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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7월 4일 잠깐독서

등록 2009-07-03 19:41수정 2009-07-03 19:42

〈시비를 던지다〉
〈시비를 던지다〉




조선시대에도 비정규직이?

〈시비를 던지다〉

조선 때 자매문기(自賣文記)라는 문서가 있었다. 자신을 남에게 ‘팔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1832년 정정옥이라는 사람은 어머니 장례비를 마련하려고 양반지주에게 아내와 자식을 단돈 8냥과 쌀 한 섬에 팔아넘긴다. 글쓴이는 여기서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을 떠올린다. 요즘 사람들도 자신의 노동력을 싼값에 내놓고 양반지주를 대신하는 자본은 이들의 궁벽한 처지를 이용해먹는다. 지은이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국민들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먼 산 불 보듯 왜 딴청으로 일관하시는가”라고 묻는다.

‘법가’ 위앙의 최후도 의미심장하다. 위앙은 진나라 태자가 죄를 짓자 그의 선생의 목을 벤다. 추상 같은 법 집행이었다. 그러나 태자가 황제가 된 뒤 역모죄로 쫓기게 된 그는 여관에 숨으려 하지만 여관 주인은 ‘여행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방을 내주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법 때문에 하룻밤 묵을 데가 없게 된 위앙은 그제야 엄혹한 법의 폐해를 탄식한다. 결국 황제에게 잡혀 사지가 찢기는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지은이는 이 얘기를 통해 용산 참사를 빚어낸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다. “죽은 사람이 격렬하게 저항했던 이유를 성찰하지 않고, 법질서를 지키지 않아 비극이 일어났다고 하거나,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천근하고 야박하기 짝이 없다.” <한겨레> 등에 연재한 글을 엮은 <시비를 던지다>는 옛 문헌을 종횡하며 현재의 이슈를 날카롭게 잡아낸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된다고 느껴지는 건, 퇴행적인 시대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한겨레출판·1만2000원.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역사의 더딘 발걸음 몸에 새기고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
아흔을 훌쩍 넘기고도 열아홉 순결을 간직한 이가 여기 있다. 백옥 같은 이름 신현칠. 비전향 장기수 출신 가운데 남쪽에 남은 최고령자다. 그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만났다. 미래가 소외된 인간 없는 공동체이길 바랐다. 한국전쟁 직후 공작원으로 남파됐고, 체포 뒤에는 “나는 공산주의자다”라고 공언하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형무소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 세 차례, 2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일본에서 1년, 나머지는 남한에서다.

마지막 투옥 끝에 자유를 얻었지만 칠순이 넘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북으로의 송환도 마다했다. 이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수의 몸이지만, 죽는 날까지 분단의 아픔을 겨레와 함께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에서”였다. “역사에 현역으로 참가하지 못하여도 현역의 정신으로 참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까. … 비록 싸우지는 못하고 나 혼자의 마음속 일인 것이 못내 슬프지만 나의 지나온 날도 대개 그러한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더욱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의 고백은 해 돋는 새벽의 바람처럼 정신을 곧추세운다. 비양심의 시대를 살아온 한 양심적 공산주의자의 구김 없는 인생이다. 자전적 수기, 편지 속엔 감옥 안팎에서 산화한 동지들도 함께 숨 쉰다. 너무 더디다. 역사의 발걸음은 본래 그런 것이던가. 양심은 여전히 핍박받고 민중의 삶은 백척간두다. 쉬이 변치 않는 역사는 언제 다시 태어날까. 참으로 난산이다. 신현칠의 정신에서 ‘산파’의 손길을 찾는다. /삼인·1만3000원. 최정봉 기자 bong2ne@hani.co.kr

번역, 원문 ‘괴물’과의 한판 싸움

〈번역은 글쓰기다〉

〈번역은 글쓰기다〉
〈번역은 글쓰기다〉
번역은 반역이다. 번역의 어려움을 일컫는 경구다. 여러 뉘앙스를 지녔으되, 대개 원문을 강조한다. 번역은 필경 원문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전업 번역가 이종인(55)씨의 번역론은 이를 뒤집는다. “번역은 글쓰기다.”

직역이냐 의역이냐. 해묵은 논쟁에 빗댄다면 이씨는 의역파다. 원문파냐 자유파냐. 그의 표현을 따르면 그는 자유파다. 원문파가 원문 그대로를 강조한다면, 자유파는 원문의 속뜻이 잘 전달되는 것을 중시한다. ‘피로한 생리가 코피와 휴식을 요구한다.’ 저명 수필가 이양하의 문장이다. 영어의 무생물 주어 구문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우리말이 아니다. 이 예는 번역가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불행히도 번역가는 원문이라는 까다로운 괴물을 상대해야 하니까. 번역가가 원문을 읽고 떠올린 생각은 아직 모국어가 아니다. 원문은 모국어 표현을 방해한다. 번역가의 친구이자 적이다. <번역은 글쓰기다>는 15년간 현장을 지켜온 전업 번역가가 담담히 써내려간 번역 글쓰기론이다. 문장의 아이디어를 번역하라. 이씨의 번역 원칙이다. 원문 그대로, 품사까지 옮기려 들다 보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명사 하나를 한 문장으로, 긴 문장을 몇 문장으로 끊을 수 있다. 말을 넣고 뺄 수도 있다. 원저자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러니 번역은 원문이라는 괴물에 맞서는 고뇌에 찬 반역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종인씨의 글 씀씀이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다. 그의 견해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번역가와 작가 지망생, 번역서의 오역을 잡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들이라면 필독할 일이다. /즐거운상상·1만6000원.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이민 1.5세, 정체성 찾아 자전거 여행

〈메기와 만다라〉

〈메기와 만다라〉
〈메기와 만다라〉
우리에게 책으로 보는 자전거 여행은 익숙하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 길에서 정확히 비기고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자전거를 저어 간다고 한 김훈의 것에는 ‘살아온 이’가 가진 비김의 넉넉함이 있다. “부도까지 날 정도 쫄딱 망했지만 … 사시미 칼을 쥐고 일어나 자식 네 명을 키우고 있는 그(여행 길에 만난)는 단단한 사람이다. 눈매는 아직 죽지 않았다.“ ‘후반전을 준비하는 하프타임’이었던 홍은택의 것에는 ‘살아갈 이’가 가진 다짐이 있다.

