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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교과서 이념공세…뉴라이트 깃발 들자 보수언론 ‘고무·찬양’

등록 2006-02-20 21:29수정 2006-02-20 21:38

[‘교과서’로 번진 이념공세]

보수세력의 교과서 공세는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됐다. 편향된 역사교육을 비판하겠다는 학자들이 모여 ‘교과서 포럼’을 출범시켰다. 이영훈·박효종(이상 서울대), 이대근·김일영(이상 성균관대), 김영호(성신여대), 전상인(한림대) 교수 등이 참가했다. 상임공동대표를 맡은 박효종 교수는 당시 출범식에서 “잘못된 ‘자학사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지적 흐름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교과서포럼, 기득권체제속 지식인” 지적
극우논조 신문 “만회 기회” 정치적 이용
“30년전 연구성과 표적 삼는건 시대착오”

교과서 포럼은 이후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와 경제과 교과서를 중심으로 내부 토론회를 거듭했다. 그 결과를 모아 단행본으로 펴낸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이상 두레시대 펴냄)는 이 단체의 생각을 대표한다. 책 곳곳에서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을 바로잡겠다”고 밝히고 있다. 상아탑의 학자들이 직접 중등 교과서 문제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교과서 공세’가 최근 급속히 확산된 데는 보수 언론의 역할이 컸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2>의 발간에 맞춰 사설과 칼럼, 관련 기사를 거듭 보도했다. ‘신우익(뉴라이트)’ 학자들이 386세대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책을 내놓았다는 취지였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보도에 대해 <…재인식>의 일부 필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최근 사태에 대한 보수 언론의 구실을 짐작하게 한다. <…재인식>의 편집위원인 김일영 교수는 2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필진 가운데는 ‘뉴라이트’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신문에서 마음대로 써버리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큰 실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 일간지는 <…재인식>이 ‘뉴라이트’와 연관이 없다는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을 마치 극과 극의 주장인 것처럼 맞세워 보도하는 보수 언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6권짜리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보면 그 안에 실린 글들의 견해가 서로 다르다. 그건 <…재인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공극우 이데올로기가 비판받는 속에서 정신적 공황을 겪은 특정 언론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만회하려고 학자들을 내세워 ‘대리전’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논쟁의 이면에 ‘생각이 서로 다른’ 학자 집단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교과서 포럼’의 핵심 학자들은 역사관의 차원에서 (진보 역사학계와) 다른 주장을 펴고 있고, 약간 성향이 다른 <…재인식>의 다른 집필자들도 미시사·일상사 차원의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며 “두 가지 모두 기존 역사학계가 쉽게 반론을 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포럼’을 중심으로 한 이런 학자집단의 등장은 정치·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반공독재체제의 국가주의 역사관을 비판했던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성과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기득권 구조에 편입된 보수적 지식인 집단이 또하나의 ‘대안 역사관’을 펼치려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들의 역사관을 지성사적 측면에서 평가하기보다, 권력재생산과 지식재생산을 동시에 이루려는 지식인 기득권 집단의 차원에서 살펴보는 게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일단 진보학계에서는 학술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많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연구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엄혹한 시기의 성과를 모아 1970년대 말에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30년이 지나 비판의 주된 목표로 삼는 게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라고 물었다. 주 교수는 “정말 논쟁을 하고 싶다면 이후 수없이 많은 연구축적을 쌓은 동시대 근·현대 사학자들을 상대해야 옳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진보학계 받아칠까 말까

학단협 “교과서로 직접 대응”
한편선 “상대하면 되레 손해”

보수 세력의 교과서 공세에 대해 진보 학계 내부의 반응은 엇갈린다. “맞상대하면 오히려 키워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이대로 놔두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겠다”는 판단이 교차한다.

학술단체협의회는 본격 대응을 서두르는 흐름을 대표하고 있다. 중등 교과서 집필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책’ 마련을 고민중이다. 다만 ‘뉴라이트 공세에 대한 직접 대응’의 모양새를 피하려는 뜻이 강하다.

