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자본이 드리운 그늘 속 끔찍한 세상

등록 2008-01-11 21:05

작가 김사과 씨(왼쪽)과 구경미 씨.
작가 김사과 씨(왼쪽)과 구경미 씨.
〈미나〉
김사과 지음/창비·9800원

〈미안해, 벤자민〉
구경미 지음/문학동네·9500원

청소년들은 ‘경쟁’ 때문에 숨막히고
어른들은 모든 것 ‘거래’로 판단하는
현실 꼬집는 소설 두 여성작가 발표

문단의 막내 뻘인 김사과(24)씨가 장편소설 <미나>를 전작으로 발표했다. 그보다 열두 살 위인 ‘언니’ 구경미씨도 첫 장편 <미안해, 벤자민>을 내놓았는데, 개성이 다른 두 소설을 한데 묶어서 소개해도 좋겠다 싶다. 김씨의 소설이 이 시대 청소년들의 지옥 같은 삶을 다룬다면, 구씨의 작품은 동시대 어른들의 만화경 같은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나>는 여고생 수정이 친구인 미나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두 친구의 관계가 끔찍한 파국으로 치닫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이 시대 청소년들을 옥죄는 숨막히는 경쟁과 소통 장애의 현실이 가차없이 까발려진다. 수정이 미나를 죽인 표면적인 계기는 미나의 또 다른 친구인 지예의 자살이었다. 성적을 비관해 독서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지예의 소식에 미나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기에 이른다. 미나를 사랑하는 동시에 질투의 감정을 품고 있던 수정은 지예의 자살에 대한 미나의 ‘과격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말다툼을 벌이다가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일을 저지른다.

희곡 또는 시나리오를 연상시키는 현재형 지문에 십대들 특유의 스타카토식 대화와 거친 욕설은 아이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찍듯이 보여준다. 작가 자신의 요설적 서술과 수정의 웅변투 연설에 얹혀 퍼부어지는 기성 질서에 대한 신랄한 공격은 수정-미나 사건의 복합적인 이면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소설 전체에 걸쳐 수정과 미나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아이들의 시선’에 갇혀 있다는 혐의를 준다. <미나>의 주인공과 작가는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몸으로 부딪치는 대신 거리를 두고 언어의 포탄을 쏘아대는 데에 자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나〉와〈미안해, 벤자민〉
〈미나〉와〈미안해, 벤자민〉
구경미씨의 <미안해, 벤자민>은 <미나>가 공격했던 어른들 세계의 일단을 다소 희화화해서 보여준다. <미나>의 살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채업자 김길준을 납치 감금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를 납치한 것은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안수철이고, 그에게 일을 맡긴 것은 정신병력이 있는 대학 동창 이연주였다. 그렇다고 이연주가 김길준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연주는 다만 자기 때문에 죽은 대학 선배를 닮은 남자 조용희가 김길준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대신해서 복수를 해 주었던 것.

소설은 이처럼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점을 달리해 가며 들려준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연주와 조용희의 이야기가 각기 서술되다가 나중에 가서야 연결되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전모가 드러나는 소설 속 세계는 감시와 협박, 착취와 약탈, 그리고 기생과 권태로 점철된 몬도가네(=개 같은 세상)이다. “그놈이 안 뺏으면 다른 놈이 뺏고, 다른 놈이 안 뺏으면 내가 뺏는 게 인간이고 인생”(171쪽)이라는 조용희 아내 김선숙의 말은 이 세계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 해설을 쓴 평론가 이경재씨는 이 소설이 교환과 변제라는 이 시대의 사회경제적 작동원리를 탐구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미나>와 <미안해, 벤자민>은 경쟁과 교환이라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어두운 이면을 각자의 방식으로 포착한 ‘자매 소설’이라 보아도 좋겠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문학동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