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 소소함 속에서 찾은 건축 이야기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10대 때 독일로 이주해 지금은 마흔을 넘긴 지은이는 한동안 한국말을 잊고 살았다고 한다. 독일에서 ‘발등의 불 끄기 바쁘기’ 식으로 34년을 살다 보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단다. 문화재 건물 전문가로 자리잡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큰 뒤, 그는 다시 한국어로 소통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블로그(‘빨간 치마네 집’)를 짓고 뮌헨과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번에 이것들을 밑천 삼아 책을 냈다. 지은이는 건축이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처음 펼치면 지은이가 뮌헨에 이사 와서 남편과 집 가꾸기를 두고 아옹다옹한 이야기부터 나온다. 복도를 수납 공간이 많은 경제적 공간으로 활용하려 한 지은이가 시각적으로 시원한 공간을 원한 남편과 애써 타협을 본 이야기, 좁은 부엌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손수 ‘맞춤 식탁’을 만들었던 과정 등을 들려준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공간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건축을 말한다. 뮌헨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디즈니 만화가 모델로 삼은 성으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왜 바로크·비잔틴·로마네스크 등 온갖 양식을 뒤섞어 짓게 됐는지도 들려준다. 임혜지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두 아이의 엄마가 본 레바논 전쟁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레바논 베이루트에 사는 한 소녀. 코앞에 떨어지는 포탄 소리에 몸을 떨던 소녀는 어른이 되어 두 아이를 낳는다. ‘내 아이들에게는 평화만을 물려 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그 간절한 소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의 후광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또다시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이다. 일간신문 기자였던 지은이 림 하다드가 기자로서가 아닌 두 아이의 엄마로서 겪은 ‘2006년 레바논 전쟁’을 기록한 글이다. 림은 이스라엘에 묻는다. 사망자의 3분의 1이 어린아이들인 이 전쟁이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미국에 소리친다. 자기 두 딸을 안전한 곳에 둔 부시가 처참한 지옥에서 자식을 살려야만 하는 애타는 부모 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죽은 아이들이 내 아이가 아님을 감사해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엄마인 것을.
중동 분쟁사를 어렵게 여기는 독자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스라엘 건국,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망향가,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헤즈볼라의 속사정을 읽다 보면 중동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마음에 증오를 새기지 마라.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고,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박민희 옮김/아시아네트워크·1만5000원.
고유리 기자 yuriko@hani.co.kr
■ 남북에서 두루 버림받은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평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과 북 양쪽의 역사에서 지워졌던 이들이 있다. 독립운동가 김원봉(1898~?)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이미 김구·신채호 등 뜨겁게 살다 간 이들의 평전 작가로 유명한 글쓴이는 김원봉의 항일운동을 대략 세 단계로 나눈다. 1기는 1918년부터 10년 동안의 의혈 투쟁기다. 20살이 되던 1917년 중국으로 건너간 김원봉은 이듬해 길림성에서 의열단을 창단해 활동한다. 그는 이 시기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투척 사건 등을 조직한다. 2기는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좌익활동기다. 베이징에서 레닌주의 정치학교를 열고 조선공산당재건동맹에도 참여한다. 1930년대 말 이후는 군사활동기로 분류한다. 그는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단하고 1942년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과 군정부장을 맡는다. 해방공간은 김원봉에게 시련의 시기다. 남쪽에서 그는 47년 군정 포고령 위반 혐의로 대표적인 친일경찰 노덕술에 붙잡혀 조사받는 수모를 당한다. 김원봉은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가 있나”라며 분통을 참지 못하고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고 한다. 그해 8월 잇따른 좌익 검속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월북한 그는 북에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내다 58년 11월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삼웅 지음/시대의창·1만6500원.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약산 김원봉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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