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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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오후 3시, 파주 헤이리의 호젓한 카페에서 그는 헬렌 맥도널드의 <저녁의 비행>을 읽고 있었다. 그의 겨울 주제는 활강하는 새의 응시. 오늘, 별이 없는 창공을 올려다보는 이라면 필시 다음 세대에 자국을 남길 것이다.
열다섯살부터 명료하게 빛나는 금욕주의로 시를 써온 시인은 최근 그간의 시 66편을 추리고, 응축된 138개의 사유를 잇댄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를 펴냈다. 독자 대 시인, 친밀하고 집착적인 관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당위적인 것보다 자유시의 내재율, 리듬이 좋고 속도감이 있는 시들을 골랐습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처럼) ‘우리는 술을 마신다 흐린 불빛/ 아래에서 가면을 쓰고/ 장갑을 끼고 술을 마신다/ 어제도 마시고 그저께도 마시고 오늘도 마신다’….”
시는 유통기한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할 것이다. 시는 때로 21세기를 느끼고 싶을 때 복용하는 알약과 같아서.
그러나 무엇일까? ‘시인은 진실 때문에 스스로를 불사른다’는 근대적 개념은 시라는 면류관에 권위를 주었을까? 시대의 끝에 태어나 시에 매달린다는 것은 어떤 가치일까? 당대의 문장가이자 희대의 독서광은 젝시믹스 롱 패딩에 진갈색 운동화, 검정 스트라이프 머플러를 두른 채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마치 다이빙하기 위해 기다리는 소년처럼.
“시는 상상·은유 속에서 탄생하는 시간을 품은 지식”
“이번 시선집에는 세상에 대해 어리둥절한 소년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나는 인생의 모든 게 놀라워요. 우주 과학자들은 우주가 137억5천만 년 전, 빅뱅으로 시작되었고, 별들은 점점점점 멀리 나아간다고 해요. 근데 시인은 우주가 어떤 형태로 끝날지 직관으로 알아요.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예언성이거든요. 직관으로 미래를 꿰뚫어 보는 제6의 감각.”
그는 호기심에 발열하는 아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대상 가까이 앉는다. 전국의 중고등학생이 응모하던 ‘학원 문학상’에서 버젓이 수상했던 열다섯 그때처럼.
“‘바위’는 꽤 어려운 말이 많고 아주 의젓한 시였어요. 바위가 몇백 년을 엎드려 폭포 물에 귀를 씻고…. 당시 30대였던 고은 시인이 선자(選者)였는데 나중에 말해주었어요. 이 시를 왜 뽑았느냐. 탁마, 갈고닦은 역작이라서…. 처음 시를 썼을 땐 나 자신을 새로 발명한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이 50년 동안, 현실적으로 큰 보상이 없는데도 시를 쓴 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그는 우리가 짐작하는 시인의 배역과 좀 달랐다. 불길한 분위기 속에서 섬세하고 퇴폐적인 특징을 이용하지 않으며, 중증 몽상가들의 유아적 야만성도 없고, 미궁에 빠진 탈무드류의 문장을 쓰지도 않는다. 오직 시를 쓰는 재능은 시를 쓰지 않는 재능보다 훌륭하다는 진실뿐.
“천부적인 재능이란 19세기까지 이어진 낭만주의자들이 퍼뜨린 거죠. 뛰어난 시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기를 갈아 뭉툭한 쇠붙이를 바늘로 만들었어요. 그게 재능이죠.”
데뷔 이래 그는 그 유명한 문예지들과 연이 없어 보였다. 시인이자 평론가로서의 치세를 누리지 않고 문학의 어두운 바다를 돌파해간 힘은 무엇이었을까? 외로움? 소외 의식? 그는 정당한 평가를 받았을까?
