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허버트 마이어스 외 지음·강수정 옮김/에코리브르·1만8000원 홀로 서재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무릎 치며 낄낄거릴 때가 있다. 평소 생각과 일치하거나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던 것을 재치 있게 표현한 대목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마인드>는 세계적으로 창의력을 인정받은 예술가들이 “남들은 상상조차 못하는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어떻게 꿈꾸고 구상해내는지 그 계기와 비결”을 털어놓은 책이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만나본 창조적인 예술가 중에 공화당원이 없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라는 구절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딱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보수적인 정치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훌륭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이 말이 호소력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구동성으로, 창의성은 자유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실토하고 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공공의 진리에 맞서고, 모험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늘 혁명의 일부가 되고 싶었고, 무작정 권위를 추종하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다고 했다. 예술가 전체가 창의적인 인물은 아닐 터다. 전통적인 기법에 충실하거나 눈부신 형식미 덕에 평가받는 예술가도 있는 법이다. 이런 점을 살피면, 예술사의 새 지평을 연 창의적인 인물이 보수적일 리 없다. 예술 영역에서 발휘되는 자유와 혁신, 그리고 도전의식은 정치 영역으로 연장되게 마련이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인 면도 있다. 창의적인 예술가에게서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발견하게 된다면, 진정한 혁명가의 삶에서 우리는 예술가적 기질을 진하게 느끼고는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대체로 돈과 명예를 위해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뜻밖에 ‘팔방미인’이 아니었다. 그것만 잘할 수 있어서 그 일을 했노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라며 “사랑하는 일을 택하면 잘할 확률도 높다”고 했다. 미술 말고는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며 “재능의 달걀을 전부 한 바구니에 담았”노라고 한 것은 척 클로스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세속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그 이유는? 스티븐 홀의 말대로, 꿈을 꾸고 그것을 펼치려는 사람들만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에는 창의성이 더 많은 가치를 거두리라 ‘예언’하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고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장 장악력 높은 창의성 있는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창의력을 목 조르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정치 쪽에서 권위주의 부활이 목격되고 있고, 교육현장은 입시경쟁을 더 부추기고 있다. 스파이크 리의 글을 읽다가 절망감마저 느꼈다. 그는 “자녀가 창조성이라는 선물을 받았는지 알아보고 그걸 개발하게끔 용기와 격려를 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건 큰 복이다”라고 했다. 과연 우리를 두고 다음 세대가 지복이었다 말해줄지 의심스러워졌던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허버트 마이어스 외 지음·강수정 옮김/에코리브르·1만8000원 홀로 서재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무릎 치며 낄낄거릴 때가 있다. 평소 생각과 일치하거나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던 것을 재치 있게 표현한 대목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마인드>는 세계적으로 창의력을 인정받은 예술가들이 “남들은 상상조차 못하는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어떻게 꿈꾸고 구상해내는지 그 계기와 비결”을 털어놓은 책이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만나본 창조적인 예술가 중에 공화당원이 없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라는 구절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딱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보수적인 정치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훌륭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이 말이 호소력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구동성으로, 창의성은 자유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실토하고 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공공의 진리에 맞서고, 모험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늘 혁명의 일부가 되고 싶었고, 무작정 권위를 추종하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다고 했다. 예술가 전체가 창의적인 인물은 아닐 터다. 전통적인 기법에 충실하거나 눈부신 형식미 덕에 평가받는 예술가도 있는 법이다. 이런 점을 살피면, 예술사의 새 지평을 연 창의적인 인물이 보수적일 리 없다. 예술 영역에서 발휘되는 자유와 혁신, 그리고 도전의식은 정치 영역으로 연장되게 마련이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인 면도 있다. 창의적인 예술가에게서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발견하게 된다면, 진정한 혁명가의 삶에서 우리는 예술가적 기질을 진하게 느끼고는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대체로 돈과 명예를 위해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뜻밖에 ‘팔방미인’이 아니었다. 그것만 잘할 수 있어서 그 일을 했노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라며 “사랑하는 일을 택하면 잘할 확률도 높다”고 했다. 미술 말고는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며 “재능의 달걀을 전부 한 바구니에 담았”노라고 한 것은 척 클로스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세속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그 이유는? 스티븐 홀의 말대로, 꿈을 꾸고 그것을 펼치려는 사람들만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에는 창의성이 더 많은 가치를 거두리라 ‘예언’하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고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장 장악력 높은 창의성 있는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창의력을 목 조르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정치 쪽에서 권위주의 부활이 목격되고 있고, 교육현장은 입시경쟁을 더 부추기고 있다. 스파이크 리의 글을 읽다가 절망감마저 느꼈다. 그는 “자녀가 창조성이라는 선물을 받았는지 알아보고 그걸 개발하게끔 용기와 격려를 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건 큰 복이다”라고 했다. 과연 우리를 두고 다음 세대가 지복이었다 말해줄지 의심스러워졌던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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