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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휘청대는 법에 굄돌을 깔아라

등록 2008-11-28 22:39수정 2008-11-28 22:43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법부의 말뿐인 독립과 정치싸움 도구 된 법원 등
민주주의-법치 갈등 허다 시민의 ‘사회적 통제’ 중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아담 쉐보르스키·호세 마리아 마라발 외 지음, 안규남·송호창 외 옮김/후마니타스·2만2000원

하나의 사례에서 시작해 보자.

1930년대 독일 민주주의의 붕괴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은 독일의 사법부였다. 1919년 수립된 독일 바이마르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사법부는 매우 큰 정치적 자율성을 누렸다. 사법부 독립은 법적·정치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가 중립적인 것은 아니었다. 제2제국 시절 이래 사법부를 채운 법관들은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이었다. 그들은 바이마르 헌법을 존중하지 않았다. 사법부는 좌파를 억압한 반면에, 극우에는 극히 관대했다. 1918~1922년 사이 우익 투사들은 308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11명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조적으로 좌파 투사들은 21건의 살인 사건으로 37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는 판결을 통해 극우를 격려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반민주주의적 정치인들이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위기를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데 사용할 때, 판사들은 거기에 적극 호응했다. 나치는 권력을 얻기 위해 민주주의적 수단을 이용하고 조작했다. 심지어 ‘법의 지배’를 존중했다.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때 법이 그것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 것이다.

나치의 집권 사례는 민주주의 파괴가 반드시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기도 하지만, 역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죽이기도 한다. 아담 쉐보르스키, 호세 마리아 마라발 등 일군의 정치학자들이 함께 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의 관계를 진지하게 따져 묻는 책이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순조롭게 조응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이 두 제도는 긴장·갈등·적대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재조정할 수 있느냐를 숙고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법의 지배, 곧 법치란 사람의 지배, 곧 인치에 대립하는 말이다. 전제권력자가 아무런 제약 없이 멋대로 통치하는 것이 인치다. 이 인치를 대체한 것이 법치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법치의 기능은 정교해지고 중요해진다. 최상의 상태는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와 일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법이 밑받침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에서는 구현되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대립 관계에 놓이기 일쑤다. 문제는 그 대립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경우다.

이 책은 법의 지배가 등장하는 맥락을 권력 독점의 해체에서 찾는다. 권력이 한곳에 집중돼 있을 때 법은 기껏해야 누군가의 지배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상호 갈등적인 정치적 행위자들이 법에 따라 갈등을 해결하려 할 때” 그때가 바로 법의 지배가 등장하는 때다. 이때 법이 정치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중재하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판관 노릇을 한다면, 민주주의 체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법이 그런 구실을 하려면 사법부의 독립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이 책이 주목하는 지점은 사법부의 독립이 자동적으로 법의 공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법이 공정성을 구현하지 못하는 상황은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휘청대는 법에 굄돌을 깔아라
휘청대는 법에 굄돌을 깔아라
첫째, 사법부의 독립이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독재적 권력자의 손아귀에 들어 있을 경우다. 이럴 때 ‘법의 지배’는 말 그대로 껍데기일 뿐이며, 지배자는 법을 앞세운 지배, 법을 수단으로 삼는 지배를 행하게 된다. 법은 권력자의 뜻을 합법으로 포장하는 수단에 머무르게 된다.

둘째, 법원이 정치싸움의 도구가 되는 경우다. 힘이 약한 야당이 법에 호소하려 하거나 반대로 여당이 법원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하는 경우, 법정은 곧바로 정치투쟁의 장이 된다. 문제는 집권세력이 법의 힘을 빌려 반대파를 봉쇄하고 침묵시키려 하는 경우다. 정부가 야당을 무력화하고, 정부에 적대적인 사회운동을 탄압하고, 비판 여론을 억누르는 일이 법의 지배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것이다. 법원이 집권세력과 결탁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셋째, 사법부가 민주주의 가치에 적대적인 경우다. 민주주의 제도가 낳은 합법적 공간에 들어선 사법부가 그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치의 집권 과정에서 독일 사법부가 보인 행태가 바로 이 경우다. 이들은 ‘법의 지배’를 앞세워 자신들의 판결을 사회에 강요하지만, 그때의 ‘법의 지배’는 ‘나쁜 법’의 지배일 뿐이다. 계몽된 시민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들이미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유지·발전과 조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수평적 통제’와 ‘수직적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수평적 통제란 국가 기관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서로를 감시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직적 통제다. 수직적 통제란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정치행위자들을 갈아치우는 것을 말한다. 법의 지배를 악용하는 세력을 정치 영역에서 추방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터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만으로는 민주주의적 법치를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선거와 선거 사이 공백 기간에 권력이 남용된다면, 또 선거 자체를 조작하고 유권자를 매수한다면, 수직적 통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제3의 통제 방안이 ‘사회적 통제’다. 선거제도나 국가제도에만 맡겨둬서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일상적으로 통제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시민결사·시민운동·언론매체가 이런 활동의 주역이다. 이 책은 “법은 언제나 강자와 부자의 도구”라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을 비중 있게 인용한다. 법이 공정한 판결을 할 것으로 믿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법이 공정한 심판자 노릇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만약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싶다면, 여성운동을 조직하라. 만일 흑인의 시민권을 보호하고 싶다면, 시민권 운동을 조직하라.” 법은 법관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시민이 지킨다는 말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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