“내가 활동했던 80년대에는 시의 사회적 영향력이 지금보다 컸어요. 문학이 문화의 중심에서 영화를 누리던 시절이었죠. 항상 당대 주요 지면을 쥐고 있는 자가 문학 권력을 잡았어요. 그때는 ‘문지’(문학과지성사)와 ‘창비’(창작과비평)가 양대 권력이었는데, 저는 권력의 이너 서클에서 배제된 거예요. 이른바 내 출신 성분이 성골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니까. 문학과지성사에는 4케이(K)가 있었어요. 김병익, 김현, 김주연, 김치수. 그 4인이 만장일치로 인정해야 되는데, 적극적으로 나한테 표현했던 건 김현 선생. 반대했던 분도 한 분 계셨어요. 그 시절 거기서 내 시집이 나왔다면 아마 주류에서 인정받고 문학상도 받고 그랬겠죠.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도 그들을 비판했으니까. 그들이 잘한 점도 있지만 잘못한 점도 있거든요. 너무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품는 도량이 적은 거예요. 네 편 내 편을 갈라버리니까 그쪽에 지면을 얻을 수 없는 거죠. 그러나 그것들과 일정 부분 어떤 긴장과 물리적 거리가 있었다는 것 때문에 내 것을 지킬 수 있었어요.”
빵을 기다리는 줄에 선 사람들처럼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스무살 때부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구절을 동경했어요. ‘피로 써라. 피가 곧 정신이다.’ 피의 불가피한 기질을 사람들은 문체 또는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죠.”
시의 심장, 심장의 목적은 그가 점검한 모든 형용사 뒤에 있었다. 효과적인 언어 사용법, 서술적 능란함의 부정, 사회적(이지 않더라도 민감한) 관찰, 불안한 부드러움이라 부르고 싶은 개방성은 그 사람 말고 다른 혀로는 얻을 수 없는 언어였다.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든 정서적 이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식인의 낱말이기도 했다.
“시의 지식은 종교의 진리, 과학적 지식과 다르죠. 상상과 은유 속에서 탄생하는 지식이니까. 시의 지식은 시간을 품고 있어요. 찰나의 지식이죠. 찰나마다 몸이 바뀌니까.”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스스로를 ‘문장 노동자’라 부르며 100권 넘는 책 써와
인생에는 많은 기회가 있지만 그 안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일어나는 좋은 일과 나쁜 일만 보일 뿐. 무엇보다 그 시절의 학교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관한 어리둥절한 의문만 남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세상과 부닥치는 경험을 했어요. 정규 교육 과정에서 튕겨져 나와 동해 바닷가에서 한동안 지냈죠. 교련을 거부해서 교련 교사한테 엄청나게 구타를 당했어요. 가방을 싸 갖고 학교 운동장을 걸어나오면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끝난 거예요.”
그가 학교 밖에서 마주한 디아스포라는 일종의 로큰롤 무법자 정신이었다. 통념에 겁먹지 않는 개별적 의식으로서.
“가족들도 말릴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나는 바깥으로 내쳐진 자, 상처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거죠. 이번 시집 앞부분에는 이상하게 배곯은 이야기가 많아요. 근데 실제로 굶어본 경험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상징이고 은유였다는 말이에요.”
그때부터 그는 읽었다. 글자의 클라우드로 빨려 들어가듯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었다.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작가를 특히 좋아했어요. 뭐든 독서 행위에는 약간의 지적 허영이 개입해요. 남들이 가는 대학을 안 다녔기 때문에 나한테 이런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던 것도 있었고. 그 책을 이해했다곤 말을 못 하지만, 열아홉살 때 읽은 니체의 영향은 평생 가요. 결국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그들의 전집을 만든 계기가 되었죠. 스무살 때는 랭보나 말라르메, 발레리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을 읽었어요. 한국 시인은 김수영.”
그는, 아이작 뉴턴 식으로 말하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세상의 질서에 순응했더라면 아마 은행원이 되고, 소시민으로 살았겠죠. 적당히 책을 읽고 고전 음악을 듣는 소지식인 소교양인의 삶에 만족했겠죠. 그렇지만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내 모서리들이 둥그레지는 느낌이 시적인 재료가 되지 않았을까요?”
시인은 신이 말을 걸어주는 자라고 한다면, 그가 종국에 알고 싶은 것은 신이 그에게 주의를 기울일까일 것이다.
