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로 번진 이념공세]
재경부 구성 ‘경제교육협의회’…민관기관 대부분이 ‘재계’
재경부 구성 ‘경제교육협의회’…민관기관 대부분이 ‘재계’
“1970년대 이후 작은 정부가 효율적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신문에서 노무현 정부는 큰 정부로 나가고 있다고 읽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20일 전국 고교생 경제경시대회 시상식 뒤 상을 받은 한 학생이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학생은 일부 신문들이 현 정부를 ‘큰 정부’라고 지적함에 따라 혼란을 겪고 있다. 교과서가 ‘작은 정부가 좋다’는 식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원리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는 20일 교육인적자원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경제교육 관련 16개 기관과 함께 민·관 합동으로 ‘경제교육협의회’를 구성하고 성인들과 학생들에 대한 경제교육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경제교육협의회를 구성하는 16개 기관은 재경부, 교육부, 산자부, 한은, 한국개발연구원,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원, 한국언론재단 등 정부 또는 정부 출연기관 8곳을 제외하면, 민간기관은 경제 5단체,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투자자협의회, 제이에이(JA) 코리아 등 재계 일색이어서 기업쪽에 유리한 경제 이데올로기만 일방적으로 강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실제 경제단체들은 최근 “현행 교과서가 자본주의, 시장, 기업에 대해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보이고 있다. 청소년교육협의회는 자산운용협회와 매일경제신문사가 공동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이 회장을 맡고 있다. 투자자협의회는 한국증권업협회 산하 기관이다. 제이에이 코리아는 외환위기 직전 경제부총리를 맡았던 강경식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들 단체는 성인·학생을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
정부도 이 때문에 고민 중이다. 진승호 재경부 교육홍보팀 과장은 “협의회를 구성할 때, 시민단체 참가도 검토했으나 경제교육 실적이 있는 단체를 찾기 힘들었다”며 “그러나 참여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기관에 대해선 문호가 개방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교육 주무기관은 성인교육과 달리 재경부, 한은, 한국개발연구원 등 3개 기관으로 국한시킨 것도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이념논쟁을 피하고, 금융·소비생활 등 실무 위주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전했다.
협의회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4개 지역에 ‘지역 경제교육센터’를 설치해 교사, 지방공무원, 농수축협 직원, 군·경찰 등에게 경제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협의회는 또 △일반인 대상 경제교육 표준교재 개발·보급 △경제교육 포털사이트 구축 △경제교육 강사 풀 구축 △청소년·대학생 대상 경제현장 체험 프로그램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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