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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주라는 말로 콤플렉스 만드나요?”

등록 2008-07-25 19:46

“왜 공주라는 말로 콤플렉스 만드나요?”
“왜 공주라는 말로 콤플렉스 만드나요?”
백설공주 원전 ‘공주’ 단어 없어
그림 형제의 동화번역 문제제기
“독일 옛이야기 제대로 알리고파”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이양호 지음/글숲산책·1만원

‘눈처럼 하얀 살결’과 ‘피처럼 붉은 입술’을 지녔다는 백설 공주는 동화 속 수많은 공주 이미지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독일 그림 형제의 전래 동화인 ‘백설 공주’에는 본디 ‘공주’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원전 어디에도 ‘살결’이나 ‘입술’이란 말은 없단다.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는 국내에 수없이 번역돼 있는 그림 형제의 메르헨(M<00E4>rchen·전래 동화) 번역본에 문제를 제기하며 제대로 된 번역본임을 자처하고 나선다. 그림 형제가 독일의 옛이야기를 모아 펴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모음>의 1857년 최종판본을 원전 삼아 “직역하되 우리말의 결이 살아 있는 글”로 옮기고자 했다.

“독일어에 공주(Prinzessin)라는 단어가 버젓이 있는데도, 이 이야기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 굳이 공주라는 말을 끼워넣어 사람들을 콤플렉스 속에 살게 만드나요?”

책을 쓴 이양호(43)씨는 우리나라 옛이야기나 고전 신화 못지않게 잘 알려진 이야기인 ‘백설 공주’가 형편없는 번역을 거치며 왜곡됐음을 독일에서 알게 됐다. 2003년 가을부터 4년 동안 독일 만하임에 있는 발도르프 사범대학을 다니며 듣게 된 ‘언어조형’(Sprachgestaltung) 수업에서였다. 독일의 대표적인 대안교육 학교인 발도르프에서는 초등학교 1년 동안 담임 선생이 학생들한테 그림 형제 동화를 낭독해주는데, 이때 정확한 발음으로 동화의 정신과 의미를 바탕에 깔고 낭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동화에 한 사람의 장구한 일생이 압축돼 있다고 보는 겁니다. 신화는 영웅의 삶을 그리지만, 동화는 보통 사람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새하얀 눈 아이’ 이야기에는 자기가 타고난 본래 마음을 세상살이에서 힘들게 지켜내고, 마침내 드러내는 보통 사람의 삶이 담겨 있지요.”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동화의 정신을 깔고 다시 태어난 이야기에 그는 ‘새하얀 눈 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독일어 원제인 ‘슈네비트헨’(Sneewittchen)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한글 번역본과 독일어 원본, 영역본을 함께 실어 독자가 직접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했다. 번역 뒤에 이야기체로 덧붙인 해설은 생기 없이 단순하던 독일의 옛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의 해설 속에서 “눈처럼 새하얗고, 피처럼 붉고, 창틀의 나무처럼 검은 아이”는 눈과 피, 나무가 상징하는 하늘과 사람, 땅의 기운을 모두 받아 태어난 아이가 된다. 모든 인간은 하늘, 사람, 땅의 기운을 받아 빚어지기 때문에 독일의 옛이야기가 비로소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여왕의 물음에 답하는 거울의 의미를 풀어보는 대목에서는 이상의 시 <거울>이 등장한다. 새하얀 눈 아이가 일곱 살이 되고, 일곱 언덕을 넘어 일곱 난쟁이들을 만나는 이유도 서양에서 숫자 ‘7’이 지닌 의미를 파고들며 해석한다.


그는 새하얀 눈 아이 이야기가 우리 시대를 되잡아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공부 잘해서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라는 지금의 교육론은 어떤 교육이론서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경쟁력 키우는 데 혈안이 된 우리 사회가 새하얀 눈 아이를 시기하고 멧돼지 간과 허파를 먹는 추한 여왕처럼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독일로 건너가기 전, 그는 10년 가까이 강남에 있는 논술학원 강사로 일했다. 대학 시절부터 퇴계 이황을 존숭해 언젠가는 서원을 세울 꿈을 품어왔다는 그는 학원에서도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독서 지도에 주력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찼지만 잘사는 집 아이들만 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학원 강사로서 벌이도 좋았지만 대안학교를 세우려 그만두고 교육의 방법론을 배우러 발도르프 사범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귀국한 뒤부터는 대안학교를 세우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학교’를 세우는 게 꿈입니다. 보통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인성이 떨어지고, 인성 개발에 치우치면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우리의 전통에도 글 공부를 잘하는 선비들은 인격도 훌륭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맑게 하는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그는 부모의 수입에 따라 수업료를 내는 차등제를 꼭 실시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옛이야기를 제대로 알리는 일도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등의 재번역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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