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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학사와 세대 감각
- 학병세대, 전중세대, 4·19세대, 386세대

등록 2013-03-31 20:04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내 육체의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세에 멈춰 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라고 말한 문인이 있었소. 어떤 전중세대 문인이 말했소. “스무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라고. 학병세대는 이렇게 썼소. “자학할 정도로 반성하고 자조할 정도로 자각해야 했고, 일제에의 예속을 문학자 개인의 책임으로 해부하고 분석해서 그러한 청산이 이루어진 끝에 새로운 문학이 시작되어야 했었다”라고.

어째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혹시 이렇게 말해볼 수 없을까. 우리는 심한 충격을 입은 당사자가 되풀이해서 그 일을 외부에다 발설함을 자주 보게 되오. 그렇게 함으로써 심리적으로는 자기를 해방하는 한편 그 사건을 논리적으로 객관화하고자 한 것이라 말하기도 하나, 이러한 체험의 집단 감각이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가 한 몫이 다음 세대에 의해 희석됨에서 오는 분노라 할 수 없을까. 새로운 세대의 막강하고 무지한 힘에 짓눌린 구세대의 발악이 아닐까.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학병세대, 전중세대, 4·19세대 등을 엿볼 수 있는 구경꾼이었소. 늘 문학사라는 관습적인 자리에 서 있으면서 투명한 유리 너머로 세대감각을 보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 잘났군, 역사도 현실도 무서워 구경꾼으로 일관했군, 이렇게 누군가 빈정대도 할 말이 없소. 문학사 때문이라 해봤자, 그 문학사를 만드는 사람에 비하면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 존재. 이 점을 알아차리는 것이 나다운 점이라고 누군가 추켜 준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386세대의 어떤 연구자는 국민교육헌장을 외며 자랐다 하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 국가, 민족이 개인의 어떤 의식보다 우위에 선다는 것. 존재 자체에서 오는 고독, 불안, 공포 따위란 꿈도 꾸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민족주의가 주어졌으니까. 이런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도 4·19세대나 전중세대처럼 세대감각을 움켜쥐고 계속 글을 썼을 터이지요. 가령 <레가토>(2012)의 작가 권여선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70, 80년대를 재해석한 바탕 위에서 그네를 타듯 자신을 추슬러야 했을 터. 추체험과는 다른 것이지요. 어떻게 다른가. 한 박자 늦게 타야 가능하기 때문. 주인공 오정연이 전라도 방언을 썼다면 이젠 경상도 방언으로 말하기.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왜냐면 소설 문법과 어법이 가로놓였으니까. 피 흘린 문장이라도 이 문법이나 어법에 걸리면 여지없이 도려내야 하는 것. 문학사가에겐 이것이 훤히 보이지요.

이제는 내 차례.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렀던가. 내가 속한 세대감각이란 이른바 식민지 사관의 극복이었소. 북이나 남이 각각 국가를 세웠지만 이것의 극복 없이는 헛것일 따름. 왜냐면 그래 봤자 조만간 식민지가 될 테니까. 이 사관이 과학인지 제국주의자의 조작인지 증명해 보이라는 국가적 사명감이 주어졌던 것. 이런 세대감각을 은밀히 감추고도 문학사가로 될 수 있을까. 카프카나 보르헤스를 빙자하여 세대감각을 초월하는 소설문법과 어법에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 외에 무슨 방도가 따로 있었을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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