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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과 인간 사이에 놓인 시

등록 2006-10-12 20:36수정 2011-12-13 17:13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 김현승의 경우

김현승의 시를 좋아했소. “말할 수 없는 모든 언어가/노래할 수 없는 모든 선택된 사조(詞藻)가/소통할 수 있는 모든 침묵들이/고갈하는 날/나는 노래하련다!”(<옹호자의 노래> 첫 부분)라고 읊어졌을 때, 시인의 결의란 얼마나 건강한가. 모든 지상적인 것이 끝난 데서 출발하는 자를 일러 옹호자라 했으니까. 이런 결의 갖기만도 대단한 일인데 마침내 그런 경지에 이르렀음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더욱 대단한 것이 또 있소. 그런 경지에 이르자마자 이를 넘어서서 또 다른 경지로 나아감이 그것.

그러나 한갓 피조물인 시인이기에 그런 경지에 부딪친 것은 무엇이었던가. ‘고독’이란 이름의 바윗덩이가 아니었던가. “신앙을 가리켜 그러나 고독 위에 나리는 축복이라면/깊은 신앙은 우리를 더욱 고독으로 이끌 뿐,/내 사랑의 뜨거운 피로도 너의 전체를 녹일 수 없구나!”(<인간은 고독하다> 부분) 바로 이 대목이 김현승 시의 한 전환점이오. 신앙이 깊을수록 고독해진다면 이 고독이란 신앙과는 별개의, 신앙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의 도달해야 할 그 무엇인가, 바로 이 지점에까지 시인이 육박하고 있었소. 신앙과 고독은 각각 별개인가 아닌가. 신앙의 축복을 받을 정도로 고독이 소중하기에 이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면 결국은 고독과 신앙은 분리 가능한 별개의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그렇다/아니다를 떠나, 고독은 자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지요. 신앙과 결별할 수밖에요. ‘절대고독’이란 그러니까 신앙과 고독의 분리 지점에서 한 발자국 나아간 경지이지요.

“나는 내게서 끝나는/아름다운 영원을/내 주름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더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의 손끝에서/드디어 입을 다문다―나는 시와 함께”(<절대고독> 끝부분)

이 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절대고독’에 가까스로 이르렀다는 것, 그 순간 시도 끝장난다는 것.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다는 것. 여기서 시인이 할 일이란 없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더 할 일이 없다는 것.

“내가 할 일은/거기서 영혼의 옷마저 벗어 버린다”(「고독의 끝」 끝부분)

시는 물론 영혼의 옷마저 벗어버린다면 그는 무엇인가. 너무도 아득하고 차디차서 호랑이도 가까이 가길 싫어하는 장작개비거나 바윗덩이라고나 할까. 여기에는 어떤 그리움[悲]도 감히 끼어들지 못하오.

이러한 절대경지에까지 시를 밀어붙였을 때 시도 인간(영혼)도 사라졌고, 고독만 절대성으로 가로놓여 있소.


이 나라 근대 시문학사에서 보면 이보다 절대적 경지는 일찍이 없었던 것. 높은 봉우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지란, 인간 김현승의 처지에서 보면 어떠할까. 시도 사라지고 영혼도 사라졌다면 김현승 자신도 무화(無化)된 것인가. 이 사실을 자각케 한 것은 그의 시도 고독도 아니고 그의 신앙이었습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하느님이 자기를 내려쳤다는 것. 환갑을 앞둔 무렵 시인은 쓰러져 생사를 헤매었던 것.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하시어 나의 과거를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그리하여 나는 고혈압 증세를 앓기 전보다 신앙을 회복하고 자신의 죄과를 깨닫고 신앙에 정진하려고 지금은 노력하고 있다”(<고독과 시>, p. 163)라고 그는 적었거니와, 병후에 그가 해야 할 첫 번째가 자기의 문학관의 개조와 혁신이었소. 지난 날의 자기의 시란, ‘일종의 변태적 발로’라는 것.

여기까지 이르면 이런 물음을 물리치기 어렵소. 그가 이룩한 ‘절대고독’의 시적 평가는 어떻게 해야 적절할까. 그의 이러한 형이상학적 관념성은 이 나라 시문학사의 큰 봉우리로 평가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시인 자신이 자기 업적을 스스로 부정한 측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적절할까. 시와 시인의 분리 문제에서 나아가 시와 시인과 인간의 분리 문제라는 과제라 할 수 없을까.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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