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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역사 감각의 단절 잇는 ‘상상력’

등록 2012-01-08 20:18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그대는 별로 훌륭한 인간 축에 들지 않는다. 그대보다 잘난 비평가도 이 나라에는 많다. 그럼에도 지금껏 글쓰기에 종사하며 제법 뻗대고 산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소리를 암묵 속에서 나는 수없이 들었소. 그럴 적마다 번번이 입을 다물었소. 이유는 실로 단순하오. 그들이 내게 묻지 않은 것이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오. 곧 문학 교사가 그것. 문학 교사, 그것도 이 나라의 문학 교사란 새삼 무엇인가. 또 말해 제법 괜찮은 문학 교사란 무엇인가. 그 의의, 그 방향, 그 지향성, 요컨대 그 존재 이유를 조금 말해 보면 안 될까.

아주 얕은 비유, 그러니까 현실적 과제에서 시작해 볼까요. 교과서 말이외다. 누가 교과서를 만들었는가. 집필자가 제일차적 준거이겠지요. 그가 어떻게 현실을 보았을까. 이 물음만큼 결정적인 것은 달리 없소. 그것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소. 하나는 그의 세대 감각. 누구나 저마다의 세대 감각이 있는 법. 가령 4·19세대의 비평가 김현에게 우선 물어보시라. “내 나이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라고. 386세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세대 감각 이외에도 개인사적 경험이란 것이 커다란 복병으로 가로놓여 있소. 계층 문제를 비롯, 가정 문제, 가족 사항, 신체 조건 등등에 의한 경험적 영역도 엄연히 있는 법. 국사 교과서의 경우라면, 배우는 학생들은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각 세대 감각이 미치지 않는 시대(개화기쯤)까지만 다루기가 그 한 가지 해결 방도. 세대 감각은 피해갈 수 있지만 개개인의 경험 감각만은 또 걸림돌로 남는 것. 요컨대 단절된 역사가 씌어질 수밖에.

이러한 단절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에 문학의 몫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오. 문학만이 그렇다고 나는 우기지 않소. 그 한 가지일 뿐. 그렇지만 이 한 가지에 주목해 보시라. 매년 거의 70만명이 수능 고사를 보고 있소. 언어 영역의 문제를 보셨는가. 문제의 반 이상이 문학 작품으로 채워져 있소. 고등학교에서 문학이 선택이지만 실제로는 필수에 다름 아닌 것. 입시용 문학 교육이라 작품 읽기에 앞서 외우는 쪽에 기울어져 있다 하더라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이 나라의 ‘문학적인 것’을 피해갈 수 없지 않겠소.

그렇다면 문학이야말로 세대적·개인적 경험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이 어째서 연속성의 한 가능성일까. 이에 대한 답변이 바로 상상력이외다. 현실 반영이든 초월이든 폭로든 개혁이든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문학일 수 있는 것. 곧 상상력이란 간접화된 현실이라는 사실을 가리키오. 간접화란 또 무엇인가. 가령 이태준의 <돌다리>(2012년도 수능 시험)를 보시라. 땅을 소중히 여기는 아비 세대와 신식 공부 한 아들의 갈등에서 오는 세대 감각이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일제와 근대화와도 겹쳐 있지요. ‘돌다리’라는, 그러니까 “나는 서울 갈 생각 없다”라는 아비 세대의 감각은 사실의 반영이 아니고 언어로 구축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 요컨대 이 상상력이 단절을 잇고 있소. 돌다리 이쪽과 저쪽을 잇는 연속성 말이외다. 돌다리도 잇는 것이 상상력이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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