“시마(詩魔)라는 게 있어요. 시의 신과 접신하는 거죠. 그러나 나는 시마가 찾아온다고 해도 거절할 거라고 했어요. 당신 도움 필요 없다. 내 걸 쓰겠다.”
2009년 가을, 그의 ‘대추 한 알’은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걸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하이쿠마냥 짧은 시의 압축적 폭발력은 몇 개의 가을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혹시 ‘대추 한 알’에 쏟아진 갈채가 시인의 고결함이며 그 자체의 순도를 떨어뜨린다고 여기지 않을까?
“내게 우연히 주어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네가 이렇게 열심히 썼으니까 그래, 너한테 선물 하나 줄게’ 하고 준 게 아닐까. 그 이상의 의미 부여는 안 해요.”
그의 프로필 가운데 정말 놀라운 것은 책을 백 권 넘게 썼다는 사실이다. (그는 숫자를 정확히 세지도 못했다.) 인문학적 그물망 속에서 그는 모든 단어를 조사하고 모든 서술마다 각주를 달았다. 그리고 재잘거리며 튀어나오는 현대 문화와 버무렸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한 작가의 인생과 작품의 정점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 책 하나하나 쓸 때는 내 재능의 극한까지 나를 몰아서 썼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재능이 조금 미약했구나라는 느낌이 들지만, 내 노동의 어떤 숭고함과 견인력이 스스로 대견스러워요,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게.”
생산성이 좋은 한창때는 1년에 5천, 6천 매를 썼다. “하루 여덟 시간씩 글 쓰는 기계처럼 썼어요.” 아니, 절로 쓰이는 펜이라도 있는 걸까. 매일 자기만의 비트로 일정량의 글을 쓰는 것은 빼어난 작가들의 루틴이라지만, 그렇게까지 굉장한 전투력이 요구될 줄은….
“헤밍웨이는 아침 6시에 눈뜨면 타자기 앞에 앉아 정오까지 썼어요. 그리고 낚시로 자기 보상을 해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7킬로미터를 달리고 아침과 오후, 두번에 걸쳐 글을 써요. 저에게 매일 써야 한다는 각성은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입은 없는 거니까. 다행히 30대에 거의 매일 수영을 했어요. 엄청난 체력을 저축한 거예요. 지금은 근육도 많이 손실돼서 산책도 무리하게 하지 못하지만.”
그는 생활의 필요를 글 쓰는 직업과 어떻게 결합할지 진작에 알았다. 그래서 그가 스스로 ‘문장 노동자’라고 묘사할 때는 쓴다는 묽은 허영 대신 노동의 허심탄회함만이 어른거린다. 글을 쓰는 일은 약속. 논쟁을 약속하고 관점을 약속하는 일. 그러나 솔직히 작가에게 쓰지 않을 때만 한 행복이 있을까?
“나에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보상이에요. 무위의 상태. 더 적극적으로는 혼자 파주의 둔덕 같은 산길을 걷는다든지, 황인용씨가 하는 ‘카메라타’에 가서 고성능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전 음악을 들어요. 술은 거의 안 마셔요. 마시면 일을 못 해요. 술을 절제하다 보니까 사람을 거의 안 만나죠.”
확실히 고양이 같은 면이 있다. 잔잔한 경계성, 자기 중심의 우아한 정서, 그리고 정말로 지속될 것만 원하는 단호함. 그렇지만 기쁘면 기뻐서 마시고 슬프면 슬퍼서 마시는 리듬의 세상에 술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나의 쾌락은 사과 한 알에서 찾는 티 스푼 두 개쯤의 분량. 나의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 옥수수가 자라는 것. 화초 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가을 산책로에서 내 머리통을 때리는 도토리.”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은유는 우주를 한 줄로 압축하는 시의 비장의 무기”
원하는 답을 들은 것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럭셔리 아닌가.
