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윤리학’ 스피노자에서 ‘정치학’ 스피노자로

등록 2008-04-18 19:38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알렉상드르 마트롱 지음, 김문수·김은주 옮김/그린비·4만5000원

‘자기보존 욕망’이란 코나투스에 따라
개인은 물론 공동체도 정념 일으켜
슬픔 줄이고 기쁨 키울 정치체제 고민

‘스피노자 부흥’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지적 사건 가운데 하나다. 그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프랑스이고, 발생 시점은 1960년대 말이다. 1969년을 전후해 마르시알 게루의 <스피노자>, 질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그리고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스피노자가 헤겔-마르크스의 지위를 위협·대체하며, 인간·사회·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철학적 준거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 사건을 일으킨 저작 중에서도 특히 마트롱의 저작은 철학 전문 연구자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은 긴 잠복기를 거쳐 1990년대 이후 대중적 파급 효과를 낳았다. 현대 스피노자주의의 탄생을 알린 이 책이 스피노자 전공자들의 번역 작업을 통해 우리말로 나왔다.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1632~1677·사진)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기 전까지는 ‘생계를 위해 안경알을 깎은 은둔의 현자’ 아니면 ‘범신론을 주창한 신비주의자’라는 이미지로 통용됐다. 종교에 대한 도전적 해석으로 일찍이 유대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하고, 또 <신학-정치학 논고>가 17~18세기 정치적 지배세력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을 정도로 당대 현실과 깊이 연루돼 있었는데도, 그는 오랫동안, 탈속세적 은자로 묘사됐다. 그의 사상에 관한 연구도 주저인 <윤리학>(에티카)에 집중됐고, 정치철학 저술인 <신학-정치학 논고> <정치론>은 논외로 밀려나거나 <윤리학>과 무관한 부차적 저술로 간주됐다. 그러나 마트롱에 이르러 스피노자는 ‘윤리학’의 스피노자를 넘어 ‘정치학’의 스피노자로 재탄생했다. 특히 마트롱의 저서는 윤리학에서 정치론까지 스피노자 사상을 수미일관한 통일적 전체로 다시 세움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에 관한 한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현저한 특성은 ‘방법론적 엄밀성’이다. 스피노자 <윤리학>이 수학적 추론과 논증의 방식을 따르듯이 마트롱의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도 하나의 명제에서 이후의 명제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빈틈없는 논리적 방식으로 서술된다. <윤리학>에서부터 <정치론>까지 스피노자의 모든 텍스트가 그 내적 논리를 따라 배치되면서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 논리의 건축물로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또다른 특성은 ‘정치 문제’야말로 스피노자의 진정한 철학적 문제였음을 입증한다는 데 있다. 옮긴이들은 말한다. “스피노자와 정치라는 문제는 이후 네그리나 발리바르에 의해 한층 급진적으로 제시되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정치의 문제를 스피노자의 ‘진정한 K제기했다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의의라 할 수 있다.”


‘윤리학’ 스피노자에서 ‘정치학’ 스피노자로
‘윤리학’ 스피노자에서 ‘정치학’ 스피노자로
번역본으로 900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저작의 첫 문장은 스피노자 <윤리학>의 유명한 명제로 시작한다. “각 사물은 자신의 존재역량에 따라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코나투스 테제’로 불리는 이 명제에 대해 마트롱은 “스피노자의 정념론·정치학·도덕론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출발점”이라고 단언한다. 스피노자 철학의 모든 것이 이 명제를 뿌리로 삼아 거대한 수목으로 자라오른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코나투스’(conatus)란 ‘어떤 개체 안에 존재하는 자기 보존의 무의식적 의지 또는 욕망’이라고 풀어쓸 수 있는 개념이다. 어떤 개체든,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이 코나투스를 가지고 있다고 스피노자는 본다.

이 코나투스에서 ‘정념’의 문제가 뒤따른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정념은 기쁨·슬픔, 사랑·미움과 같은 정서적 양태들을 가리킨다. 기쁨이란 “정신이 자기 코나투스와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외적 원인의 영향 하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 느끼는 정념”이다. 반면에 슬픔이란 “정신이 자기 코나투스와 대립하는 외적 원인의 영향 하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 느끼는 정념”이다. 풀어쓰면, 기쁨이란 자기보존 욕망이 실현돼 자기가 더 커질 때 느끼는 감정이며, 반대로 슬픔이란 자기보존 욕망이 방해받아 자기가 더 작아질 때 느끼는 감정이다. 또 사랑이란 기쁨의 정서를 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긍정적 집중이며, 반대로 미움은 슬픔의 정서를 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 집중이다.

그런 정념적 존재로서 ‘개체’는 ‘개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공동체’도 하나의 집합적 개체를 이룬다. 그렇다면 그 집합적 개체로서 공동체 안에도 코나투스와 거기에 뒤따르는 기쁨·슬픔, 사랑·미움의 정념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기쁨과 사랑이 커진다면 그 공동체는 완전에 더 가까워진다. 마트롱은 바로 이 지점에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적 중요성이 있다고 말한다. 스피노자 철학은 ‘해로운 정념’을 줄이고 ‘유용한 정념’을 키울 정치체제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를 논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