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지금
지금은 호치민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옛 사이공 시내 전쟁유물박물관(전쟁박물관)에는 모두 8개의 전시공간이 있는데, 그 세번째 방이 미군이 뿌려댄 다이옥신과 소이탄이 부른 참극을 증언하는 곳이다. B-52였던가, 대형 폭격기 한 대가 저항군이 쏜 소총에 맞아 떨어진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었는데, 포로가 됐다가 석방된 뒤 나중에 미 의회 청문횐가에 나간 그 비행기 조종사가, 어쩌다가 소총에 맞아 떨어졌느냐는 질문에 폭격명령을 받은 지점에 가 보니 (이미 모조리 파괴당해) 목표물이 될만한 것이 도무지 없어 확인차 저공비행을 하다 총에 맞았노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거기서 들었다.
소이탄에 타 살이 문드러진 사람들 사진 한 켠에 포르말린 용액을 담은 큰 유리병이 두 개 있었고, 그 속엔 각각 팔이 넷인 기형아, 머리는 둘인데 몸이 붙어 하나로 태어난 기형아가 담겨 있었다. 건너편 벽에는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어린이들이 크레파스 등으로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미군 전폭기들이 뿌려대는 대형폭탄들에는 ‘다이옥신’ ‘다이옥신’이라는 글들이 또렷이 원망하듯 적혀 있었다.
지난달 25일 옛 베트남 대통령 경호대 건물을 개조해 만든 그 전쟁박물관에 가본 지 사흘 뒤인 28일부터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사상 첫 고엽제피해자 국제회의가 이틀간 열렸다. 베트남 병사와 미국, 한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베트남전 참전 병사 출신들과 러시아 과학자 등 모두 150여명이 모인 그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다이옥신이 든 고엽제를 제조한 미국 대기업들에게 배상을 요구했다. 그들은 2004년 1월 뉴욕 브루클린 연방지법에 몬샌토, 다우 케미컬 등 37개 미국 고엽제 제조 화학업체들에게 에이전트 오렌지 등 고엽제로 인한 피해 배상 소송을 냈으나 2005년 3월 기각당했다. 법률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항소심이 이번 달에 열릴 예정인데, 지금까지 이들 업체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인 등 백인 고엽제 피해자들에게는 법률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기금 출연 등을 통해 사실상 부분적인 보상을 해왔으나 정작 수백만명에 이르는 베트남 피해자들에게는 한푼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차별적이고 비겁했다. 한국 서울고법 민사13부가 지난 1월 몬샌토와 다우 케미컬에 한국 베트남 참전병사 에이전트 오렌지 피해자 6천700여명에게 모두 630여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은 고엽제 제조업체한테 법률적 책임을 물린 세계 첫 판결이었다.
미국은 1960년대에 무려 1900만 갤런(=7200만 리터) 이상의 고엽제를 인도차이나에 뿌렸고 기형아 출산은 몇세대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하노이 국제회의는 국제사회 정부와 민간단체들에게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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