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베토벤 만년의 작품을 논하는 마당에서 아도르노는 ‘후기 스타일’이라는 특별한 말을 썼소. 예술가란 만년에 이르면 모가 깎여 원만해진다는 식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는 경우가 베토벤이라 했소. 원만해지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졌으니까. 박완서의 후기 장편 <그 남자네 집>(2004)이 그러하다고 나는 여기고 있소. 성북동에서 살았던 시대를 떠올리며 집에도 영혼이 있다는 식으로 이끌어간 회고형 단편 <그 남자네 집>(2002)을, 불과 두 해 뒤에 장편으로 다시 쓴 것.
그렇소. 다시 쓴 것이오. 어째서 제목을 그대로 둔 채 장편으로 다시 썼을까.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내적 격렬성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터. 왜냐면 이제 작품 쓰기의 한계에 닿았으니까. 말을 바꾸면 소설보다 훨씬 중요한 것, 소설 초월 혹은 소설 미달이어도 상관없는 그런 경지에 닿았으니까. 소설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떠랴. 써야 할 것을 써야 하니까. 물론 소설의 누더기를 걸치기는 했지만 유별난 형식 찾기라고나 할까. 그 형식을 따라가 보면 어떠할까.
<그 남자네 집>은 데뷔작 <나목>(1970)에 이어진 것. 주인공 이경과 결혼한 청년 황태수가 <그 남자네 집>에서는 은행원 전민호로 바뀌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 일상적·가정적 삶이니까. 그렇다면 <그 남자네 집>의 ‘그 남자’란 누구인가. 6·25 적에 성북동에서 만났던 청년. 이 청년을 사람들은 상이군인이라 하지 않겠는가. 미스 리인 ‘나’의 시점으로 보면 그 남자의 이름은 현보. 상이군인이라니, 저렇게 멀쩡한데 상이군인이라니, 말도 안 돼, ‘나’는 사기당한 것인가 따져볼 수밖에. 너, 어수룩한 사람에게 사기 친 거지. 대체 네 정체가 뭐냐.
이러한 옹골찬 따짐 앞에 드러난 현보의 정체는 이러하군요. 6·25 때 인민군이 들어오자 현보의 형은 안정된 신분을 유지했다. 석 달 반 만에 인민군이 후퇴하자 형은 북으로 가버렸다. 처자식, 노부모를 남겨놓은 단신 월북. 인민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했을 때 처자식은 두말없이 따라나섰지만, 결국 노부부는 헤어지는 쪽을 택했다. 아버지는 큰아들을 따라 북으로, 노모는 국군인 막내가 있는 남한에. 막내가 가벼운 부상을 입고 상이군인이 되어 성북동 큰 집에 와 보니 노모만 남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사정이야 선우휘, 이호철 등에 의해서도 이미 반복된 것. 그렇다면 박완서 나름의 후기 스타일은 어떠했을까. 잠시 볼까요. 현보가 ‘나’ 때문에 상사병으로 눈이 멀었을까. 천만에요. 뇌 사진을 찍어 보니 종양이 있었소. 수술해 보니, 종양이 아니라 벌레였던 것. 그것도 열 마리가 넘는 벌레. 시험관에 보관된 벌레를 보았을 때의 장면.
“약물인 듯한 액체 속에 구더기같이 생긴 연분홍 벌레들이 잠겨 있었다.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자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딴 세상, 극한 상황의 전쟁터가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그것이 다 벌레의 짓이었을까.”
벌레들의 시간, 바로 이것이 평생 ‘나만 억울하다!’로 소설을 써 온 박완서가 이른 곳. 6·25란 벌레의 소행이라는 것. 이미 생리화한 것이기에 어떤 설명도 넘어서는 곳. 후기 스타일의 한국식 사례라 할 수 없을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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