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록 전설’ 뒤를 캐보니
〈레드 제플린〉
“레드 제플린은 1960년대 마지막 그룹이자 1970년 최초의 그룹이었다.” 음악평론가 찰스 샤 머리의 회고는 전설적인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위상을 명료하게 정리한다. 여기서 최초의 그룹이라 함은 80년대까지 화려하게 펼쳐진 하드록의 시대를 열어젖힌 이 거장 밴드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록음악 팬, 특히 클래식 록이나 하드록 팬들에게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룹 레드 제플린의 ‘모든 것’이 두툼하고 무거운 장정본으로 나왔다. 수사로서의 모든 것이 아니라 진짜 ‘모든 것’이다. 밴드의 일대기나 음악적 성취를 다룬 책들은 간간이 나왔지만 이 책은 이런 내용들은 물론 이들의 모든 투어 날짜와 전세계 수많은 공연의 포스터, 입장 티켓까지 빽빽하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존 브림, 찰스 샤 머리, 가스 카트라이트 등 레드 제플린과 함께 청춘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평론가들을 포함해 이들의 영향을 받은 록 뮤지션,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 작가 윌리엄 버로스까지 필자로 기여했다. 이들이 냈던 모든 앨범의 꼼꼼한 리뷰와 공연 이야기 등이 화려한 무대 위 레드 제플린을 조망한다면 ‘거칠고 난잡하고 외설적인’ 하드록 문화의 기틀을 세운 그들의 무대 뒤 이야기나 레드 제플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탄생한 그루피(록 밴드를 열렬하게 쫓아다니는 젊은 여성팬) 에피소드에서는 70년대의 사회적 정서를 감지할 수 있다. 글도 글이지만 400장이 넘는 희귀한 시각자료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록음악 팬들에게는 푸짐한 즐길거리가 될 듯하다. 존 브림 지음·장호연 옮김/뮤진트리·5만5000원.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백과사전 판매원 ‘CEO 성공기’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도전하는 승부사 윤석금의 경영이야기〉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도전하는 승부사 윤석금의 경영이야기〉
신바람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이어주는 끈이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에너지, 서로에게 힘과 격려가 되는 ‘비타민’이다.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또또 사랑’.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지은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경영 정신이다. 그는 1971년 브리태니커 한국 지사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영어로 된 백과사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해 미국 본사에서 54개국 세일즈맨 중 최고의 실적을 올린 이에게 주는 벤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전하는 승부사’답게 1980년에는 7명의 직원과 함께 웅진씽크빅을 설립했다.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달려온 30여년, 지금은 14개 기업을 거느린 그룹 경영자로 우뚝 섰다. 도전, 적극성, 긍정적 사고, 투명성, 솔직함, 사람에 대한 존중, 사랑 등이 그가 소중히 여기는 덕목들이다. 그가 기업가로서 세운 제1원칙은 투명하고 공정한 윤리경영이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성장과 윤리를 동일한 가치로 인식했다. 윤리 경영은 긍지의 또다른 이름으로 지금의 웅진그룹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장은 “척박한 창업 토양에서 기적 같은 창업신화를 이루어낸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미래를 향해 뛰어야 할 젊은이들이 자포자기하고 있는 지금, 그가 말하는 도전과 ‘긍정의 힘’이 절실하다. 자수성가한 2세대 ‘창업 시이오’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역발상의 마법사’ 윤석금. 이 책은 그의 삶을 통해 경영 철학과 통찰 넘치는 성공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윤석금 지음/리더스북·1만2000원.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더듬이’ 휘젓는 출판 편집자
〈책으로 세상을 꿈꾸다〉
<책으로 세상을 꿈꾸다>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의 이야기다. 격주간 출판잡지 <기획회의>에 연재된 ‘기획자 노트 릴레이’를 엮은 것이다.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 <책으로 세상을 소통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에 이은 네 번째 시리즈물이다. 앞선 책들에 견줘 이번에는 비교적 젊은 축들인 출판계 입문 10년차 안팎에 이르는 30여명의 편집자들이 등장해 ‘편집자란 무엇인가’란 근원적 물음과 책을 만들면서 겪은 좌충우돌 출판 체험기 등을 재미있고 다채롭게 그렸다. 세상에 나오는 숱한 책의 이면에는 출판인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들이 꿈꾸는 미래 또한 녹아 있음을 새삼 확인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성과 창출자(김현경 웅진단행본사업단 차장), 임계점에 이르러 죽음에 이를지언정 절대로 아픈 내색을 하지 않은 낙타(윤정임 타인의취향 대표), ‘노가다’(우일문 전 청림출판그룹 편집주간) 등 제각기 달리 자신들을 규정하지만, 책으로 세상에 개입하는 사람이 편집자란 생각에는 모두 공감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에 더듬이를 세우고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좋다. 또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이현수 media2.0 편집장) 하여 이들의 이야기에는, 드러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나라의 현대사가 응축돼 있다. ‘도덕과 이데올로기’(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 몇몇 이야기 속에는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겪은 고뇌도 엿보인다. 책을 만드는 실제 과정, 기법 및 노하우를 밝힌 대목도 적잖아 미래의 편집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획회의 엮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1만5000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미국 비주류 문화 ‘제자리’ 찾기