박경 학단협 대표는 “보수 쪽 공세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대학 연구자들이 미래 세대를 위한 교과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반성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서를 문제 삼는다면 역시 교과서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저 쪽이 원하는 건 분명히 학문논쟁이 아니라 정치공세지만, 그렇다고 역사학계가 침묵만 지키는 것도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특히 주 교수는 “지금까지 현행 교과서의 내용과 발행 체제를 비판해온 것은 진보적 역사학계였다”며 “오히려 이번 기회를 계기 삼아 역사학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집단을 이뤄 교과서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학자의 양심을 걸고 개인 자격으로 집필에 나서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신중론도 적지 않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일본의 교과서 집필과 채택 과정을 보면 건강한 역사교육 토론이 아니라, 정치·사회·이념투쟁에 학생과 교육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진보학계가 조직적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식으로 나가면 일본의 교과서 싸움과 비슷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양미강 역사교육연대 위원장도 “어차피 역사 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한번에 끝날 사안이 아닌 만큼, 보수 언론이 조성한 현재의 논의구도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며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교육의 대안을 마련하는 문제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학계가 스스로의 문제를 성찰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어차피 역사해석에는 하나의 시각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므로 새로운 교과서를 내겠다는 시도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현대사 인식이 주로 통일운동·노동운동 등 ‘운동사’ 중심으로 쓰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이제 일상사·미시사 등 구체적 개인에 대한 관심도 역사서술의 시야에 넣으면서 역사인식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인식> 집필자인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도 “정치권 못지 않게 학자들 사이에도 인식·대화·소통의 단절이 심하다”며 “뜻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이야기하지 말고 서로 대화·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 공세’를 ‘참 역사교육의 모색’으로 바꿔낼 토양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교과서포럼 “자학사관” 맹비판…‘해전사 재인식’선 우편향도 반성

‘신우익(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대표적 문헌은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과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다. ‘교과서 포럼’이 지난해부터 펴낸 총서의 첫번째, 두번째 책인 만큼, 이들의 주장 가운데 고갱이를 모아 담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2>의 끝에 실린 편집위원 좌담에서도 이들의 역사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들이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지난해 발간된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나남출판 펴냄)는 한국경제성장의 궤적에서 이론적 원천을 끌어올리는 이들의 학문적 논구를 보여주고 있다.

교과서 포럼 소속 학자들은 일단 과거 반공독재체제 아래서 횡행했던 역사인식과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에서 교과서 포럼은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이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반공 이데올로기 일변도로 치달았던 과거의 우편향도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는 태도도 특징적이다. 여기에는 이영훈 교수 등의 영향이 크다. 이 교수는 이른바 ‘통계적 사실’에 근거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고 있는 국내 경제사학계의 대표적 학자로 평가된다.

가장 논쟁이 뜨거운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교과서 포럼 학자들은 80년대부터 본격화된 국내 역사학계의 근현대사 연구 성과를 “자학적 또는 자기비하적 역사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빈곤의 나락에서 부국화를 향해 나아갈 때…부국화를 일구어내는 혼과 정신이 중요하(다).…그렇다면 우리의 교과서가 그 혼과 정신을 담아내고 있는가?”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에 쓴 박효종 서울대 교수의 글이다.

결국 이승만-박정희 체제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시장주의를 비판하는 진보학계의 관점을 재비판하는 것이 이들의 큰 관심이다. 그 기본은 실증경제사학이지만, 일상사·미시사의 방법론도 적극 빌려오고 있다. 진보학계의 역사관을 ‘폐쇄적 민족주의 사관’이라 비판하는 과정에서 탈민족주의의 관점도 동원한다. 그 결과 교과서 포럼의 주장은 과거사문제 해결에 반대하고 시장의 사회적 지배에 어깃장을 놓는 보수 언론과 정치권의 단골 논리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생산적 함의를 품어안는 진보학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최근 논란을 좌파 민족주의 대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대립으로만 보려는 것은 여전히 역사를 이념투쟁의 수단으로 보려는 정치적 독법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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