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안 서울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찾아와 책을 읽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17) 사라져가는 것들과 이어가야 할 것들
(17) 사라져가는 것들과 이어가야 할 것들
팍팍한 생계·성과주의·등수경쟁
안 읽는 게 아닌 못 읽는 게 아닌지
요즘은 손에 손에 스마트폰 대학 인문학은 말살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인문학 강좌는 폭발
인문학자도 독자도 고민해봐야
시대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 도서정가제 시행 1주년 맞아 책을 산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어떤 괴리가 있었다. 책을 사고 읽지 않는(못 읽는) 경우도 허다하고, 필요한 책도 안 사고 빌려 읽거나 돌려보는 일도 언제나 가능하다. 거기에는 책이라는 물건 자체나 또는 그 속에 담긴 앎과 쾌락에 대한 소유의 감각 같은 것이 작동한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 변해왔으며 저작권·출판권의 문제도 그 주변을 회전해왔다. 특히 오늘날의 사람들은 책을 더 잘 사지 않게 됐는데, 책에 담길 정도의 고급한 ‘콘텐츠’를 접하고 취득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된 문화와 유관한 듯하다.(이는 음반을 사지 않는 것과 비견될 만한 일인지 모른다. 오늘날 음악을 듣는 일은 음반을 사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음원’을 구매하여 저장하는 일이다.) 지난 70년간 우리 독서사·출판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독서시장은 좁았다. 유통 체계나 관행도 늘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았다. 그것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줄기차게 시도됐다. 2014년 가을부터 실시한 도서정가제도 처음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덤핑이나 새로운 ‘가격마케팅’과 도서정가제가 맞섰다. 2014년 11월에 시행된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는 어떤가? 일시적으로 많은 혼란을 야기했고 ‘작은 출판사’들을 살리겠다는 취지에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책 유통업계는 이익을 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또 서울 시내 주요 서점뿐 아니라 지역 서점 매출도 15~40%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보도도 있다. 이런 부침과 무관하게 서점 문화와 작은 출판사를 살리는 방책을 마련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도서관이 지역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는 것도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문화적·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지 않고 한국 독자들의 책 구매력을 근본적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도서관과 서점은 그래서 어떤 ‘공공적’ 보완물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민인문학과 독서국민운동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독서 대중화운동, 독서국민운동’이 없었던 적도 없다. 시대마다 차이는 좀 있지만 독서운동은 늘 한편으로는 보다 보편적인 ‘계몽’ 또는 교양 운동의 함의를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적 근대화나 ‘국민 만들기’와 결부된 것이었다. 요즘도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이나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 같은 것이 있지만 이전처럼 눈에 잘 띄지는 않고 의미도 다른 듯하다. 대신 근래에는 시민인문학이 활발하다. 시민인문학은 200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2013년 이후 정부의 문화정책과 조우했다. 정부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주요 정책으로 ‘인문정신문화’ 창달 사업을 정권 초기부터 실행했다. 교육부의 인문학 관련 정책과 별도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4대 전략’ 중에 ‘인문 전통의 재발견’을 제시했고, 사상 최초로 인문학 전담 실무부서도 설치했다. 또 2014년 ‘인문정신문화 진흥사업’에 문화부는 515억8천여 만원을 배정했다. 그래서 2008~2009년쯤부터 서서히 늘던 공공기관의 인문학 강좌가 폭발적으로 신설됐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공공기관 인문학 강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대체로 무색무취한 ‘교양 강좌’류의 지식 전달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고, 일회적인 이벤트로서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강좌에서 ‘시민’은 피동화되기 십상이다. 아마 많은 시민들이 이미 경험했을 터이지만, 그런 무료 강좌를 수동적으로 한두 번 듣는 것은,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도 무관하거니와 인문학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지도 못할 것이다. 물론 일단 인문학 강좌에 찾아가보는 시작은 너무나 중요하다. 스스로 필요한 강좌를 찾아가고 또 스스로 공부하고자 해야만 시민인문학이 우리 삶에 효력을 발할 것이다. 정치적·경제적 양극화가 문화와 삶, 정치의 전영역에서 파국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오늘날, 평생교육과 문화적·사회적 문식성의 문제는 다시 중요하다. 그래서 시민인문학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책임도 중하다. 인문학은 필연적으로 책 읽기와 결부되니까 말이다. ■ 인문학과 사회과학 책 읽기 그런 면에서 최근 인문학 서적 열풍은 의미와 동시에 한계도 갖고 있다. 대학 인문학은 말살의 길로 가고 있고 인문학자의 자존감은 최악의 상태이지만, ‘인문학’은 오늘날 한국 독서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특히 문사철 각 분야의 인문학 지식을 요약하는 대중적인 서적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돼 있다. 그 가운데에는 (나쁜 의미의) 자기계발의 코드와 접속한 경우도 여럿 있고, 특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 중에 ‘인문학’으로 볼 수 없는 야릇한 책들도 껴 있어 독자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물론 쉬운 ‘대중’ 인문학 책들도 모두 쉽게 폄하되거나 타기될 수 없지만 대형 서점의 마케팅이나 책 분류를 다 믿으면 안 된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30년 독재를 극복한 힘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운동과 시민 스스로에게서 나왔듯이, 오늘날의 저강도 독재·세습자본주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기초체력도 역시 책 읽기와 토론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해본다. 우리는 다시 앎과 이성으로써, 저 군림하는 미망(迷妄)과 알량한 기득권에 빠진 세력에 민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인간이 함께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 서적 중에서도 ‘현실’을 다룬 것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래 필자가 읽은 것 중에는 데이비드 하비나 토마 피케티 같은 외국 학자의 책 외에도,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오준호의 <세월호를 기록하다>, 김동춘의 <대한민국은 왜?> 같은 한국책이 의미 깊었다. <끝>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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