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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울에 온 세잔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

등록 2011-10-16 20:28수정 2011-12-13 16:03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세잔이 서울에 왔다 하오. 오르세 미술관의 세잔이 뭣하러 서울(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6~9월)까지 왔을까.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소. 세잔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이 나라에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세잔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여기 또 있기 때문. 세잔이 만나고자 한 사람은 시인 김종삼. 일찍이 그는 세자르 프랑크가 살던 사원 주변에, 또 말라르메의 본가에도 머물며 곰방대를 훔쳤고 고흐가 다니던 길바닥에도 머물렀으며, 또 사르트르가 사장으로 있는 연탄 공장 직공 노릇 하다 파면당한 바 있소(<앵포르멜>). 이만하면 세잔도 만나고 싶지 않았을까.

놀라워라. 전시관 입구엔 고흐가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지 않겠소.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전체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 세잔이 거기 있었음이란 무엇이뇨.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그것. 세잔이 김종삼을 마주하는 장면을 침을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요. 서로 마주 앉아 카드를 조용히 책상 위에 놓고 있소. 그것은 커다란 사원의 오르간 건반 위에 타고 있소. 두 사람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지만 실은 이 오르간 화음을 듣고 있소.

그들은 농부인 듯하오. 내일이면 밭에 나가겠지요. 농부이지만 내일이면 밭에 나갈 것을 잊고 느긋하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승부에 나아가고 있소. 다만 침묵뿐. 그들은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비로소 본성을 찾았소. 함에도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표정이외다. 이는 대상을 모르는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종교화라 본 미학자도 있을 정도. 그렇다면 그 오르간이란 누가 타는 것일까. 세자르 프랑크가 밤낮 사원에서 타는 오르간이 아니고 새삼 무엇이었을까. 김종삼이 그 사원 주변에 머물며 듣던 그 오르간 소리.

나는 이 종교화를 보고 싶었소. 김종삼과 세잔이 만나는 장면 말이외다. 일찍이 고갱이란 화가도 이를 지켜보고 있었소. 왈, “세잔은 세자르 프랑크의 제자다. 늘 고풍스러운 큰 오르간을 타고 있다”라고. 세잔과 김종삼은 어떻게 만났을까.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처럼 만났음에 틀림없소.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종교화의 화폭이 그것. 이러한 김종삼을 제일 부러워한 사람이 있었소. 나도 김현도 아니고 시인 김춘수였소. 내용 없는 아름다움과 무의미의 시론의 차이에 늦게나마 절망한 김춘수는 김종삼에게 시 한 편을 헌정했소. “이제야 알겠구나/ 넙치 두 눈이 뒤통수로 가서 서로 흘겨본다 서로 흘겨본다/ 그래서 또 오늘 밤은/ 더욱 가까이 보이는/ 세자르 프랑크의 별.”(<이런 경우-김종삼 씨에게>)

오르세 미술관의 보물은 많겠지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도 그중의 하나. 그것이 별처럼 내게도 빛나는 것은 김종삼, 김현, 김춘수와의 관련성 때문이자 그 이상이오. 그것이 인류의 영원한 유산의 하나이기 때문이오.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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