“내가 시라는 장르에 집중했다면 지금보다 뛰어난 시를 썼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내 본질은 조금 더 총체적인 것. 문학에서 끝나지 않고 우주 과학, 뇌 과학, 생물학까지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세계를 포착하고, 시가 아닌 장르로 표현해요. 나에겐 산문 한 줄도 시 한 편 못지않아요. 나중엔 잠, 피로, 일 같은 사소한 주제에 대한 철학적 사유도 쓸 건데, 원점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죠. 잠도 매일의 죽음이에요. 놀라운 것은 이런 생각을 뛰어난 사람들이 이미 했다는 거예요. 롤랑 바르트를 읽다가 깜짝깜짝 놀라요.”
그러나 시는 예전처럼 현실을 추동하지도 않고, 혁명 한 톨 보여줄 기색도 없다. 시의 오랜 표준이 무너지고 우아한 헛소리가 사면초가로 뒤덮일 때, 시의 매혹이란 의도적인 무기력의 정서로나 지탱되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어가 천박해졌다는 혐의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천박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자의식과 끊임없이 싸워야 돼요. 김현은, 문학은 쓸모없음을 쓰는 거라고 했어요. 장자가 한 말이거든요.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 쓸모없음의 큰 쓸모. 사람들이 천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무가 거목이 되어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데, 그 그늘 아래 소 네 마리가 끄는 마차 천 대가 들어갔다는 유명한 얘기죠.”
흩어지고 합쳐지는 그의 언어는 보풀이 일기도 하고, 늘어져 대롱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로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게 만드는 상승감.
한편, 독서불능증의 세상에 책 4만 권 장서가의 고통은 아주 현실적이었다.
“한없이 버렸지만, 남은 게 3만 권이에요. 이걸 다 버려야 되나…. 그리고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정리하는 문제…. 버거워요,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게. 어느 시점에서는 쓰는 일도 손에서 놓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목소리에 점성이 없었다. 삶의 채무감을 건드릴 때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강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생은 빈 배죠. 장자에 나오는 이야긴데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왜 부딪치냐고 화를 내지만 빈 배는 아무 소리도 안 하죠. 화를 내는 건 배의 주인이 나라는 얘기니까. 빈 배 자체가 되어 물결의 흐름 속에 흘러가야죠. 정말 깊은 고요 속에서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면 좋겠어요, 코끼리들처럼. 우리는 사고로 죽지 않고서는 새의 죽음을 볼 수가 없어요. 새들은 조용히 사라지니까.”
뉘앙스의 깊이 때문에 그 말은 현명한 양피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잘게 떨어지는 먼지로 시간을 재는 모래시계 또한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어쩐지 슬픔 없는 비애의 감각을 느꼈다. 그러니 찰나에 깃든 의미를 들추는 재능이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찰나는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영원이에요. 찰나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에 아무것도 누리지 못해요.”
저녁 6시, 아직 잎을 매달고 있는 겨울의 노란 불빛 속에서 그는 자꾸만 우주로 나아갔다. 소년은 옛날의 노스탤지어를 꺼내지 않으니까. 노스탤지어는 다 쓴 티슈에 불과하니까.
“우주 과학자는 우주가 암흑 물질로 채워졌다고 해요. 암흑이란 본바탕이에요. 빛은 특이한 현상인 거죠. 근데 어느 순간 빛이 나타나고, 인간들은 그 특이한 순간을 누리고, 빛이 사라지면 또 이전으로 돌아가죠.”
급기야 그는 시로 별을 짓눌러 대추 한 알만 한 블랙홀로 만들었다.
“은유는 시의 비장의 무기. 우주를 한 줄로 압축할 수 있어요.”
함께 있으니 구름 한 조각에도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목격한 세상에 대해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천천히, 천천히 저녁이 흘러갔다. 우리는 파스타집에 앉아 겨울빛이 남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컴퓨터그래픽 같은 창 프레임은 교하의 검은 물을 몇 개 컷으로 나누었다. 마음속에는 오직 존재론적 레벨에서 소년기를 간직한 사람을 보는 순진한 기쁨만이 가득했다.
작가. 전 <지큐 코리아> 편집장.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18년 동안 써온 ‘에디터스 레터’를 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