이 책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와서 자란 한 ‘이방인’의 또다른 자전거 여행기다. 그에게 자전거 여행은 ‘살고 싶은 이’의 몸부림이다. 평범한 미국 중산층으로 살아가던 지은이는 어느 날 직장에 사표를 던진다. 삶은 그냥 살아지기도 하지만, 그것 하나 어려운 이도 많다. 흔히 이민 2·3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 정신적 토대의 허약함이었던 셈인데 그 질문의 답을 찾아 미국과 베트남을 자전거로 밟아간 여행의 기록이다.” 오줌 줄까, 음료수 줄까?“ 미국 여행길에선 옆을 달리는 차에서 수없이 종이컵이 날아왔다. 베트남 한 시골 마을에선 하루 노동자 일당의 3분의 1이나 되는 콜라 한 개를 시켰다가 “매국노, 미국의 애완동물”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한다. 아버지가 겪은 전쟁, 미국 생활에 실패한 누이의 죽음, 그리고 혼란스러운 나. 그의 삶을 지배하는 세 가지 주제다. 여정 곳곳에서 그것을 디테일하게 드러내고 해석하는 그의 눈을 따라가는 독서가 그다지 힘겹지 않다. 앤드루 팸 지음·김미량 옮김/미다스북스·1만5000원.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일본 성인비디오 번창은 어머니 때문?

〈15조원의 육체산업〉

〈15조원의 육체산업〉
〈15조원의 육체산업〉
일본 성인비디오는 유난히 미소녀를 밝히고, 성폭행·성추행을 소재로 하는 등 가학적 성향이 강하다. 비쩍 마른데다 어딘가 병약한 분위기를 풍기는 30~40대 남자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납치해서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른바 ‘사육’ 시리즈는 일본 성인비디오의 대표적 내러티브다. 풍만한 여자와 근육질의 남자가 서로 게임을 하듯 성관계를 벌이는 서양 성인비디오물과는 확연히 다르다. 왜 그럴까?

‘에이브이(AV) 시장을 해부하다’는 부제가 붙은 <15조원의 육체산업>은 이런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설문조사·현장취재·인터뷰 등을 통해 일본 성인비디오를 낱낱이 해부한 종합보고서다. 일본에서 성인비디오는 한 달에 1000~1500편이 제작되고 전국 1만여곳의 대여점 또는 판매점을 통해 유통된다. 또 성인비디오 산업은 100여개의 제작사, 여배우를 파견하는 모델 프로덕션, 필름회사, 인쇄회사, 비디오 플레이어 가전업체 등까지 포함해 1조엔에 이르는 거대한 산업이다. 설문조사 결과, 남자들은 96%가 성인비디오물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여성은 60%가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비디오를 접한 여성의 대다수는 ‘남성들이 이런 걸 보고 흥분한다는 게 유치하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그럼 왜 일본 남성들은 이런 저열한 성인비디오에 집착하는 걸까? 어머니의 지나친 과잉보호 아래서 자란 남자들이 어머니로부터의 구속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을 폭력·가학적으로 조종하는 성인비디오물을 찾게 되는 거라는 게 이 책의 분석이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임경화 옮김/씨네21북스·1만2000원. 강김아리 기자ari@hani.co.kr

뜨겁게 앓았던 성장통의 기억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안녕, 내 이름은 김은효야. 소설을 쓰고 있고, 서른 살이 넘었다는 정도로만 말해둘게. 오늘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뉴스를 봤어. 조승희라는 이름을 들으니까 고등학교 친구였던 조연희가 생각나더라구. 이름도 비슷한데다 걔도 지금 그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거든. 연희는 무사한 걸까 걱정하다 8개월 전에 미국으로 떠나버린 남자친구 H 생각이 났어. 문득 H에게 지금껏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던 시간’의 이야기를 말이야.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건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또래 여학생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었던 1989년이야. 그 시절에 난 외국어고를 다녔어. 내가 외고를 간 이유는 딱 하나, 단지 공부 좀 한다는 이유로 중학교 내내 당했던 왕따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 외고에서 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어. 날고 긴다는 부유층 애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성적은 4등급으로 떨어졌고, 입안에 있는 치아교정기는 날 언제나 주눅 들게 만들었지. H에게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는 “넌 성장이 멈춘 것 같아, 이젠 어른이 돼야지”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건 그뿐만이 아니지. H와 나의 관계도 말이야. 가끔씩 하는 전화통화에서 점점 할 말이 없어지는 우리를 보면서 결국 안 좋은 예감대로 흘러갈 거라는 걸 느껴. H와의 관계, 그리고 내가 기억해낸 고교 시절의 얘기들이 모두 흐릿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단 하나는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한 소녀의 진심이야. 오현종 지음/문학동네·1만원. 김학선 객원기자 studiocar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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