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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가 몇년째 독서시장을 휩쓸면서 이른바 역사적 사실(팩트)에 가공의 이야기(픽션)를 더한 소설을 일컫는 ‘팩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 이후 출판사들이 줄줄이 찍어낸 다른 팩션들은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 팩션들이 주로 소재로 삼는 성전기사단이나 십자군 전쟁, 프리메이슨같은 비밀 결사의 전통, 사해문서 등의 고문헌 들이 서양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들이지만 국내 독자들에게는 너무 낯설고 부담스러운 탓이다. 그래서 “팩션은 이름을 적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농담섞인 불만들이 많고, 내용 이전에 배경지식이 없는 탓에 재미를 못느끼는 독자들이 상당하다.
반면 간간이 나온 국내 작가가 쓴 한국 팩션들은 ‘팩션이라면 아무래도 외국것이라야 할 듯’한 선입견에 막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물론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면에서도 아직은 외국 유명 작품들로 높아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올 여름 초입에 나온 이정명씨의 2권짜리 소설 <뿌리 깊은 나무>(밀리언하우스 펴냄)는 그동안 한국 팩션들의 약점으로 지적되어온 이러한 한계들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국내 팩션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8월 셋째주 종합순위에서 18위에 올라 팩션으로는 유일하게 20위권 안에 진입했다. 지금까지 판매부수는 10만부에 육박하고 있다. 팩션으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요즘 가장 인기가 높다.
<뿌리 깊은 나무>의 줄거리는 조선 세종시대 강채윤이란 한 하급수사관이 궁전 안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강채윤은 수사 과정에서 세종을 중심으로 하는 자주파와 중국에 충실히 복종하는게 조선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대파의 오랜 갈등이 사건의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살인사건의 무대가 되는 경복궁 주요 건물과 남겨진 단서들 속에 담긴 의미를 활용해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뿌리 깊은 나무>는 줄거리 전개 방식이나 얼개 면에서 독특한 새로움을 지닌 소설은 분명 아니다. 마니아들은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며 주인공의 캐릭터가 너무나 전형적이며 갈등상황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고르게 수준을 맞춰 두드러지는 약점도 없는 편이고, 재미면에서도 기본 수준에 올랐다는 평을 든는다. 가장 큰 강점은 이 소설이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 이상으로 ‘지식소설’로서 교양상식을 풍성하게 전해준다는 점이다. 전통문화의 중요한 아이콘들을 미스터리의 주요 소재로 활용하면서 그 의미를 설명해 넓혀주는 효과를 낸다. 책을 읽다보면 경복궁 건물의 네모 기둥과 둥근 기둥의 차이와 그 속에 담긴 의미, 미, 전통 연못의 조형방식에 배어있는 동양사상, 하도낙서와 마방진 등 동양의 고전 퍼즐 등을 만날 수 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기본적인 상식일 수 있겠지만 신세대들은 이런 문화적 상징들의 의미를 미처 몰랐던 전통문화의 묘미로 받아들이며 호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최고의 매력은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세종이란 군주의 매력, 그리고 한글이란 위대한 발명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는 점으로 봐야 할 것같다. 독자들의 의견을 보면 “책을 읽과 난 뒤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해 새롭게, 그리고 고맙게 생각하게 됐다”는 내용들이 많다. 역사교과서에서 무조건 “민족 최고의 발명품”이라고만 배웠던탓에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당시 중국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얼마나 힘든 정치적 결단이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얼마나 치밀한 과학적 성과와 노력이 들어갔는지 미처 몰랐던 것을 소설을 통해 알게된다는 것이다. 지루한 교과서보다 재미난 소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때로는 훨씬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하지만 이 소설 최고의 매력은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세종이란 군주의 매력, 그리고 한글이란 위대한 발명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는 점으로 봐야 할 것같다. 독자들의 의견을 보면 “책을 읽과 난 뒤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해 새롭게, 그리고 고맙게 생각하게 됐다”는 내용들이 많다. 역사교과서에서 무조건 “민족 최고의 발명품”이라고만 배웠던탓에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당시 중국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얼마나 힘든 정치적 결단이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얼마나 치밀한 과학적 성과와 노력이 들어갔는지 미처 몰랐던 것을 소설을 통해 알게된다는 것이다. 지루한 교과서보다 재미난 소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때로는 훨씬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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