한테도 챙겨달라고 했다. 걱정하지 마시라”는 내용도 있었다. 김씨가 윤 전 시장이 후보 공천을 받는 데 도움을 줄 것처럼 속이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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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시장 선거법 위반 왜? 광주지검은 10일 윤 전 시장을 상대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윤 전 시장은 이날 검찰에 출석하면서 “선거와 관련해 김씨와 특별히 주고받은 이야기는 없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네팔로 의료봉사를 떠났던 윤 전 시장은 선거법 위반 사범 공소 시효(13일)를 앞두고 귀국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 조사를 통해 윤 전 시장이 김씨와 휴대전화와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선거와 관련한 대화를 주고 받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권 여사를 사칭한 김씨는 검찰에서 “‘조직관리 자금이 필요하다’고 윤 전 시장에게 말했다”고 진술했다. 윤 전 시장은 김씨와 연락하던 지난 해 12월 26일(2억원), 12월 29일(1억원)과 올해 1월 5일(1억원), 1월31일(5천만원) 등 네차례에 걸쳐 4억5천만원을 김씨 쪽에 송금했다. 검찰은 김씨의 사기 여부와 상관 없이 윤 전 시장이 6·1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공천과 관련된 의미로 돈을 보냈다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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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자 언급과 대담한 사기행각 김씨는 휴대전화를 바꿔가며 ‘1인 다역’을 해 윤 전 시장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검찰에서 윤 전 시장에게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가 있다고 속인 시점을 거액을 송금한 이후인 올 1월 말께로 진술했다. 윤 전 시장은 그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란 말에 속았다”고 주장해왔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 10월 말까지 윤 전 시장과 모두 12차례 통화했고, 268차례나 문자를 주고 받았다. 권 여사로 가장해 직접 통화한 게 두 차례였고, 문자 메시지 교환도 수십 차례나 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 남매를 보살피는 보호자로 행세하며 윤 전 시장을 직접 만난 적도 있다.
윤 전 시장은 수사가 개시된 시점까지도 김씨를 권 여사로 믿고 있었다고 한다. 윤 전 시장이 지난 4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돈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의사 표시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윤 전 시장에게 뜯어낸 돈으로 아들(28)에게 외제차를 사주고 지난 달 결혼한 딸의 주택 매입에도 도움을 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올 7월부터 9월말까지 지역 정치인과 유력자 등 4명을 상대로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였으나 미수에 그쳤다. 검찰은 송금액 4억5천만원 중 지인에게 1억원을 빌렸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해 이자 등을 지급했는 지를 살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