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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요즘읽은책] 동서양과 삶과 여성성 아우른 철학

등록 2006-10-12 21:29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철학개론서야 서점에 가면 넘쳐 난다. 손에 잡히는대로 들춰보면 목차마저 대충 비슷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쓸 바에야 왜 새로 책을 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개론서라면 입문서 역할도 하는 법인데, 읽는이를 아예 철학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을까 싶은 책도 더러 있었다. 쉽게 쓰고 눈에 띄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책도 보인다. 그런다고 좋은 책일까. 철학개론서들을 읽으면서 마음에 품은 바람이 몇 있었다.

먼저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책이 있으면 했다. 양의 동서를 무너뜨린, 자유롭고 폭넓은 사유력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는 인식론적 혁명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역사와 사회, 그리고 삶을 살펴본 책이었으면 했다.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정신에 사로잡힌 책이나, 여전히 맑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개론서에 신물이 난 때문이다.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 청소부>가 널리 읽히는 데는 다 까닭이 있다. 끝으로는 여성적 시각이 강조되었으면 싶었다. 과학영역만큼이나 철학에서도 여성은 변방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남성중심적 해석이 지배해왔다는 뜻이다. 조만간 마르트 룰만의 <여성철학자>를 읽어보려는 이유다.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를 읽으며 내심 걱정했다. 또 하나의 개론서를 읽는 것이 시간낭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려는 곧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놀랍게도 평소 바라던 바를 두루 충족시켜주는 책이어서 그랬다. 노장사상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임에도 서양철학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니체에서 들뢰즈로 이어지는 전복적 사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철학사의 흐름을 필연성과 우발성으로 나눈 것은 알튀세르의 영향 탓이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노자를 필연성의 철학으로 보고, 장자를 우연성의 철학으로 분류한 것은 지은이의 신선한 발상 덕이다.

지은이는, <장자>는 <도덕경>에 대한 긴 주석이라는 상식에 도전하고 있다. 둘은 한패가 아니라 짝패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를 해설하는 능력이 간명하면서도 날카롭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라 했으나, <장자>에서는 “길은 걸어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일렀단다. 금세 눈치 챌 수 있지 않은가. 절대적인 필연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필연성의 철학이라면, “세계의 형성 이전에는 어떤 의미도, 또 어떤 원인도, 어떤 목적, 어떤 근거나 부조리도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발성의 철학이라는 것을 말이다.

삶의 주인이 되는 참된 길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이문열의 <선택>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여성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페미니즘 논의라고 짐작하지는 말 것. 이 한 작품을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해 칸트와 니체가 격돌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좋은 철학개론서의 미덕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아무리 개론서지만 지은이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덕의 논리와 자발적 복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노자의 <도덕경>과 <삼국지>의 유비가 통념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두 사람에게서 “수탈하기 위해서는 재분배해야 한다”는 국가의 원리를 찾아낸다. 파격이지만 설득력도 높으니, 이만한 수준을 갖춘 개론서라면 남에게 권할만하지 않겠는가.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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