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탄생 백주년 전집 간행에 부쳐
-탄생 백주년 전집 간행에 부쳐
지난 6월 3일. 의미 있는 두 문학제가 동시에 열렸소. 역도로 치면 헤비급의 두 인물. 마산시의 권환(1903-54) 문학제와 부산시의 향파(이주홍, 1906-87) 문학제가 그것. ‘의미 있는’이라 했거니와, 그것은 지역문학이 지닌 성격과 무관하지 않소. 몸뚱이가 하나뿐인지라 양쪽에 동시에 갈 수 없어 이번 참엔 향파 쪽을 택했소. 탄생 백주년 기념 세미나는 향파가 오랫동안 근무한 대학(지금은 부경대학)에서 열렸소. 향파가 강의하던 건물 앞 잔디밭에서 시비 제막식이 있었소. 조각 정윤진 글씨 류영남으로 이루어진 시비 표면엔 이렇게 씌어 있었소. “작품은 곧 발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일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몸부림인 것이거나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의 부조리에 저항을 하는 것이거나 필경엔 발언 이상의 것일 수 없다”라고. 창작집 <해변> 후기에 적힌 것이오.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향파 문학관에도 가보았소. 이층으로 된 문학관엔 자료들이 잘 수집되어 있었소. 평소 사용하던 만년필 20자루도 마도로스 파이프도 육필 원고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소. 직원이오? 하고 거기 있는 두 안내원에게 묻자 대학생이라 했소. 입구에는 이번 행사 중 제일 화려한 연극 포스터가 걸려 있었소. 향파의 희곡 <탈선 춘향전>(이윤택 연출)이 그것. 또 입구에는 전집 간행 중 일부인 소설(5권), 희곡(3권)이 이주홍 문학저널(제4호)과 함께 키를 잴 만큼 쌓여 있었소. 또한 고향 합천 생가 표지석 세우기 행사까지 공고되어 있지 않겠는가. 아동문학의 대가인지라 참가자 수가 초등학생 및 학부모를 합해 무려 버스 8대 분이라 하지 않겠는가. 요컨대 백주년 행사답다고나 할까. 그렇기는 하나, 백주년 행사라 해서 아무나 이렇게 풍요로울 수는 없는 법. 필시 그만한 곡절이 있기 마련. 그 곡절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음 몇 가지를 멋대로 짚어봅니다.
첫째, 부산시가 지닌 역량. 나라가 어지러울 때 두 번씩이나 임시수도(1950. 8. 18~9. 16, 1951. 1. 3~3. 14)의 몫을 치러낸 항도 부산이 아니었던가. 40계단과 영도다리와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간직한 이 도시의 포용성을 갖춘 역량이 새삼 음미될 수 있지 않겠는가.
둘째, 향파가 지닌 문인적 기질. ‘문인’이란 무엇인가. 작가라든가 시인이라든가 비평가라고 부르기 이전, 그러니까 특정 장르에 매달리지 않은 글쓰기를 가리킴인 것. 어느 장르에도 관여하면서 어느 장르에도 매이지 않는 글쓰기란, 그림으로 치면 붓을 한순간 놀려 완성해 보이는 문인화와 흡사한 것. 현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내면적 경지에 자족하는 것. 항도 부산에서의 향파의 글쓰기란, 그러니까 아동문학, 연극운동, 수필, 시, 소설 등에 두루 걸쳐 있었지요. 그러나 분량상으로는 아동문학과 연극 쪽에 압도적으로 경사되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특정 장르에 집착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 다만 외적·물질적 현상이 아닐까. 실질상 그런 것은 다분히 취미의 영역이었으니까. 향파가 진짜 내적으로 하고자 한 것은 단연 소설 장르였음이 후기로 갈수록 뚜렷해지오. 창작집들이 이를 말해줍니다.
여기에는 향파 특유의 역설이 잠겨 있습니다. 이 역설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향파론의 핵심에 육박하기 어렵지요. 다시 말해볼까요. 문인으로서의 저러한 장르 무시의 글쓰기란,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요시찰 인물로 해방 직전의 옥살이와 해방공간에서의 극좌적인 한효(韓曉) 노선(카프 비해소파의 중심인물의 하나)에 그가 있음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그 전략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정신의 예민한 활동을 통해 현실에 대한 비정형적인 극단적 비판을 감행한 경력의 소유자인 향파이기에 그의 전술은 고향 쪽 부산행을 감행했고, 그 속에서 장르 무시의 글쓰기에 몸을 놓았던 것. 그는 만년에 이 전략이 마침내 스스로를 구속했음에 자각적이었지요. 소설 장르에 관심을 둔 것이 그 증거. 그렇지만 거기에 깊이 나아가기엔 이미 창작력이 고갈되었던 것. 고대인(古代人)에 낙착되고 말았던 것. 향파 글쓰기의 한계란 이 부근이 아닐까.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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