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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토가 ‘100년 대출’한 규장각 도서 ‘연체료’만 35억원?

등록 2006-07-13 14:46수정 2006-07-13 15:04

서울대 규장각 (사진=이정국 기자)
서울대 규장각 (사진=이정국 기자)
이토 히로부미 규장각 약탈 도서 ‘민간 주도 환수운동’ 시작되나?

“이토 히로부미의 도서반출건은 도서 대출과 반납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져간 규장각의 서책 1000여권을 어떻게 환수할 수 있을까? 지난 10일 “이토 히로부미 ‘규장각 도서 수백권’ 100년째 ‘대출중’” 기사가 나간 뒤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누리꾼은 “이토에게 연체료를 물리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부에선 ‘민간 주도’의 환수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강혜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문화재청에 질의서를 보내 진상조사를 촉구했고, 문화재청도 진상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서울대 규장각은 묵묵부답이다. 서울때쪽의 해답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2002년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한국사학)의 논문에서다. 당시 이 교수는 논문에서 “이토가 불법 반출한 도서는 전량 돌려 받아야 하며 이는 단순한 도서관의 업무인 대출과 반납에 의한 열람을 지속화하기 위함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논문을 통해 “만약 이토가 가져간 도서가 일본 궁내청에 남아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같은 도서를 구입해서 반환하든가, 아니면 그 가격에 해당하는 만큼을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 교수는 〈한겨레〉기자와 만나 “이토의 도서반출은 공식적인 국가대 국가의 문화재 반환요구보다는 도서의 대출과 반납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교수는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문제는 국제법으로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다”며 “당시 일본내의 행정부끼리 주고받은 공문서가 있기 때문에 국내기관끼리의 도서 대출과 반납의 문제로 접근하면 국제법에 적용되지 않고 일이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이상찬 교수 “당시 일본내의 문제. 국제법 개입될 요소 없어”

1911년 일본 궁내성이 조선총독부에 이토히로부미가 가져온 규장각 도서의 양도를 요구한 공문 사본(출처: 이상찬, ‘이등박문이 약탈해 간 고도서 조사’, 2002, 서울대 국사학과 한국사론 48집)
1911년 일본 궁내성이 조선총독부에 이토히로부미가 가져온 규장각 도서의 양도를 요구한 공문 사본(출처: 이상찬, ‘이등박문이 약탈해 간 고도서 조사’, 2002, 서울대 국사학과 한국사론 48집)


이 교수가 해법으로 주장하는 “도서 반납과 대출의 관계”는 당시 총독부와 궁내청을 오간 공문서를 통해 확인된다. 1965년 백린 서울대도서관 열람과장이 발견한 1911년의 조선총독부 취조국 서류철은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토가 반출한 도서를 양도해달라는 일본 궁내청 공문(1911년 5월 15일)

◇ 양도요구를 받은 조선총독부 총무부가 취조국에 양도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공문(1911년 5월 22일)

◇ 요청을 받은 취조국이 양도가능 도서 목록을 제시하면서 나머지는 반려하도록 요구한 공문(1911년 5월 23일)

공문은 이토가 가져간 책에 대해 궁내청과 총독부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당시 일본내 행정기관끼리 주고받은 공문인 것이다. 이 교수가 “책의 대출과 반납의 문제로 접근해야 된다”라는 논리는 여기서 나왔다. 복잡한 식민지시대의 약탈 문화재에 대한 국제법적 개입이 없어도 쉽게 ‘자국내 문제’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의 말처럼 복잡하지 않은 과정을 거칠수 있었는데, 규장각내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공식 회의조차 한번도 하지 않은 사실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누리꾼들 “이토에게 연체료 물려라”

이 교수의 주장대로 도서 대출과 반납으로 따져봤을 때 현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규정에 의하면 약 35여억원의 대출연체료가 계산됐다. 도서 대출은 1909년께 이루어졌고, 97년 동안 반납을 하지 않은 상태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규정 16조1항에는 “3일 이상의 연체자에 대하여는 연체도서 1책당 매 1일마다 100원의 연체료를 징수한다”고 나와 있다. 이를 토대로 연체료를 계산해 보면, 책 한권당 350여만원의 연체료가 나오고, 1000여권을 대출했으니 35억여원이 연체료가 산정된다. 단순한 산술적 수치일 따름이다. 누리꾼 ‘tilsi’는 “동네 대여점도 연체료 받는 데 이건 동네 대여점도 아니고…갈수록 열받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누리꾼 ‘rltjddks’도 “100년간 안낸 연체료를 받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규장각이 나서야”

