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에스비에스에 〈야심만만〉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렇게 내 취향은 아닌 프로그램이라 난 그 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데, 그래도 가끔 내 게시판에 감상이 올라온다. 그 중 눈에 뜨였던 것이 게스트로 나오는 연예인들의 거의 공통적인 말버릇에 대한 불평이다. 이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에 나오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말을 닫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그건 하나의 정보에 불과했다. 하지만 겨울 내내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의욕 없이 침대에 엎어져 공중파 재방송을 섭렵하는 동안, 나는 드디어 그들이 왜 그런 글들을 올렸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짜증났다. 온갖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해놓고 그 모든 걸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라는 말 한 마디로 정당화하려는 쉬운 수작. 이젠 말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짓는 특유의 비굴한 표정까지 읽을 수 있겠다. 그 프로그램에 나올 예정인 연예인들에게 유익한 한 마디. 바보짓을 만 명과 함께 한다고 그게 바보짓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건 아니다.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만 한 명으로 늘어날 뿐이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는 참으로 편한 책임전가용 도구다. 하지만 편리한 말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건 거짓이다. 세상에 ‘다들 그런’ 것은 없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 같은 육체적 욕망도 마찬가지다. 가끔 여자 연예인들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성서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세상 모든 남자들은 (자기처럼) 가슴 큰 여자들을 좋아해요!”라고 선언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난 그 순진한 친구들에게, 시간이 나면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 링크 페이지를 들춰보길 권한다. 그렇게 단순해 보이는 남자들의 머릿속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욕망이 존재하는지 알게 될 테니.
이런 말들과 마주칠 때, 나는 계급적 우월감을 느낀다. 나는 ‘다들 그러지 않는’ 몇 가지 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내 정체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적어도 나는 세상에 ‘다들 그런’ 것이 없다는 건 안다. 인터넷은 ‘다들 그런’ 세상을 깨트리는 도구여야 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인터넷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 인권 운동이 이 정도 수준으로 올라간 것도 순전히 익명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인터넷 덕택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과연 인터넷이 다양성을 소개하는 도구인가? 인터넷이 아무리 무한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가는 곳은 뻔하다. 그들은 몇몇 포털사이트와 잘 가는 몇 군데에 링크를 걸어두고 그곳만 죽어라 간다.
여러분이 ‘다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취향과 의견의 소유자라면 그건 정신적 해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들 그런’ 세계의 구성원들에게 인터넷은 ‘다들 그런 세상’에 대한 따분한 선입관을 강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아무 포털 사이트에나 가서 몇 가지 댓글들을 한번 읽어보라. 하나의 공식이 보인다. 글의 우둔함과 멍청함이 심해질수록 논리와 정당성 대신 대부분 그들 뒤에 버티고 있는 ‘다들 그런 사람들’의 머릿수에 의지하고 있다. 가끔 서핑을 하다 보면 좀비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점점 걱정이 된다. 인터넷이 ‘다들 그런’ 몇 종류의 좀비들을 전세계에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되면 어떻게 한다? 얼마 전에 조지 로메로의 좀비 4부작을 논스톱으로 다시 본 터라, 나에게 이 걱정은 한동안 지나치게 현실적인 악몽으로 남을 것 같다.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