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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 층위의 내면성으로 이루어진 인간

등록 2014-03-02 19:54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촘스키, 공작새, 최인훈 -디엔에이에 대하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험적인 언어능력을 가졌다고 촘스키는 주장했소. 말을 바꾸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혓바닥에서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 언어에 대한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 미국 어린이도 똑같다는 것. 나는 이 장면에서 문득 인간의 디엔에이(DNA)를 떠올렸소.

최인훈의 견해도 있소. 사람은 동물인 만큼 내면성을 갖는다는 것. 그 내면성은 언어에 의해 또 하나의 내면성을 갖는다는 것. 이 내면성은 문자의 발견으로 또 하나의 내면성을 형성한다는 것. 짐승과는 달리 인간은 세 층위의 내면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최인훈의 작품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72)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1·4 후퇴 때 월남한 최인훈의 이 작품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과는 당연히도 다르오. 도쿄에 유학한 구보 씨는 거기서 최신 모더니즘을 배우고, 식민지 서울의 빈약성과 화려한 모더니즘의 균형감을 얻기 위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썼다고 할 수 있소.

소설 노동자 최인훈은 창경원을 두 번씩이나 찾아갔소. 일제가 창경궁을 없애고 동물원을 만들었으니까. 첫 번째 방문에서 그는 공작새의 춤을 넋을 잃고 보면서 이렇게 적었소.

“텅 빈 동물원의 한낮에, 꼬리를 활짝 펴는 그 모습은 좀 섬찟한 것이었다. 마치 꽃망울이 열리는 현장에 맞닥뜨린 때처럼, 어떤 외설한 모습이었다. (…) 저 리듬, 까무라칠 만큼 아득한 어느 때부터 비롯한 버릇, (…) ‘공작처럼 거만한’ 어쩌구 하는 모습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원수의 땅에 포로로 잡혀 왔으면서도 하루의 정한 시간에는 자기네 부족의 법식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 같았다.”(<창경원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부족의 법식’이오. 이는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내면성의 하나라는 점이외다. 포로로 잡혀왔다고 했는데 과연 누가 포로로 잡았는가. 1·4 후퇴 때 자기 스스로 엘에스티(LST: 탱크상륙용 선박)에 실려 남한으로 오지 않았던가. 이 문제는 일단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하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디엔에이에 관해서이오.

1972년 2월 하순 눈 내리는 날 창경원에 다시 갔다 하오. 거기서 북극 짐승 백곰 한 마리가 있었소.

“그의 평생에서의 그 액운의 날. 그러나 그가 장면을 외고 있을 리 없다. 그를 잡은 사냥꾼은 기억하겠지. 그 비극의 날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의 두뇌. 백치. 흰 슬픔이다. 빈 종이의 슬픔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자기 디엔에이의 바퀴자리를 따라 돌 뿐인 슬픈 헛일. 헛일. 헛일이라니? 알면 어떻다는 것인가. 무엇이 달라지는가?”(<다시 창경원에서>)

디엔에이란 동물 공통의 것. 짐승도 내면성을 갖소. 백곰도 같것다. 그러나 사냥꾼, 인간은 언어를 갖고 있어 또 하나의 내면성을 갖고 있것다. 다시 인간은 문자의 발명으로 또 하나의 내면성을 갖는다. 이 문자가 이른바 자아각성 또는 주체성을 가져 왔을 터. 촘스키는 언어의 내면성을, 최인훈은 종족의 법식이라는 내면성을 지적했것다.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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