규장각의 ‘무대책’에 대한 사회 각계의 질타도 이어졌다. 10일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환수위)는 성명을 내고 “서울대는 이토의 대출도서에 대한 반환운동을 시작하라”고 주장했다. 열리우리당 강혜숙의원실의 김용목 정책보좌관은 “환수위쪽의 문제제기를 듣고 사태파악을 위해 문화재청에 이토의 도서반출건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으나 2002년 이상찬 교수가 쓴 논문 하나를 덜렁 보내왔다”며 “문화재청도 사건 파악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보좌관은 “규장각쪽에서 계속 소극적 자세로 나온다면 실록 반환처럼 민간 주도로 반환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환수위 간사인 혜문 스님도 “규장각에서 문제해결을 하는 게 옳다”며 “규장각에서 성의를 가지고 문제해결에 나설수 있도록 적극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숙 계명문화정보대 교수(서지학)도 “당연히 국가와 규장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지금 서울대의 태도를 보니 실록처럼 다시 민간이 반환운동에 나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책 가져올 자신 있었으면 진작에 문제제기했다”
[인터뷰]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 이상찬교수
서울대 이상찬교수
-이토의 규장각 도서 반출건이 처음 알려진 지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규장각에선 무엇을 했나?

=규장각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힘든 상황이다. 1966년 한·일협정 당시 책의 일부가 돌아왔다. 당시 더이상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협정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법적 차원의 문제는 이미 끝난 상태다. 다시 반환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규장각의 입지가 굉장히 좁다. 국가기관끼리 한 협정을 국가기관인 규장각이 깰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자 개인으로선 꼭 찾아와야 하고 당시 한·일 협정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규장각 원장의 공식이름으로 반환을 요구 하기란 매우 힘들다. 국가에서 이미 처리한 문제가 아닌가.

-하지만 실록의 경우 서울대에서 아무 행동도 하고 있지 않다가 민간에서 문제를 제기해 찾아오게 됐다.

=이런 문제를 처리하면서 민간은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규장각은 그동안 뭐했냐라는 식으로만 따진다. 하지만 언제 규장각제 그런 권한, 예산 준 적 있나. 언론은 뭘했나. 이제 와서 탓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한국의 도서라는 게 확실한 사안이다. 일본이 발뺌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토가 반출 도서의 경우 아직 육안으로 확인도 안된 상태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다.

-2002년의 논문을 통해 책을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안다.

=당시 규장각의 학예연구관이었다. 지금도 책을 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일본에 직접 가서 추적하고 싶다.

-지금 그 도서가 어디에 있는것으로 추정하나?

=일본 궁내청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공문을 보면 궁내청과 총독부가 서로 책의 양도를 가지고 의견을 교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소재를 파악중이고 공식 확인되면 문제제기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몇권의 책이 있는지도 확인이 안된 상태라 공식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다. 궁내청은 일본 내부에서도 절대 공개가 되지 않는, 일왕 일가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다루는 국가기관이다. 하물며 타국에서의 조사가 쉽겠는가. 섣불리 문제제기를 했다가 일본쪽에서 비밀서고에 책을 넣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그 걸로 그냥 끝이다. 책을 가져올 자신이 있었으면 진작에 문제를 제기했다.

“도서 대출과 반납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어떠한 책들이 일본에 건너갔나

=예전에 이와 관련한 보도가 나왔을때 귀중본이나 유일본이다 하는 약간의 과장이 있었다. 물론 서지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이 꽤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엄청나게 귀중한 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의 중요도는 본질이 아니다. 규장각의 책이니 규장각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지 책이 중요해서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책이 중요하지 않다면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옳다고 보나.

=책 반납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식민지시대의 약탈문화재를 환수하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국내·국제법적 문제가 걸려 있다. 하지만 당시 총독부와 궁내청이 주고받은 문건은 같은 행정부, 즉 일본내의 기관끼리 주고 받은 것이다. 국제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타 기관에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문제로 해결하면 된다. 조선과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내의 문제였다는 거다.

-이토 히로부미가 어떠한 형식으로 책을 가져갔나. 약탈인가, 대출인가.

=그것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져간 도서”라는 공문서의 기록이 전부다. 책의 반출을 1907년 7월께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실록 문제도 그렇고, 서울대와 규장각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하다.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해 규장각에서 여러 가지 문제을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규장각이 뭘했냐고 따지면 우리는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사태가 좋아질 것은 없다. 규장각이 욕을 먹어서 책이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먹겠다. 우리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절차와 행정실무를 중심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어쩌면 내분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를 보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책이 돌아오고 싶다면 규장각 비난보다 어떠한 것이 실제로 문화재 반환에 의미있는 행동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섣불리 문제제기를 했다가 책이 숨어버리면 그 다음엔 누굴 탓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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