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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3월 29일 잠깐 독서

등록 2008-03-28 21:24

〈성찰하는 진보〉
〈성찰하는 진보〉
■ 진보여,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시오

〈성찰하는 진보〉

‘우리’는 흔히 문제를 상대에게서 찾는다. 조국(43)은 ‘우리’에게서 찾았다. 서울대 법대에서 후학을 기르는 그는 “사회의 ‘우향우’ 분위기 속에 진보의 핵심 가치인 민주ㆍ인권ㆍ평등, 사회적 연대, 약자 배려, 관용ㆍ평화 등이 장식용 군더더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에 2005년부터 짬짬이 모아왔던 글 조각들을 묶어 <성찰하는 진보>를 펴내면서, ‘성찰하지 않는 진보’에 초점을 맞췄다. 조국은 범민족 진영이 “수구ㆍ무능 좌파”란 욕을 들어 마땅하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들이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 ‘민족 대 반민족’이란 낡은 구도에 갇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찰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일리 있다. 그도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양극화와 고용불안으로 대중의 고통과 불안은 증대되었는데,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둔 집권당은 오락가락”했다. 결국 실망한 대중은 ‘선진화’를 내세운 보수 진영을 선택했다.

그의 답은 자명하다. 지금의 진보가 “사회구조를 바꾸고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대안 있는 진보, 능력 있는 진보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범진보 진영을 향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고 당부한다. 그러지 않으면? “5년 뒤 단지 패배가 아닌 몰락을 가져올지 모른다.” 조국 지음/지성사ㆍ1만3000원.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웹 빅뱅’ 시대 미디어가 살아남는 길


〈웹 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
〈웹 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
〈웹 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


넷스케이프를 아시는가? 야후와 함께 웹 1.0 시대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이 기업은 지난해 사라졌다. 동시에 웹 1.0시대는 웹 2.0에 자신의 자리를 넘겨줬다. 웹 2.0은 인터넷의 쌍방향 소통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웹 빅뱅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미디어가 그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러나 웹의 대폭발 속에 포털은 그 세력을 키워하고 있지만 미디어는 반대로 그 세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대책은 없는 것일까? <웹 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은 웹 빅뱅 시대에 미디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분석하고 그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인 김택환 <중앙일보> 멀티미디어랩 소장은 이를 위해 국내외 대표적인 미디어들을 분석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구글, 유튜브, 영국의 <비비시>(BBC), 한국의 <조선일보>, <한겨레>, 네이버 등 국내외 주요 미디어 기업의 웹 2.0 응용 역량을 평가했다. 저자는 가장 우선적인 해법을 ‘비빔밥’에서 찾는다. 독일의 정론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온라인에 먼저 기사를 올린 뒤 누리꾼 반응을 묶어 다시 신문에 옮긴다. 이처럼 웹과 종이를 섞는 ‘비빔밥’ 전략이 웹 빅뱅 시대 미디어의 지향점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김택환 지음/중앙북스ㆍ1만3000원.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 수평적 ‘지적 교류’를 향한 꿈


〈동무와 연인〉
〈동무와 연인〉
〈동무와 연인〉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장 폴 사르트르는 아무 철학도 없이 연애를 하고 또 그 연애담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아 시몬 드 보부아르를 자주 열받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부아르에게 중요했던 건 ‘지적 반려로서 사르트르’였기에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인형은 용납할 수 있었다. 보부아르는 말년에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라고 둘의 관계를 결산했다고 한다. 지은이인 철학자 김영민씨의 ‘동무론’의 접점은 ‘지적 교류’다. 둘 사이 관계의 외피가 어떠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지은이는 비트겐슈타인과 제자 스키너의 동성애, 파탄 난 모자관계였던 쇼펜하우어와 어머니 요한나 등 각양각색의 관계 속에서 동무를 끌어낸다.

왜 친구가 아니고 동무일까? 지은이는 친구는 같은 시간의 명암과 굴곡을 거쳐 얻은 탁하고 묵은 관계라고 본다. 그러나 동무는 오히려 동무(同無). 서로의 차이가 만든 긴장으로 함께 가는 사이란다. 운은 띄워놓았지만 동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진 않는다. 서문에선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고도 말했다. 수평적인 지적 연대에 대한 꿈이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한겨레>에 ‘동무와 연인’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었다. 김영민 지음/한겨레출판ㆍ1만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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