〈다인종 다문화 시대의 미국 문화 읽기〉
다인종 다문화의 상징으로 미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흑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문학자 태혜숙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쓴 <다인종 다문화 시대의 미국 문화 읽기>가 흥미로운 것은 겉핥기식 미국 문화 논의를 뛰어넘는 접근법이다. 지은이는 “오늘의 현실을 다문화 시대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가부장 체제’로 규정하고, 미국 문화를 ‘비판적인 다인종 다문화 관점’에서 읽어 보고자 시도하였다.” 토착 미국, 아프리카계 미국, 치카노 미국, 아시아계 미국 문화 서사들은 타인종 혹은 혼혈성, 혼성성을 부정하는 백색 이데올로기, 백인성, 백인 중심주의 가치 지향에 의해 가장자리로 밀쳐져 왔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다인종 다문화 국가였던 미국”에 초점을 맞춰 미국 문화를 다시 읽어냄으로써, “백인 부르주아 남성 중심적인 현재의 지구적 다문화주의 추세와는 다른 방식의 지구화를 향한 자원과 에너지”를 찾았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미국의 역사, 문학, 영화, 대중음악 속에서 백인 남성 엘리트들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배제되고 은폐되어 온 것들에 주목한다. 미국의 역사에서 유색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했던 개척사를 짚어보고, 소설 <대지의 딸>에서 억압을 뚫고 대륙을 횡단하는 백인 하위주체 여성을, 영화 <엘 마리아치>에서 희화화·상업화되어 온 치카노를, 흑인 여성 래퍼들을 통해 페미니즘과 액티비즘을 논한다. 이를 통해 소외된 미국 주변부 문화들이 주류들과 상호 작용하고 충돌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문화를 이뤄낸 어엿한 주체임을 드러낸다. /이후·2만8000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삼라만상’ 껴안는 진화론
〈21세기 다윈 혁명〉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이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물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에서 진화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에 스스로 감탄한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진화론으로 말미암아 “먼 훗날 훨씬 중요한 연구 분야들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언은 적중했다. 올해로 탄생 150돌을 맞은 진화론은 이제 단순히 유기체 세계의 경계를 넘어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열쇳말이 됐다. <21세기 다윈 혁명>은 다윈의 진화론이 생물학·의학·인류학·신학 등 인접학문뿐 아니라 사회학·정치학·경제학·법학·심리학·복잡계 이론, 나아가 종교·예술·윤리학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폭넓고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는지와 앞으로의 전망을 19명의 국내 학자들이 분야별로 소개한 책이다.
다윈 이전 시기에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복잡한 자연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신(절대자)의 섭리밖에 없었다. ‘지적 설계론’도 설화적 분위기를 지운 창조론에 가깝다. 진화론은 그 세 기둥인 변이, 적응, 자연선택이 특정한 방향과 목적의식이 없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우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질서다. 유일한 동인은 생명체의 개체·종족보존 본능이다. 생명체의 이기적 성향뿐 아니라 이타성도 진화의 전략으로 설명된다. “훌륭한 이론은 간결하고 쓰임새가 다양하며 우아해야 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단순성, 보편성, 직관적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채, 현대과학에 수많은 영감과 과제를 던지며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최재천 외 18인 지음/사이언스북스·1만5000원.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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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에 ‘실존적 인간’ 있네
〈반전의 희망, 욥〉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고,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암나귀가 500마리 있고, 종도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그를 두고 사탄이 하나님에게 “과연 그가 가진 것을 다 잃고서도 하나님을 지금처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하나님은 그를 시험해보기로 한다. 집과 재산은 물론 자식 10명의 목숨까지 다 빼앗고 피부병에 걸려 이웃도 모두 떠나가게 만들었다.
루터는 “성서 안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책”이라고 일컬었고, 영국 시인 테니슨은 “인간이 쓴 시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라고 칭송했다지만, 어떤 이들에겐 성경의 ‘욥기’만큼 불편한 텍스트도 없다. 결국 하나님의 시험을 이겨낸 욥에겐 다시 부와 명예 그리고 새로운 자식까지 주어지지만 의문은 남는다. <반전의 희망, 욥>은 ‘인내와 순종으로 고통을 이겨낸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란 욥기의 주류 해석을 거부하고 ‘고통 중에서도 파멸에 이르지 않는 삶’ 그리고 ‘보상이 없어도 마땅히 살아가야 할 방도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찬가’로서 욥기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욥은 ‘인내와 순종의 표상’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과 고통의 기원에 대해 끝없이 항변하는, 그래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려는 실존적 인간으로 부활한다.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이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최형묵씨가 썼다. /동연·1만3000원.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