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규장각 (사진=이정국 기자)
이토 히로부미 규장각 약탈 도서 ‘민간 주도 환수운동’ 시작되나?
“이토 히로부미의 도서반출건은 도서 대출과 반납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져간 규장각의 서책 1000여권을 어떻게 환수할 수 있을까? 지난 10일 “이토 히로부미 ‘규장각 도서 수백권’ 100년째 ‘대출중’” 기사가 나간 뒤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누리꾼은 “이토에게 연체료를 물리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부에선 ‘민간 주도’의 환수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강혜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문화재청에 질의서를 보내 진상조사를 촉구했고, 문화재청도 진상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서울대 규장각은 묵묵부답이다. 서울때쪽의 해답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2002년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한국사학)의 논문에서다. 당시 이 교수는 논문에서 “이토가 불법 반출한 도서는 전량 돌려 받아야 하며 이는 단순한 도서관의 업무인 대출과 반납에 의한 열람을 지속화하기 위함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논문을 통해 “만약 이토가 가져간 도서가 일본 궁내청에 남아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같은 도서를 구입해서 반환하든가, 아니면 그 가격에 해당하는 만큼을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 교수는 〈한겨레〉기자와 만나 “이토의 도서반출은 공식적인 국가대 국가의 문화재 반환요구보다는 도서의 대출과 반납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교수는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문제는 국제법으로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다”며 “당시 일본내의 행정부끼리 주고받은 공문서가 있기 때문에 국내기관끼리의 도서 대출과 반납의 문제로 접근하면 국제법에 적용되지 않고 일이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이상찬 교수 “당시 일본내의 문제. 국제법 개입될 요소 없어”
1911년 일본 궁내성이 조선총독부에 이토히로부미가 가져온 규장각 도서의 양도를 요구한 공문 사본(출처: 이상찬, ‘이등박문이 약탈해 간 고도서 조사’, 2002, 서울대 국사학과 한국사론 48집)
이 교수가 해법으로 주장하는 “도서 반납과 대출의 관계”는 당시 총독부와 궁내청을 오간 공문서를 통해 확인된다. 1965년 백린 서울대도서관 열람과장이 발견한 1911년의 조선총독부 취조국 서류철은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토가 반출한 도서를 양도해달라는 일본 궁내청 공문(1911년 5월 15일) ◇ 양도요구를 받은 조선총독부 총무부가 취조국에 양도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공문(1911년 5월 22일) ◇ 요청을 받은 취조국이 양도가능 도서 목록을 제시하면서 나머지는 반려하도록 요구한 공문(1911년 5월 23일) 공문은 이토가 가져간 책에 대해 궁내청과 총독부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당시 일본내 행정기관끼리 주고받은 공문인 것이다. 이 교수가 “책의 대출과 반납의 문제로 접근해야 된다”라는 논리는 여기서 나왔다. 복잡한 식민지시대의 약탈 문화재에 대한 국제법적 개입이 없어도 쉽게 ‘자국내 문제’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의 말처럼 복잡하지 않은 과정을 거칠수 있었는데, 규장각내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공식 회의조차 한번도 하지 않은 사실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누리꾼들 “이토에게 연체료 물려라” 이 교수의 주장대로 도서 대출과 반납으로 따져봤을 때 현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규정에 의하면 약 35여억원의 대출연체료가 계산됐다. 도서 대출은 1909년께 이루어졌고, 97년 동안 반납을 하지 않은 상태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규정 16조1항에는 “3일 이상의 연체자에 대하여는 연체도서 1책당 매 1일마다 100원의 연체료를 징수한다”고 나와 있다. 이를 토대로 연체료를 계산해 보면, 책 한권당 350여만원의 연체료가 나오고, 1000여권을 대출했으니 35억여원이 연체료가 산정된다. 단순한 산술적 수치일 따름이다. 누리꾼 ‘tilsi’는 “동네 대여점도 연체료 받는 데 이건 동네 대여점도 아니고…갈수록 열받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누리꾼 ‘rltjddks’도 “100년간 안낸 연체료를 받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규장각이 나서야” 규장각의 ‘무대책’에 대한 사회 각계의 질타도 이어졌다. 10일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환수위)는 성명을 내고 “서울대는 이토의 대출도서에 대한 반환운동을 시작하라”고 주장했다. 열리우리당 강혜숙의원실의 김용목 정책보좌관은 “환수위쪽의 문제제기를 듣고 사태파악을 위해 문화재청에 이토의 도서반출건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으나 2002년 이상찬 교수가 쓴 논문 하나를 덜렁 보내왔다”며 “문화재청도 사건 파악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보좌관은 “규장각쪽에서 계속 소극적 자세로 나온다면 실록 반환처럼 민간 주도로 반환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환수위 간사인 혜문 스님도 “규장각에서 문제해결을 하는 게 옳다”며 “규장각에서 성의를 가지고 문제해결에 나설수 있도록 적극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숙 계명문화정보대 교수(서지학)도 “당연히 국가와 규장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지금 서울대의 태도를 보니 실록처럼 다시 민간이 반환운동에 나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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