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의 질곡을 그린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번역 출간되었다. 사진은 칸다하르 외곽 마이완 난민촌의 한 아프간 여자 어린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왕은철 옮김/현대문학·1만3500원 2003년에 나온 할레드 호세이니(42)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생활하다가 열다섯 살 나이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실제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낯선 작가의 등단작은 출간과 동시에 평론가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인도의 여성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1997)이 거둔 성공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호세이니가 지난 5월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린다. 앞선 작품과 마찬가지로 1979년 소련군의 침공을 전후한 아프가니스탄 현대사가 바탕에 깔리면서 개인들의 수난과 저항의 드라마가 그 위에서 펼쳐진다. 앞선 소설이 남자 주인공을 택한 반면, 이번 소설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전작이 아프간 사회의 복잡한 부족 구성을 배경으로 배신과 환멸, 용기와 화해의 그야말로 개인적인 드라마를 보여준다면, 신작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아프간 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마리암과 라일라. 그들은 지극히 남성우월주의적인 늙은이 라시드의 부인들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마리암과 라일라가 각각 어린 나이에 차례로 라시드와 결혼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부자 아버지와 하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 그리고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부모님이 폭격으로 희생된 뒤 갈곳이 없어진 라일라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늙고 탐욕스러운 라시드의 ‘소유물’이 된다. △화장품과 장신구를 금하며 △공공장소에서는 웃어서는 안 되고 △학교에 다닐 수 없으며 △간통을 하면 돌로 쳐죽인다는,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법률’은 라시드의 남근주의와 결합해 두 여성을 한갓 물건의 차원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소련 침공 전후 아프가니스탄 배경
남성들 억압 뚫고 꽃피운 여인들의 우정
비극적 결말 속에서도 희망은 싹트네
라일라에 비해 스무 살 가량 연상인 마리암은 처음에는 라일라에게 적대적이지만, 두 사람은 결국 동일한 독재자에게 공통의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연대의식을 발휘하게 된다. 도망치려다 붙잡혀 온 라일라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던 라시드를 마리암이 삽으로 쳐 죽이는 장면은 궁지에 몰린 여성들 사이의 절박한 ‘자매애’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던져 라일라를 구한 마리암이 처형장으로 향하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505쪽)고 자신의 삶과 죽음을 총괄하며, 옛 연인과 재회한 라일라가 새로 낳을 아이의 이름을 마리암으로 정하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의 눈물샘을 한껏 자극한다. 악의 화신과도 같은 라시드와 온전한 피해자일 따름인 두 여자 사이의 선명한 대립구도, 그리고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라는 결말도 전작에 비해 다소 단순해 보인다. 탈레반과 바미안 석불처럼 뉴스를 통해 익숙해진 이름들을 소설에서 만나는 느낌이 각별하다. 제목은 17세기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가 카불에 대해 쓴 시 중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현대문학 제공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왕은철 옮김/현대문학·1만3500원 2003년에 나온 할레드 호세이니(42)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생활하다가 열다섯 살 나이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실제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낯선 작가의 등단작은 출간과 동시에 평론가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인도의 여성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1997)이 거둔 성공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호세이니가 지난 5월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린다. 앞선 작품과 마찬가지로 1979년 소련군의 침공을 전후한 아프가니스탄 현대사가 바탕에 깔리면서 개인들의 수난과 저항의 드라마가 그 위에서 펼쳐진다. 앞선 소설이 남자 주인공을 택한 반면, 이번 소설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전작이 아프간 사회의 복잡한 부족 구성을 배경으로 배신과 환멸, 용기와 화해의 그야말로 개인적인 드라마를 보여준다면, 신작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아프간 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마리암과 라일라. 그들은 지극히 남성우월주의적인 늙은이 라시드의 부인들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마리암과 라일라가 각각 어린 나이에 차례로 라시드와 결혼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부자 아버지와 하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 그리고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부모님이 폭격으로 희생된 뒤 갈곳이 없어진 라일라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늙고 탐욕스러운 라시드의 ‘소유물’이 된다. △화장품과 장신구를 금하며 △공공장소에서는 웃어서는 안 되고 △학교에 다닐 수 없으며 △간통을 하면 돌로 쳐죽인다는,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법률’은 라시드의 남근주의와 결합해 두 여성을 한갓 물건의 차원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소련 침공 전후 아프가니스탄 배경
남성들 억압 뚫고 꽃피운 여인들의 우정
비극적 결말 속에서도 희망은 싹트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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