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난 근본이 없다”…‘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의 클래식 음반

등록 2023-02-24 16:49수정 2023-02-27 02:32

정재일 새 앨범 ‘리슨’ 발매 간담회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24일 클래식 음반사에서 낸 신작 <리슨> 발매 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24일 클래식 음반사에서 낸 신작 <리슨> 발매 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작곡하고 연주하는 정재일입니다.”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41)은 24일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날 발매한 새 음반 <리슨>과 관련해 서울 종로구 혜화동 제이시시(JCC) 아트센터에 연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그는 그동안 거의 모든 종류의 음악을 선보였다. 영화음악은 물론, 가요와 클래식, 전통음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었다. 군 복무 시절엔 군가까지 편곡했다.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등 수많은 악기도 연주했다. 패닉, 박효신, 아이유 등 유명 가수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런 그에게 ‘작곡자, 연주자’란 간결한 타이틀보다 더 명확한 호칭은 없을 듯하다.

간담회가 시작되자 피아노 앞으로 다가간 그는 먼저 앨범 타이틀곡 ‘리슨’을 연주했다. 이번 음반에 담긴 7곡의 주축은 피아노다. 모든 피아노 연주를 그가 맡았다. 곡마다 뭔가 간절한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사무치고 절절하다. 그는 ‘음악만을 위한 음악’이라고 했다. “제게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악기인 피아노를 골랐어요. 피아노는 모국어나 다름없어서 말보다 피아노 치는 게 더 편하거든요.” 그는 “더 깊은 얘기를 하려면 오롯이 혼자 얘기할 수 있는 편성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번 음반은 그가 정경화,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속한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 데카 레이블에서 낸 첫 음반이다.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정재일은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정재일은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그냥 듣고 싶었어요. 내 안에서 뭐라고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이 지구가 하는 말도 다 듣고 싶었어요. 우리가 못 들어서 팬데믹도 겪고, 전쟁도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정재일은 “우리가 지금 사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건 모두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팬데믹과 이에 따른 비극적 이별, 그리고 전쟁이 터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듣는 귀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굉장히 통속적이고 단순해서 ‘이거 뭐야’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리슨’이라고 음반 제목을 정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 앨범은 누구의 간섭도, 검수도 받지 않았다. 안무도, 희곡도, 시나리오도 없었기에 ‘맨땅에 헤딩하듯’ 그가 혼자 결정했다. 그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 없어서 좋았지만 어디 숨을 곳이 없었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더 ‘크래프트맨십’(장인정신)을 발휘하려 했다”고 작업 과정을 돌이켰다. 이번 앨범은 ‘재즈의 명가’ 이시엠(ECM) 레이블의 명반들이 탄생한 전설적인 녹음실인 노르웨이 레인보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정재일은 “스튜디오에서 의아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줘서 열흘 동안 하루 7시간씩 꼬박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작업 당시를 떠올렸다.

정재일의 새 앨범 <리슨>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정재일의 새 앨범 <리슨> 표지. 유니버설뮤직 제공
그가 곡을 만드는 첫 단추는 즉흥 연주다. 일단 즉흥 연주를 하다 어떤 부분이 포착되면 거기서 음을 다듬어나간다. 이번에도 즉흥 연주를 하다 어떤 부분을 잡았는데, 가라앉고 침잠하는 순간이었다. “제가 사는 한강 하구엔 이리저리 조수가 흐르고, 습지와 갈대밭이 있고, 겨울엔 수천마리 철새들도 날아요. 자동차가 다니고 고층 빌딩도 있지요. 이런 풍경을 멍하니 보는데 이 중에서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만 없으면 너무도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침잠하는 음악’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 앨범엔 에스토니아 현대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에게서 받은 영감이 녹아 있다. 정재일은 “내 10대와 20대를 지배한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에게서 이번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뭔가 종교적이면서 구도자적인 느낌을 풀어내는 분인데, 그분 삶 또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일찍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기억하는 첫번째 클래식 애창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이다. “라벨과 드뷔시 등의 악보를 공부했어요.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를 위한 애가’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지요.”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정재일은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온 정재일은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내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현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은 지난달 간담회에서 정재일과 작업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저는 음악을 대학에 가서 배운 게 아니라서 근본이 없어요. 그분 같은 거장의 예술적 경지에 맞출 수 있을지 두렵기는 해요. 하지만 제게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신다면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있습니다.” 거장 지휘자의 공개 구애에 대한 정재일의 겸손함을 담은 긍정 답변이었다.

정재일은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으로 명예를 얻었고, ‘성덕’(성공한 덕후)이 될 수 있었다. 존경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영화 <브로커>를 작업할 기회도 생겼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무대 뒤에서 일하는 저의 기본적인 삶에 큰 변화는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집엔 여전히 시디(CD)도, 턴테이블도, 텔레비전도 없다. 오로지 피아노를 치고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